혀 끝에 숨긴 비밀

내 눈을 바라봐

by 천천희



수용자 노련 씨는 절도와 사기를 번갈아 행하면서 교도소를 들락날락 한 지 도합 20년이 되는 *'법자'다.
* 법자 : '법무부가 키운 자식'의 줄임말. 시도 때도 없이 교도소를 드나들면서 교도소 밥 먹고 자란 사람.


그는 교도관과 5분만 이야기해 보고도 꼼수가 통할 수 있는지 판단을 할 줄 알며,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어떤 짓을 해야 하는지 파악하고 있는 법자 중의 법자다.

교도소 CCTV 각도도 웬만큼은 다 알아서 근무자가 동태를 살펴보려 해도 항상 사각지대에 있어 좀처럼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부장님, 약 주세요"


노련 씨는 불면증으로 정신과 약을 먹은 지 10년이 넘었다.
과다 복용 시 목숨을 잃을 수 있고, 약 거래가 일어날 수도 있어 수용자의 정신과 약은 근무자가 보관한다. 복용 시간이 되면 근무자가 그 약을 직접 수용자에게 먹인다. 꼭 삼킨 걸 눈으로 직접 확인까지 해야 한다. 5년 전에는 노련 씨가 정신과 약을 몇 주 동안 모아놨다가 한 번에 복용해 위험한 상태까지 간 적이 있다. 약을 복용하는 그 순간에도 근무자를 노련한 방법으로 속여왔던 것이다.




노련 씨가 있는 사동으로 오랜만에 야간 출근 하는 날이었다.
노련 씨가 있어야 할 방을 지나가는데 어두컴컴했다. 노련 씨의 방은 빈 방이었다. 바로 컴퓨터 메신저를 켜서 주위 동료들에게 물었다.

"노련 씨 방이 비었던데?"


"노련 씨 징벌방 갔잖아"


"왜?"


"약으로 아직 장난 치더만"


머리에서 이런 생각이 지나갔다.
'5년 전 일이고, 그런 짓 이제 안 한다고 하더니...'


"꼼꼼한 우리 김 주임님*한테 걸렸다."

*보통 7급 호칭이 '주임', 8,9급 호칭이 '부장'이다.


"어떻게?"


"입 벌려서 보는데 입 구석에 숨겨놓은 걸 발견하셨대, 대박이지?"


"빈틈없네."


"그래서 방 검사 바로 털었는데, 이제까지 안 걸리고 계속 모아놨던 게 한 움큼이래"

예리하게 수용자를 관찰하기로 이름 난 근무자에게는 한 가지 특혜가 따라온다. 그날은 수용자들이 사고를 치지 않고 조용히 있어 주는 특혜라고 해야 할까.

"야, 오늘 뿔테안경(김 주임) 떴다. 다음에 하자 다음에"


"저 주임님 약 복용 확인 제대로 하겠지? 다음에 하자 다음에"

빈틈없고 철두철미한 교도관이 자기 사동에 들어오게 되면 앞방부터 뒷방까지 소문이 금방 난다. 그날이 거사 치르는 디데이였다면 거사 기일을 미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노련 씨는 그날 본인의 사동 담당자가 꼼꼼하고 예리한 김 주임님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약 모으기를 멈출 생각은 없었나 보다. 대신 긴장이 됐는지 평소 몇십 장은 쓰던 성경 필사도 하지 않고 방에서 생각에 잠겨 있던 시간이 많았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철두철미한 근무자 앞에서는 20년 감빵 생활한 수용자도 긴장하는구나'

노련 씨가 거사를 준비하다가 실패로 돌아간 다음 날, 근무자들은 더 깐깐하게 자기 사동의 수용자의 약 복용 검사를 하기 시작했다. 나도 검사하는 시간을 새로운 마음으로 기다리게 되었다.

'이제부터 다 잡아줄 테다. 기다려라!'

두루마리 휴지 마냥 여러 바퀴 둘둘 둘러져 있는 긴 약봉지를 들고 각 방으로 가 당당하게 복용 명단을 호명했다.

"ㅇㅇㅇ씨, 약 먹읍시다"


"거기는 대기하세요. 자, 아~ 하세요. 혀 올리고."

이제는 나도 노하우들이 많이 쌓였다.


김 주임님께도 조언을 구하며 부지런히 메모해 놓은 약 복용 검사 시 주의사항은 이러했다.



- 손으로 약을 받을 때 손이 젖어 있지는 않은지 확인해라.

- 페트병에 입 붙이고 오래 마시면 마시는 부위에 약이 붙어있을 수 있다.

- 컵에 있는 물을 마시고 컵을 빼면 컵 안에도 봐라.

- 혀를 내밀면 넣게 하고 혀를 깔고 있으면 혀를 들게 해라, 천장에 붙이고 있으면 혀를 내밀어보게 해라.

- 검사하려는데 누군가 근무자를 부르면 입으로만 대답하고 한 눈 팔지 마라...


"부장님? 부장님?”


“부장님 이거 뭔가요?”

처음에 아무것도 모를 때는 약 복용 검사하고 있을 때 옆에서 말을 거는 수용자에게 일일이 다 대답했었다. 김 주임님과 대화하며 안 사실은 이 또한 '합동 방해 공작'이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미동도 하지 않고 내 앞에 수용자의 입만 본다.


뭐든 알고 나면 보인다고. 약 받을 때마다 화장실에서 헐레벌떡 나오는 척, 물기 있는 손으로 약을 받으러 나오는 수용자를 막상 보니 웃기기도 했다.

'어쭈? 얘 봐라?'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좀 있다 올게요."


"아 지금 주시면 됩니다."


"아니요. 물기 닦고 받든가 하세요.”


이 나쁜 놈들… 이제 더 이상은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수용자 앞에서 어떤 행동과 말을 할 때 '이 근무자는 안 통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해야 다음부터 규율을 위반할 틈을 노리지 않는다.




사람이 매 순간 예민하게 안테나를 세우고 있을 순 없다. 헐렁하고 여유로운 모습에서 사람 냄새가 나기도 한다. 하지만 일할 때는 예리하게 관찰해야 하고, 꼼꼼하게 일해야 실수가 없다.


교도관의 '매의 눈'이 규율을 잘 지키는 수용자에게는 든든함을 주는 따뜻한 눈빛으로 (앞 회차 주제), 틈을 노리는 수용자에게는 긴장감을 가지게 하는 차가운 눈빛이 된다.


그것이 내가 키워나가고 싶은 교도관으로서의 '눈'이다.




keyword
이전 13화당신의 예리함은 어디까지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