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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곰천사 Nov 23. 2016

칠레에 왔으니 와인을 마셔줘야지!

남미로 맨땅에 헤딩 -38

콘차이토로 와이너리 포도밭


“저기, 안녕하세요? 한국인 맞죠?!”


호스텔에서 반가운 한국인을 만났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반년 간 남미로 왔다는 누님의 이름은 명주.


“우수아이아요? 거긴 따뜻했어요. 토레스 델 파이네는 정말 예술이었고요!”


우리가 들르지 못한 파타고니아 관광을 마치고 산티아고로 왔다는 그녀의 이야기에 산악인은 오늘도 탄식한다. 나중에 파타고니아는 꼭 다시 와야겠다면서. 게다가 성수기임에도 이스터 섬(Isla Easter)까지 간다는 그녀의 일정표는 자못 알차 보였다. 다시 오기 어려운 남미 여행에 확실하게 투자한 모습이다.


누님과 함께 산티아고 외곽에 있는 콘차이 토로(Conchy Toro) 와이너리 투어에 참가했다. 악마의 와인이라는 별명을 지닌 카시제로 델 디아블로(Casillero del Diablo)가 이곳의 대표작으로 현재 우리나라에도 수입되고 있다.


투어에 참여한 인원은 대략 15명. 페루와 아르헨티나, 멀리서는 멕시코에서 온 가족도 있었지만, 동방에서 온 관광객은 오직 우리뿐. 스페인어 안내자를 따라 이곳을 만든 콘차이 토로의 집과 정원을 구경한 후 각종 품종의 포도가 열린 포도밭으로 이동했다. 투어용으로 꾸며진 포도밭엔 피노 누아(Pinot Noir)와 리슬링(Riesling) 등의 화이트 품종과 시라즈(Shiraz)와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등의 레드 품종이 오밀조밀하게 재배되고 있다.


땡볕 아래 열강 하는 가이드의 설명은 뒤로한 채 다들 탐스러운 포도를 따 먹느라 정신이 없다. 곧이어 시원하게 칠링(Chilling, 와인을 얼음물에 담그고 차갑게 만드는 방법)된 화이트 와인 시음이 이어졌다.


와이너리에서 화이트와인 시음

이후 서늘한 지하에 있는 와인 저장고로 이동했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이곳에 악마가 산다고 하는데, 그 옛날 이곳에 저장해둔 와인을 누가 조금씩 훔쳐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 주인이 악마가 산다는 소문을 퍼뜨렸다고 한다. 가이드는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아스탈 루에고(다음에 다시 봐요)”


라 말하며 점등 후 문을 닫는다. 어둠 속에서 얼핏 악마의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했고 갑작스러운 어둠에 당황한 관광객들은 어수선 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연출임을 알게 되자 곳곳에서 웃음이 터진다. 금방 다시 불이 켜졌고 레드와인 시음이 이어졌다. 와인 두 잔을 마시고 나니 약간 알딸딸한 것이 기분 좋다. 레드와인 시음을 끝으로 투어는 종료됐다. 마시고 난 와인잔은 기념으로 챙길 수 있으니 잊지 말 것.


지하 저장고에서 레드와인 시음

산티아고 한인 타운에 위치한 한식당 ‘숙이네’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산티아고를 찾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찾는 곳으로 김치찌개부터 불고기, 회덮밥까지 다양한 한식을 맛볼 수 있다. 마치 서울 시내의 한식당을 찾은 것 같은 착각을 느낄 정도. 더욱이 신기했던 것은 이곳을 찾은 칠레인들로 북적북적한 식당 분위기. 한식을 좋아하는 칠레인들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날 저녁, 호스텔에서 만난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런던에서 출장 온 아가씨 다니엘라, 멕시코에서 온 연인 로드리고와 소피, 사이프러스 출신 캐나다 국적의 카트리나, 이름을 밝히지 않은 네덜란드 청년 둘, 그리고 명주 누님과 우리.


멕시코 친구들에게 멕시코 추천 여행지를 물어보며 자연스레 몇 마디 대화를 나눈 것뿐인데 어느덧 새벽까지 술잔을 기울이게 되었다. 영어와 스페인어가 능숙하지 않아도 술 앞에선 다들 하나가 된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웃음이 끊임없이 터졌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아리송하다. 길 위해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 오늘 기분 좋은 추억을 하나 더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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