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글로 진상 피렵니다.
그날 나는 고객이 되고 싶었다. 그 사람이 왜 그러는지 정말 알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캐디였다.
그래서 이름 대신 호칭으로 불렸고, 질문보다 지시를 더 많이 들었다.
웃는 얼굴이 기본값이었고, 표정은 옵션이었다.
1번 홀에서 고객은 내 명찰을 보며 말했다.
“오늘은 캐디가 젊네.”
칭찬처럼 들리게 말하는 법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 말 뒤에는 늘 다른 말이 따라온다는 것도.
2번 홀, 거리 알려달라는 말에 대답하자
그는 클럽을 툭툭 바닥에 치며 말했다.
“확실해요?”
확실하지 않다고 말하면 일 못하는 캐디가 되고
확실하다고 말하면 건방진 캐디가 된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같았다.
3번 홀에서는 일부러 내 말을 반대로 했다.
공이 짧게 떨어지자
“봐요, 그래서 내가 안 믿는 거야.”
그는 이미 결론을 내린 사람처럼 말했다.
과정은 필요 없었다.
5번 홀에서는 바람을 탓했다.
“아까는 분다더니 지금은 안 부네?”
바람은 불고 있었다.
다만 그의 샷에만 불지 않았을 뿐이다.
전반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그의 스코어가 아니라 기분을 계산하고 있었다.
이 홀에서는 말을 줄여야 하고
저 홀에서는 눈을 더 마주쳐야 했다.
9번 홀에서 그는 말했다.
“캐디가 너무 말이 많아도 문제야.”
조금 전까지는 왜 말이 없냐고 했으면서.
후반 홀로 갈수록 그는 더 편해졌다.
사람을 부리는 데 익숙한 얼굴이 됐다.
10번 홀에서는 내 목소리를 흉내 냈고
12번 홀에서는 일부러 내 설명을 끊었다.
“됐고, 그냥 서 있어요.”
나는 서 있었고
그는 공을 쳤고
결과가 나쁘면 다시 나를 봤다.
14번 홀에서는
“이 코스 몇 년 했어요?”
대답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직 초짜네.”
그 말로 오늘의 나를 정의했다.
15번 홀에서 물을 건네자
“이거 안 시원한데?”
얼음은 있었다.
그가 맘이 뜨거울 뿐이다.
17번 홀쯤 되자
나는 공보다 그의 발걸음을 먼저 보게 됐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얼마나 빨리 따라가야 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됐다.
18번 홀.
마지막 퍼팅이 끝나자
고객은 갑자기 사람이 됐다.
웃었고, 수고했다는 말을 했고
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냈다.
“오늘 고생했어요.”
그 돈은 팁이 아니었다.
18홀 동안의 무례를
한 장으로 정리하려는 태도였다.
나는 받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그리고 말했다.
“가시는 길에 빵이나 사 드세요.”
그는 차에 오르다 말고 돌아섰다.
사람들을 보며 웃었다.
“쟤가 그러네. 우리 보고 이 돈으로 빵 사 먹으래.”
그 말에 사람들이 웃었다.
오늘 내내 그가 만들던 웃음이었다.
나는 웃지 않았다.
캐디는 웃음이 아니고
만 원은 사과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