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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나딘 Sep 01. 2020

[예능] 헨리의 펜듈럼 페인팅

그리고 캔버스 위의 'O'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는 종종 스타들이 소장하고 있는 미술품들이 등장합니다. 일상의 삶이 우리와 그리 다르지 않음에도 그들의 공간이 지닌 화려함은 가끔은 부러움과 동시에 상대적인 박탈감을 주기도 합니다. 지난 28일 방송에서 헨리의 새 집이 공개되면서 시청자들의 다양한 반응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MBC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 8월 28일 방송 일부 화면


그럼에도 그의 천재성과 도전하는 당당함, 동시에 너무 성실해 보이는 모습에 저는 방송을 보는 내내 누나 미소를 유지하며 헨리의 매력에 빠지고 말았네요. 특히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 캔버스 위에 펜듈럼 회화를 그리려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추의 진자 운동 원리를 이용하여 제작한 그림이 바로 펜듈럼 회화입니다.

펜듈럼 페인팅은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은 직선이나 원의 형태로 나타나기에 기하추상회화의 범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작가의 손을 벗어났다는 점이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라 볼 수 있겠네요. 바로 그림을 ‘그리다’라는 회화의 기본 전재를 탈피했다는 점을 말합니다.

그림은 단일 시점, 다시점, 혹은 다양한 방향에서 대상을 조망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리고자 하는 것을 하나의 평면에 작가가 직접 손으로 옮겨 그리는 것을 말했습니다.

잭슨 폴록,<Number 1A> , 1948, 캔버스에 오일과 에나멜, 172.7 × 264.2㎝.

그러나 추상회화와 표현주의가 서구에서 성행하면서 캔버스의 면과 물감의 성질이 만나서 우연히 생기는 자국 또는 흔적 역시 그림으로 읽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작가는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매체의 물성과 그것이 캔버스에서 구현되는 우연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자신의 무의식이나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했지요.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익히 들었던 추상표현주의입니다. 헨리가 만든 작품을 보고 박나래가 슨 폴록의 그림이 아니냐는 말을 했던 것도 이 같은 맥락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잭슨 폴록과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에 대해서는 미술가이드-미술랭의 버건디가 쓴 글을 참고해 주세요.

헨리가 페인트의 색을 바꾸고, 추의 운동 방향에 신경 쓰며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보면서 떠오른 작품은 두 가지입니다.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회화와 그것의 영향을 받은 일본의 구타이그룹(Gutai Group), 즉 구체미술협회라 불리는 작가들의 작품입니다. 물론 제 머릿속에서는 한국 아방가르드 작가들도 떠오르기는 했지만 오늘은 일본의 아방가르드 그룹의 작품을 알아보려 합니다. 그중에서도 헨리가 원의 형태로 물감을 떨어뜨린 점 때문에 요시하라 지로라는 작가의 작품에 집중해서 보겠습니다.


우선 구타이 그룹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구타이 미술은 일본의 전후 시기 간사이 지방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습니다. 1954년 결성되어 요시하라 지로가 사망하는 1972년까지 일본과 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전위적인 미술그룹이었습니다.

1950년대 중반에 이르면 일본 미술계는 전후의 일본을 극복하기 위한 움직임과 동시에 근대미술을 탈피하기 위한 새로운 현대미술의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합니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서구의 미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던 태도를 벗어나 미국의 미술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는데요. 당시 미국과 일본의 안보체계는 미국의 미술을 새로운 서구 미술의 중심으로 구축하는 주요한 근간이 됩니다.

《요미우리 앙데팡당전》(1951)과 《일본 국제미술전》(1952)은 일본 작가들에게 서양의 미술 흐름과 정보를 제공하는 계기가 됩니다. 또한 미술잡지 『묵미墨美』는 잭슨 폴록과 같은 서양의 추상회화에 나타나는 특징을 일본 서예의 서체적 특징과 연결 지어 미국의 추상표현주의를 빠르게 전파했습니다. 이것의 이면에는 일본 스스로 세운 기준으로 서구의 미술과 비평을 해석하여 아시아권의 추상회화를 대표하려는 야욕도 있었습니다.

구타이 미술은 다양한 학술적 관점에서 논의되었습니다. 패전 이후 일본에서의 정치적인 움직임과 그것에 반하는 미술운동, 그리고 모더니즘에 대한 일본 미술가들의 해석과 주체로서의 현대적 개인에 대한 논의 등 그 층위가 다양합니다. 오늘은 초기 구타이 미술이 목적으로 삼았던 작가 개인의 주체, 정신의 자유로움, 그것의 구현 방식에 관심을 두려 합니다. 다소 추상적인 문구인 것 같아 조금 풀어서 쓰겠습니다.

야마시타 기쿠지, <아케보노 마을 이야기>, 1953, 캔버스에 유채, 137 x 214cm.

세계대전에서의 참패 후 새로운 일본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이 미술계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었다고 위에서 말씀드렸죠? 현대로 나아가려는 움직임을 말합니다. 도쿄에서는 미술이 현실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습니다. 당시 일본의 상황이 전쟁 이후의 모습이었기 때문에 작가들은 개인의 상처와 소외를 주제로 우울한 주체를 다루었습니다. 야마시타 역시 도쿄의 회화연구실에서 초현실주의 회화를 접한 후 주변에서 본 현실을 초현실적으로 묘사하는 작가였습니다.

무라카미 사부로, 시라가와 카즈오가 작품을 만드는 모습. 구타이 그룹의 작가들은 자유롭게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간사이 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구타이 그룹은 개별자로서의 자유를 만끽하는 낙천적인 주체를 드러내려 합니다. 천황 중심의 황국을 벗어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향한 변화의 시대에 등장하는 개인과 관련이 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구타이 그룹은 파괴와 혼합, 우연성, 그리고 인간의 신체를 적극 활용하여 자유롭게 표현하면서 기존 미술 체제를 파괴하고 작가의 내면을 해방시킵니다. 이것이 도쿄와 다른 낙천적이고 자유로운 주체를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이라 말합니다.

또한 구타이 그룹은 물질에 대한 개념 역시 매우 주요하게 다루는데요. 구타이 미술은 물질을 변모시키지 않고, 물질에 생명을 더하는 데 집중합니다. 즉, 정신은 자유롭고, 물질과 정신은 대립적이나 악수하며 공존하는 것, 그리고 거기에 개인 신체의 행위가 더해진 미술이 바로 구타이미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좌) 요시하라 지로와 그의 작품, (우) 1958년 오사카의 아시야시립미술관에서 요시하라 지로와 미셸 타피에가 만난 모습.

구타이 그룹의 초창기 멤버이자 가장 영향력 있던 작가가 바로 요시하라 지로였습니다. 요시하라 지로는 '원'의 형태로 일본의 서예적인 특징에 따른 붓의 흔적과 미국의 액션페인팅을 결합하여 완전히 새로운 회화를 창조합니다. 그가 남긴 붓의 흔적은 신체의 움직임에 따른 과정과 그 결과입니다. 구타이 미술이 즉흥적이지만 정신의 자유와 해방, 물질성과 이성 중심이 아닌 신체에 기반한 표현에 방점을 찍고 있다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요시하라의 '원'은 미국의 추상표현주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후 해석과 응용을 바탕으로 추상적으로 승화시킨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좌) 요시하라 지로, <작품>, 1960, 종이에 잉크. (우)  <무제>, 1965, 캔버스에 유채.
2010년 루가노 주립 미술관에서 개최된 구타이 미술 전시 장면

그는 캔버스의 직조를 그대로 드러나게 둔 상태로 더욱 강조하기 위해 주변을 검게 칠하기도 했습니다. 기존에 캔버스의 천은 베이스로 가린 후 그 위에 그림을 그렸다는 점을 고려하면 자유로운 주체 내면을 해방시키기 위한 의도에서 요시하라가 택한 방식은 탁월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좌) 요시하라 지로, <흰 원>, 1965, 캔버스에 유채, 31.8×41㎝. (우) <흰 원>의 일부 확대 이미지로 캔버스의 짜임이 보입니다.

구타이 그룹이 기존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미술을 만들려 했던 의도에 집중한다면 요시하라의 노력은 그 목적에 절대적으로 부합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서예라는 전통적 장르를 현대적인 것으로 승화시킨 점 역시 높이 살 수 있습니다. 기존의 체제를 해체한다는 이 전통의 부정이 아닌 뿌리를 공유하면서 수평적 발을 이룬다는 점은 우리 미술계에서도 고심해야 할 방향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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