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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나딘 Sep 23. 2020

[뉴스] 코미디 같은 <코미디언>

마우리치오 카텔란, <코미디언>, 2019, 갤러리 패로탕, 마이애미

2019년 12월 5일부터 8일까지 마이애미에서 진행되었던 아트 바젤에서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의 <코미디언 Comedian>으로 인해 바나나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작가는 페로탱 갤러리(Perrotin Gallery)의 한 벽면에 바나나를 덕테이프로 붙여두었습니다. 그리고 바젤이 끝나는 8일 데이비드 다투나(David Datuna)는 배가 고파 벽에 붙은 바나나를 먹어치웠습니다. 그의 소감은 “아주 맛있었다”였습니다. 그는 배가 고파서 바나나를 먹었다고 합니다. 데이비드 역시 행위 예술가이었기에 바나나를 붙이고 다른 작가에 의해 바나나가 먹힌 이 소동은 한바탕 난리가 났었습니다. 더욱이 이 바나나의 가격이 약 1억 8000만 원(약 15만 달러)이었기에 배가 고팠던 데이비드는 세계에서 최고로 비싼 바나나를 ‘맛있게’ 해치운 모양새가 되었습니다.

데이비드 다투나가 <코미디언>을 먹는 장면

이제 좀 고민을 할 필요가 있겠지요? 

평범한 과일이 어떻게 예술이 되었고, 또 먹어치운 바나나 작품(?)은 어찌 되었는지 말입니다. 

(데이비드는 과일 바나나를 먹은 것이 맞습니다. 이후 갤러리는 다른 바나나로 교체했습니다.)


우선, 바나나를 벽에 부착하는 행위는 전시를 위해 작품을 설치하는 노동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설치된 작품이 관람되고 바젤에서 거래가 되는 과정은 미술 시장의 영역이죠. 작가는 미술관이라는 기관과 전시의 메커니즘, 그리고 예술의 범주에서 시장원리와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움직임들을 ‘바나나’를 다리 삼아 드러낸 것입니다. 갤러리 페로탱(Perrotin)의 창립자 에마뉘엘 페로탱(Emmanuel Perrotin) 역시 해당 작품이 “세계 무역을 상징하고,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며, 고전적인 유머 장치”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진정한 유머는 데이비드가 먹어 치우면서 확실히 매듭을 지은 것 같네요.


그럼 아무나 갤러리의 흰 벽에 무엇인가를 가져다 두었다고 해서 예술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사물 혹은 비물질이 예술의 범주에 들기 위해서는 미술사의 역사적 맥락을 필요로 합니다. 동시에 동시대 미술의 흐름 등을 파악하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코미디언>과 관련된 여러 기사를 훑어보니 그 시초를 대부분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가 남성용 변기에 R. Mutt로 서명하고 출품했던 데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지요. 1917년 뉴욕의 독립미술가협회는 새로운 미술을 장려하기 위해 전시를 개최하기로 했습니다. 6달러의 지원금과 서류를 작성하면 누구나 작품을 출품할 수 있는 전시였지요. 당시 협회장이었던 뒤샹은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알 머트(R. Mutt)라는 이름으로 변기를 출품했습니다. 그 변기는 전시 개최 목적과 달리 출품이 거절되었고, 뒤샹은 다다이스트들이 발간한 잡지 <블라인드맨>에 알 머트 씨의 작품이 거절되었다며 독립미술가협회 전시운영위원회의 결정에 반발하는 서명문을 기고했습니다. ‘누구나’의 출품이 거절된 이 사건은 ‘미술계’의 기저에서 작동하는 폐쇄적이며 관료주의적인 태도를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지요. 또한 공장에서 생산된 일상적 사물이 작가의 아이디어와 서명을 통해 예술의 범주에 포섭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마르셀 뒤샹이 [블라인드맨]에 기고한 글 이미지

한 편의 코미디 같은 해프닝을 만든 <코미디언>은 뒤샹의 사례에서 더 나아가 미술품이 거래되는 과정과 더욱 심오한 ‘작품’의 소화(?)까지 재고하게 만들었지요. 이와 같은 사례는 이브 클랭의 작품과 퍼포먼스에서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브 클랭은 <빈 공간>을 통해 작가가 생산한 분위기를 전시했습니다. 이 작품은 사전에 전시 초청장을 통해 입장권을 받은 사람은 무료로 관람이 가능했으나, 소지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1,500프랑의 입장료를 받았다고 합니다. 뒷골목에 별도로 설치한 입구에서 입장권을 확인하고 리셉션 장에서는 진 쿠앵트로 메틸렌 블루로 만들어진 음료를 마실 수 있었습니다. 이 음료수 덕분에 입장객의 신체에 작품이 침투할 수 있었으며 추후 푸른색 소변을 통해 작품의 소화와 배설이 확인되었지요. 결론적으로 이 전시는 빈 공간의 전시실에서 예술적 분위기만을 체험하고 돌아가도록 기획되었던 것입니다. 그 공간 내에서는 작가의 통제를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관람자들은 작가가 창조한 분위기를 체감하게 된 것입니다.

이브 클랭, <빈 공간 Le vide>,  1958.

이후 클랭은 <비물질의 회화적 감성 지대 Zones of Immaterial Pictorial Sensibility>를 판매하는 퍼포먼스를 통해 예술적 분위기, 즉 비물질로서의 작품과 그것의 화폐 교화 가치에 대한 실험을 선보입니다. 1959년 3월 21일 안트베르펜의 한 갤러리에서 전시 오프닝 당일 클랭은 관중들에게 작품을 소개하고 구매의사를 밝힌 이들에게는 1kg의 금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클랭은 거래 장소에 미술평론가나 미술관 관장을 증인으로 동석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클랭은 은행의 수표처럼 생긴 영수증을 써주었지요. 거래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센 강에서 구매자는 영수증을 태웠고, 클랭은 급박의 절반을 날려버렸습니다. 나머지 금은 성 리타 성당에 봉헌되었고요. 그가 금박을 날린 행위는 금의 물질적 가치는 부정하고 추상적인 가치만을 취한 것을 의미합니다.

이브 클랭의  <비물질의회화적 감성지대> 를 거래하는 퍼포먼스


다시 바나나로 돌아가겠습니다. 작가가 바나나를 벽에 붙인 행위는 예술적 가치가 없는 특정 대상이 작가의 손을 통해 그리고 그의 아이디어를 통해 미술시장의 거래 과정을 수면으로 올린 셈이 되지요. 미술계의 작품 가격 측정이나 거래 과정 모두를 비틀어 보여준 것입니다. 이 작품은 누가 봐도 수일이 지나면 썩게 되어 있었지요. 그전에 행위예술가의 허기를 달래주었지만요. 먹어치운 바나나는 새것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아무렇게나 붙인 것이 아니라 땅에서 175cm의 높이에 설치하라는 작가의 세밀한 지시사항이 적인 14쪽의 설명서를 바탕으로 설치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작가는 정품 보증서와 함께 이 설명서를 갤러리 측에 넘겼고, 구매자 역시 이것을 구매한 것입니다. 구매자는 사물이 아닌 예술의 가치를 측정하고 보증하는 것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가치들의 증명서와 작품 설치 설명서는 구겐하임 미술관에 기증되었습니다. 그러니 데이비드는 바나나를 맛있게 먹었고 음식과 더불어 예술적 감성을 섭취했습니다. 바나나는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었지만 그 가치는 갤러리에 소장되었지요. 그리고 예술적 감성은 희화되어 온라인을 통해 세상으로 퍼져나가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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