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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나딘 Nov 05. 2020

엄마의 그림일기-예비초딩

토리야, 너무나 오랜만이구나. 

정말이지 10월부터는 어찌 시간이 흘렀는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바빴어.

누군가 그러더라고, 백수가 과로사한다고.

그래서 또 난 욱!!!

"엄마가 왜 백수야???? 난 주부이자 부인이며, 엄마, 연구원으로 1인 다역을 하는 중이라고!!!"


요즘 난 가을 낙엽을 바삭이라고 부르며 신이 나서 뛰어다니는 토리와 달리, 많이 예민하단다.

(언젠 예민함이 없었나... 싶지만)


토리의 초등학교 입학을 코 앞에 두고는 포스트 코로나 세대가 되어버린 너의 사회생활 방식의 변화 및 그에 따른 준비를 시켜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단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토리에게 모질고 냉정한 말투로 "세상 모든 사람들이 너를 챙겨주지 않아! 스스로 해야 해."라고 말해버린단다.


미안...

 

요즘 초등학생들은 학교도 제대로 못 가고, 모든 수업은 온라인으로 대체되거나 EBS 영상을 본다고 하더라. 

학원도 수업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한다고 하니, 걱정이 태산이야.

영어나 수학 학원 이야기가 아니라, 태권도나 수영, 피아노 혹은 네가 배우고 싶다던 첼로 등을 가르치는 곳 말이야.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다고 해서 합창단원으로도 활동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는데 이 모든 것들이 어렵게 된 이 시국이 개탄스럽다.


토리는 중국어가 노래하는 것 같아서 좋다고 말했지? 이 그림도 좋아하려나? 1992년생인 이 작가의 이름은 얀 씬웨(yan xinyue)란다. 

Yan Xinyue, <Mother>, 2020. /  <Sysyphus in 2020>, 2020

그림은 중국의 젊은 작가가 그린 작품이야. 마음을 글로 다 표현하기보다는 딱, 저 두 작품이 내 심연을 대표해주는 듯하구나. '엄마, Mother'가 지고 가야 하는 돌덩이 같은 마음의 짐을 어쩜 저리도 잘 표현했을까?


작가는 사회를 구성하는 한 사람으로서 겪어야 하는 것과 개성이 있는 주체로써 담아내고 싶은 모든 것들, 이 둘 사이의 갈등을 작품에 담아내려 했단다. 사회인과 개인 크게 다른 것 같지 않지만, 사실은 진짜 자신을 숨기고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단다. 그래야 일도 가질 수 있고, 직장 내에서 잘 지낼 수 있으며, 또한 돈을 벌 수 있거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아. 그래서 이 작가는 정확하게 사회인과 진짜 자신 사이의 고민을 그림으로 담아내려 했단다. 


사회인으로 변신한 자신과 내면의 소리가 다르게 울리면 매일매일이 작은 전쟁의 연속일 거야. 시시포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인데, 제우스를 분노하게 만들어서 저승에 가게 되었데. 그런데 거기에 가서 저승의 신을 속여 아주 오랫동안 살았다는구나. 그 벌로 나중에는 영원히 아주 무거운 바위를 산 정상에 올리는 벌을 받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정말 무서운 이야기지. 작가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순간을 시시포스가 받은 형벌과 같다고 말하는구나. 나를 속이거나, 다른 사람들을 속이는 행위를 우리는 매일 반복하고, 그 벌로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나 봐.


음, 그러니까 쉽게 다시 말하자면...

날씨가 좋아 들판에 누워서 편하게 간식 먹고, 음악 듣고, 뛰고 싶다고 해도 나중에 토리가 좀 더 성장하면 언니가 되었으니까 당연하게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학교나 일터로 가야 한단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갈등은 시작되는 거란다. 지금의 토리도 놀고 싶고, 매일 태블릿을 보고 싶어도 유치원에 가고,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며 참아내잖니. 사실은 엄마한테 화도 내고 싶고, 떼쓰고 싶지만 너도 스스로 너를 타이르는 거 다 안단다. 

(이런 것이 바로 내가 너를 사회로 보내기 위해 준비를 시키는 것인데, 매일 엄마도 미안함을 안고, 한편으로는 토리만의 개성을 억제시키는 것이 아닌지 죄책감을 안고 있단다. 그럼에도 필요하기에.... 으휴!)

이러한 마음의 소리와 지켜야 하는 것들이 서로 다른 말을 하면 둘 중에 하나는 타이르는 것, 이 것을 작가는 속이는 거라고 생각하는 듯 하구나.


특히 이렇게 빠르게 성장하는 도심 속에서 더 빠르게 변화를 겪는 기상과 질병의 확산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는 너희 세대들은 아무리 내가 준비시키려 해도 불가한 것 같아 더 불안하구나. 그래서 돌을 이고 가는 그림 속 인물 위로 떨어진 물 방울이 마치 내 눈물 같은 느낌이구나.

<Glasses Crisis>, 2020, Oil on Canvas.

어쩌면 하루하루가 이리 불안을 떨칠 수 없는 연속일까? 지나면 정말 별일 아니겠지만, 지금 너희를 보면 마음이 참 복잡해. 엄만, 어릴 때 집 밖에서 '00야~ 노올자~~~~'하면 뛰쳐나갔었고. 놀이터나 뒷 산에서 땀 흘리며 놀고 있으면 누군가 지나가다 '엄마가 찾는다.'라고 말해주면 들어가서 밥 먹고... 그렇게 지냈단다. 지금 너의 이 시기는 그렇게 놀아야 하는데, 책상에 앉아 숙제를 하고 있는 너를 보면 기특하면서도 불안하지. 엄청난 숫자의 유리컵을 들고 떨어뜨리는 저 남자와 같구나. 지키기 위해서는 몇 가지는 떨구어야 하는 그런 상황.

무얼 지키고, 무얼 떨어뜨려야 하겠니?

<Admire>, 2020, Oil on Canvas.

아~~~ 초등학교 입학을 두고 정말이지 고민이 더 많아져서 어깨가 아파온다. 이 와중에 언니 된다고 마냥 신나 하는 우리 토리. 밝구나~ 내가 너의 밝음 하나는 반드시 안 떨구고 지키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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