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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나딘 Oct 13. 2020

엄마의 그림일기-"달리고 싶어요"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제일 싫다는 7살 꼬마 토리가 어느 날 아빠에게 간절하게 "아빠~ 나 달리고 싶어요"라고 속삭였다. 약 1~2초 정적이 흐른 후에 크게 웃었지만 속이 알 수 없는 어둠으로 채워지더구나. 주택에 사는 토리는 집 안에서 뛰는 것에 대해 그다지 제한을 받지 않고 자랐는데도 그렇게 달리고 싶었다니...


마스크를 벗으면 안 된다.

손은 반드시 비누로 오래 씻었야 한다.

물 컵도 친구랑 같이 사용하지 말아라.


매일 단속하듯 너에게 퍼붓는 말들이 얼마나 족쇄같이 느껴졌을까? 마스크를 하루 종일 끼고 답답함을 참아내는 꼬맹가 속 마음을 겨우 뱉어낸다는 것이 달리고 싶다는 표현이었겠지?

그래서 결심했단다. 2단계가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여행을 가기로 마음먹었지.


우리가 향한 곳은 양양이라는 바닷가.

한적할 것이라 기대했던 엄마의 바람은 역시나 헛된 것이더구나. 생각보다는 사람이 많았어. 물론, 추워지는 날씨인지라 그래도 북적임을 피할 수 있었기에 천만다행이라 생각했지.

체크인 후 광장으로 향한 너의 발걸음은 어느새 풀어놓은 망아지처럼 뛰고 있더구나.

그 넓은 광장을 뛰고, 달리고 또 구르더니 결국은 달리기 시합을 제안하더군.


내가 아들을 낳았던가? 아니면 말을 낳았던가?

고삐가 풀린 망아지도 너만큼은 안 뛰겠다, 이 녀석아.

결국 끝자락까지 달린 넌 바다를 발견했지. (이제야 이걸 보다니... )


주춤주춤....

(아~ 입수하시겠구먼)

하나씩 벗더니, 결국 발을 담그고 파도와 씨름을 하더라.

파도에 모래를 뭉쳐서 엄청나게 던지고, 뭐라 뭐라 말도 하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너에게 파도를 조절하는 능력이 있다며? 그리고 그 모래 뭉치 던지기는 파도와 캐치볼을 한 것이라고....

이쯤 되면 너의 면역력 테스트가 아니겠느냐? 어디 한번 보자는 마음으로 내버려 뒀다.

실컷 파도 조정 시간을 가지더니 강아지 땅 파듯이 손으로 모래 구덩이를 파더라.

확실해졌다. 난 망아지+강아지를 낳았던 것이었다.


그리고 넌 또 달렸다.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풍경에, 속이 뒤집히도록 엉망이 된 너의 몰골과 쉼 없는 달리기를 보고 있자니 그림 속 한 남자가 생각하더라.

장 프랑수아 밀레, <씨 뿌리는 사람>, 캔버스에 유채, 1850, 미국 보스턴 미술관.

바르비종 화파의 일원이었던 밀레는 자연을 그리는 화가였어. 그런데 아름다운 풍경을 그리는 것보다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농부들의 삶을 그림으로 남겼던 작가야. 경사진 산비탈을 내려오면서 씨앗을 뿌리는 이 농부의 모습이 달리는 토리를 보고 떠오르더라. 물론, 너는 놀이이고 이 농부는 고달픈 삶과 힘겨운 노동의 가치, 그것의 존엄성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완전히 다르지.

해가 지면 일을 그만해야 하니까, 일몰의 시간까지도 이 농부는 조금이라도 더 씨앗을 뿌리기 위해 서두르고 있구나. 조금은 벌어진 입이 차오른 숨을 내쉬는 농부의 힘겨움을 오롯이 전해주고 있어. 아주 젊어 보이지는 않지만 튼튼한 다리와 팔 근육이 옷을 입었음에도 그대로 보이는구나. 오랜 시간 동안 고된 노동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단다. 넝마가 되어버린 신발과 다 헤어진 소매가 농부의 가난한 삶을 대신 말해주는구나.

전체적으로 어두운 색채로 칠해졌지만, 오른쪽 위에 언덕을 보면 두 마리의 소를 끄는 농부가 있는 하늘의 밝고 붉은빛이 일몰의 시간을 말해주고 있어. 이렇게 바르비종 화파는 빛과 대지의 연구를 깊이 했단다. 나중에 이 화가들은 인상파에 많은 영향을 끼치기도 했지. 그리고 토리가 어린 시절 "맘마~맘마~"를 외쳤던 <감자를 먹는 사람들>을 그렸던 빈센트 반 고흐도 밀레를 너무 좋아해서 이 <씨 뿌리는 사람>을 따라 그리기도 했데.

빈센트 반고흐의 <씨 뿌리는 사람>(1888)과 <The Sower after Jean-Francois Millet>(1889

신이 나서 침까지 흘리며 달리는 토리의 놀이와 노동의 가치를 전해주는 이 농부의 달리는 모습은 감히 엮을 수 없을 거야. 그런데 이 둘이 겉모습뿐 아니라 나에게 전해주는 어떤 느낌이 있었단다.


'난 저렇게 열심히 숨이 벅차도록 최선을 다해 달려본 경험이 있던가?'


맞아. 난 매번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고, 최선을 다한다 믿었단다.

그런데 열심히와 최선은 누구나 하는 방법론일 뿐이지.

숨이 턱까지 차도록 죽을힘을 다해서, 마지막 한줄기 빛이 남아 있을 때까지 무언가에 매진했던 기억이 가물가물하더라.


다시 반성하면서도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참아 내며 너의 모래를 털어냈단다.

그러다 "엄마 배고파요~ 밥 주세요~" 이 한 마디에 모든 번뇌가 사라졌지.


맛있게 먹고, 푹 자고 맞이한 새로운 아침에 우린 또 달렸다.

그래! 이렇게 숨이 턱까지 차오르게 미친 듯이 재미나게 달리자.

결승점이 없더라도 어디든 마구 달려가면, 가면서 그렇게 행복해하는 널 볼 수 있잖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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