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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나딘 Nov 13. 2020

엄마의 그림일기 - 토리의 손

토리야, 엄마야~

요즘 새삼스럽게 토리가 너무 어른스럽게 느껴진다. 

며칠 전에는 "엄마는 꿈이 뭐였어?, 뭐가 되고 싶었어?"라고 물었단다.


아~ 띵!!!!

운전 중이었는데, 헉!! 숨이 막혔다.


난 꿈이 뭐였더라?

알브레히트 뒤러, <멜랑콜리아 I>, 1514.

토리에게는 내가 어린 시절의 꿈을 말해주었어.

뮤지컬 배우, 교수가 되고 싶었다고 말했지.


"근데 엄만 승무원을 했었잖아."

맞아~, 그것도 10년이 넘게.....

그 기간이 나에게 세상의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는 시기이면서 동시에 나를 조금 더 알게 해 주는 계
기가 되었단다. 그럼에도 난 그 직업을 너무나 싫어했었어. 부끄러워했다는 점이 맞겠다.


너에게 내가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에 고맙게도 토리는 본인의 꿈 이야기를 해주었어.

나와 겹치는 부분은 '뮤지컬 배우'였단다. 


토리야, 엄마는 아직도 꿈을 꾸고 있단다. 그런데 그 꿈이 내 생애 이루어질 수 있을지 두렵단다.

꿈이라는 것이 어쩌면 쫒아야 하는 것이기에 이루기보다는 이루기 위한 과정이 더 빛이 나는 것일 수도 있겠지.

그럼에도 꿈을 이루지 못한 내가 실패한 사람일까 봐 무섭단다. 더욱이 너에게 비추어지는 나의 모습이 어떨지 걱정이야.


여자인 내가 여자인 너에게 롤모델은 아니어도, 적어도 엄마처럼 안 살겠다는 다짐을 안기고 싶지 않거든.

너와의 꿈 이야기 뒤, 걸어가면서 너의 손을 잡았는데 정말 많이도 자랐더구나.

손을 꼭 잡기가 두려워서 내 손가락을 조심히 너의 손바닥에 끼웠던 기억이 어제 같은데....

이제는 친구의 손 같은 느낌이더구나.

토리야,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토리야~

엄마의 꿈은 사실 아주 소박해.

네가 건강하게 평생 살아갈 수 있기를...

형제자매가 없는 네가 평생 외롭지 않기를....

네가 원하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과정에 내가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그리고 네가 언젠가는 나의 삶을 존중해줄 수 있기를 바란단다.


전문성을 말한다면 난 평론가로 널리 이름을 떨치고 싶단다.

그런데 난 멀티에 매우 부적합한 성격으로 지금 이 수준에 만족해야 할 것 같다.

그럼에도 이제 40%의 삶을 보낸 지금, 남은 60%의 시간을 고대하고 있어.

꾸준함에 장사는 없다잖아.


토리야, 뒤러라는 작가는 매우 가난했데.

친구와 둘이 미술가가 되기로 결심을 했는데, 학교 등록금을 내기에 둘은 너무 가난했단다.

그래서 친구는 본인이 돈을 벌고 뒤러를 뒷바라지 한 뒤에, 뒤러가 작가로 활동하면서 그 친구의 등록금을 내기로 했단다.

 

뒤러의 작품이 팔리면서 어느 정도 살림이 좋아지기 시작할 무렵, 그 친구는 너무 고생한 나머지 손이 굳어버려 더 이상 작품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어 미술작가 지망생을 포기했다는구나.

그럼에도 뒤러의 미래를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뒤러는 그의 손을 그렸다고 하는구나.


작가의 꿈은 포기했어도 그의 손은 너무나 고귀하게 오래도록 영생하는구나.


토리야,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자식을 위해 어느 정도의 삶을 포기한단다.

그럼에도 내 자식이 본인의 삶을 포기하지 않기를 희망하지.

나도... 마찬가지야.


그런데, 최근 너의 질문과 엄마가 친구와 나누었던 대화를 곱씹어보니 본질적인 문제를 회피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준비했던 나의 커리어들이 아까워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닌가? 

또, 안주하고 싶은데 변명거리를 찾았던 것은 아닌가?


Yes or No로 명확히 답을 할 수 없더구나.


"엄마는 꿈이 뭐였어?"

너의 이 짧은 한 마디와 너의 자란 손이 엄마를 다시 일깨우는구나.


모든 희생이 저 손처럼 무조건 아름답지는 않단다.

특히, 변명의 여지를 두기 위한 희생은 더더욱 그렇지.


그래서 토리야. 엄마 좀 더 분발하기로 했어.

일을 하면서 아이의 핑계로 무언가를 회피하거나, 연구에 매진하지 않거나..

혹은 공부한다는 핑계로 너를 조금은 방치하는 일이 없도록 해볼게.


변명은 더 이상 그만할게. 그치만 힘에 부치겠지....

그럼에도 변명 뒤에 숨는 내가 이제는 나도 싫구나.


오늘도 나에게 깨침을 준 토리야 고맙다.

그리고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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