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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나딘 Dec 04. 2020

엄마의 그림일기-죄송합니다.

토리야, 전래동화 중에 '멸치의 꿈' 기억나니?

멸치가  어느 날 잠을 자다가 자신이 구름을 탄 채 승천한 뒤 더웠다 추웠다 하다 눈이 내려오면서 땅에 내려오는 꿈을 꾸었는데 해몽을 해보니 용이 되어 승천하는 꿈이라고 했던 이야기 말이야. 가자미는 그 꿈을 멸치가 어부에게 잡혀 낚아 올려졌다가 석쇠에 구워지니 더웠다 추웠다 하는 것이라고 해석했었지.


며칠 동안의 엄마가 바로 멸치의 꿈과 같은 기분을 느꼈단다. 하늘로 올랐다가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길몽이 아니라 흉몽으로 마치 잡아먹힐 것 같은 그런 공포 속에 살았단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신나게 뛰어야 하는 7살 토리가 지금 상황 때문에 너무 갇혀 지내는 것 같아 너무 안쓰러웠어. 그래서 방역을 나름 철저하게 하시는 관장님이 운영하는 태권도장에 너희 삼총사가 다니게 되었단다. 관장님도 또래의 아이를 둔 어머님이시기에 너무 믿음직했어.

첫날 토리는 두 타임 등록을 해달라며 너무 재미있고 신나서 계속하고 싶다고 했지. 도복을 입고는 돌려차기도 안다고 자랑을 했었고, 부르면 쏜살같이 달려와서는 태권도를 배워서 더 빨라졌다고 자랑을 했지.


"유단자... 인가???"

너무 신나는 모습에 어설프기 그지없는 너의 태! 권! 자세는 걱정스러운 마음을 단숨에 녹여버렸단다.


그렇게 10회도 못 채운 지난 주말에 도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어.

근처 초등학교 확진자와 동일한 시간에 토리가 수련을 했다고....


뉴스에 나오던 그 밀접접촉자가 되어버린 거지.

먹먹하고 당장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이미 접촉 후 5일째가 지나던 당일은 주말이라 검사도 어려웠단다.

잠시 후에는 보건소에서 문자가 오더구나. 다음 날 오후 3시에 검사를 받으러 오라고.

결과는 화요일 오전에 나왔어. 너무나 감사하게도 음성이었단다.

그럼에도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는 연락과 또 필요 없다는 연락을 받으면서 모순되는 조치에 엄마는 분노가 사라지지를 않더구나. 물론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아직 증상이 발현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너무 컸단다.


가족 모두 윤리적 입장에서 격리에 들어갔고, 그렇게 며칠 후 우리는 격리가 필요 없다는 내용을 전달받았단다. 또 감사했지.

그런데 타 부모들의 우려가 크니 1주 후에 등원을 해달라는 원장님의 조심스러운 전화를 받았어.

이해하지..... 그러면서도 동시에 서럽고, 또 죄송스럽고 너무 복잡한 감정이 올라왔어.

고민 끝에 너도 나도 좀 여유를 가지기 위해 우리는 휴원을 결심했어. 집에서 그동안 못 읽은 책도 읽고 연산도 좀 해보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기로 했지.

우루과이에 설치된 유영호 작가의 <Greeting Man>, 2012.

토리야, 위의 조각상이 무얼 하는 것 같이 보이니? <인사하는 사람 Greeting Man>이라는 작품이야. 우리가 만나면 "안녕하세요?"하고 고개를 숙이지? 누구를 만나든, 어디에서 보았든지 우리는 먼저 인사를 하잖아. 유영호 작가는 사람들이 관계를 맺는 시작이 인사라고 생각했데. 그래서 서로를 존중하고 평화와 화해를 상징하는 이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하더라.

그런데 엄마가 이번 일을 겪고 나니 이 작품이 사죄하는 자세로 보이더구나.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며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것 같이 느껴지기 시작했어.


지금은 전 세계가 코로나로 몸살을 앓고 있단다. 또 한국에서는 세 번째 유행이 너무 심하게 진행되고 있단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든 또 누구든지 그것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단다. 도장을 보낸 엄마의 결단이 무리였다는 생각에 엄마는 고개를 숙였단다. 너에게도 그리고 유치원에도...

우리 삼총사의 부모들은 근심을 안겼다는 이유로 모두 죄인이 되었어. 그럼에도 너무 감사하게도 그 누구도 더 이상 감염되지 않았지. 그래서 또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이게 되는구나.


같은 꿈이라도 해석하는 입장에 따라 길몽과 흉몽으로 그 길이 달라졌듯이, 같은 조각상이라도 보는 이의 감정과 시각에 따라 사죄와 감사로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구나.

코로나라는 이 바이러스와 감염에 따른 사회적 변화 등을 어떠한 시각에서 보아야 할지 고민이 되는구나. 이전과는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 그리고 또 질병이 안기는 고통만큼 사회적으로 질타를 받는 정신적 고통도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엄마도 언어 사용에 조금 더 조심해야겠구나.


아직 충격에서 사실 벗어나지 못했고, 두려움을 떨치지는 못하고 있지만 너무 감사하게도 검사 결과가 음성이었고, 친구들도 건강하잖아. 앞으로도 같이 잘 이겨내고, 또 이제는 조금 더 조심하자.

그리고 토리야, 엄마가 너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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