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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나딘 Dec 09. 2020

엄마의 그림일기 - 말과 양

깜짝 놀랐던 마음을 추스르고.... 아니지.

진정이 되기도 전에 12월 휴원 결정을 했지. 그리고 바로 24시간 붙어 있기 시작!


'알차게, 그리고 재미있어도 교육적으로 시간을 보내자.'

'아! 체육도 해야지. 그리고... 새로 주문한 책이 언제 배송되더라?'

'메뉴!!! 세끼를 겹치지 않게 해 주려면... 음....'


정말 한 끼를 더 집에서 먹고 약 5시간~6시간 정도 더 머물게 된 것뿐인데, 진짜 이 정도라고?


초등학교 1학년 수학문제지, 아이의 창의력을 키운다더니...  엄마의 화만 키우더구나.

온갖 창의력을 다 동원해서 너에게 야단을 치게 만드는 이 문제지는 대체 뭐냐?

안 되겠다. 이렇게 하면 오히려 공부가 독이 되겠다. 

자자~ 그래 운동을 하자. 

안 들어가는 자전거를 내 승용차 뒷 좌석에 욱여넣고 마스크와 도시락을 챙겨 자전거 공원에 도착한 뒤...


토리는 약 5미터 정도 굴리더니 

"엄마~ 배고파요. 밥 먹고 시작하자."

 아윽... 뿌드득... 그래그래~~~ 

주차장 벗어나기 전에 말해줘서 고맙다.

금강산이 뭔 소용이며, 운동은 배고프면 못하겠지. 

우리 토리가 밥순이지. 내가 이럴까 봐 미리 다 준비해왔다. 먹고 신나게 달려보자.


따뜻한 삼계탕 국물에 밥을 양껏 먹은 토리는 이제 배가 찼으니 준비가 되었다며 달리겠다더라.

그럼 신나게 평지를 밟을 것이지... 보조바퀴 달린 자전거로 산악자전거 씽씽 달리는 그 언덕을 오르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이유를 모르겠더구나.


난 무수리냐? 뒤에서 밀고 같이 뛰고...  나의 체육시간인 거냐? 아니면 네가 나의 조련사?

내 인내심은 그렇게 그렇게 매일매일 한계를 측정하게 되었단다.


모래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고는 말띠의 토리가 내게 건넨 말은....  "엄마, 이번엔 진짜 다리로 달리러 가자!"

'아... 강적이다.'

그런데 그 순간에 토리는 함박웃음을 띠며 "신나게 노니까 너무 좋다. 오늘이 최고의 날이다."라고 말하더구나. 


이거였구나! 엄마라고 종일 붙어 있으면서 잔소리하고, 야단치며 무언가를 가르치려 덤볐는데, 토리가 원하는 것은 이렇게 몸으로 같이 뛰고 웃고, 서로 밀어주면서 웃는 거였구나! 애들이 다 그렇겠지만 어쩌면 이런 순간에 가장 많은 교감이 이루어지나 보다. 이거였던 거야^^

바실리 칸딘스키의 화집, <Sounds>에 수록된 목판화

이 작품은 나무에 칼 같은 도구로 홈을 파면서 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색을 칠하고 종이로 찍어낸 목판화야. 다색 목판화지. 한 번에 하나의 색상을 찍어낼 수 있어서 많은 작업 과정을 필요로 한단다.

칸딘스키가 시와 판화 작품을 묶어서 만든 화집 <Sounds, Klänge>에 수록된 작품이란다. 토리와 내가 잔디 위를 뛰던 당시 난 폐가 터질 것 같아 붙잡으면서 순간 이 작품이 떠오르더구나. (제목이 생각이 안 나서 많이 찾아야 했었지만...) 

작품 속에 조금 쳐진 모습으로 말을 타고 가는 앞의 인물이 엄마 같더라. 나뭇가지가 양의 뿔처럼 보이기도 해. 그리고 신나게 달리려는 느낌을 자아내는 뒤의 인물이 바로 토리 같았어. 노을이 질 때까지 밖에서 뛰놀다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토리의 모습은 다시 앞의 인물과 같은 형상이었단다.


너무 웃기지 않니? 변화하는 감정에 따라 투영되는 인물도 변한다는 사실이...

마찬가지겠지? 유치원에 등원하는 모습을 보면 애틋하고 돌아오면 그토록 보고 싶었다고 매번 말을 하던 나인데... 며칠 같이 있었다고 힘들어하는 엄마의 마음도 생각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건데 말이지. 게다가 자의적으로 휴원 결정을 내리고 내가 스스로 힘들어하다니 이게 무슨 경우니? 그러고 보니 토리도 황당했겠네... 엄마가 가지 말자고 해놓고, 다른 애들 다 공부하는데 집에서 놀기만 하면 되겠냐며 야단을 쳤었는데, 정말 미안하다. 


아이고, 토리야 엄마의 인내심의 문제도 어떠한 것을 견뎌낸다고 믿는지에 따라 그 한계가 바뀔 것 같구나. 내가 너랑 견디는 게 아니라 토리와 엄마가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부분에 초점을 두어야겠다. 몇 년만 지나면 문 닫고 들어갈 너... 일 텐데, 지금 놀아주니 고맙다고 해야 하나? 그럼에도...(두고 봐라. 너 시험 전날 놀자고 할 거다.)


아~ 일기 쓰겠다고 너무 오래 너를 방치했구나. 안 되겠다. 이쯤에서 끝내고 너랑 뭐든 하고 놀아야겠구나. 아무튼 잘 지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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