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마른 가지가 떨리는 소리, 파도 위 센 바람이 일의는 물보라 소리, 산속에 퍼지는 외로운 발자국이 만드는 소리 등, 영상임에도 소리에 더 반응하게 되는 이 미디어 작품은 <세한의 시간>입니다.
장 줄리앙 푸스가 제작한 영상은 시각과 동시에 청각을 자극하며 추운 겨울의 외로운 시간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는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동시대적 시각으로 재해석했다고 작품의 설명을 덧붙입니다. 서양인의 시각과 카메라, 스크린, 그리고 우리의 선조와 붓, 먹이라는 너무 다른 매체는 시간과 도구를 초월하며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작가는 조선시대 제주로 유배 갔던 추사 김정희의 외로운 삶에서 오늘날 우리들의 생활을 보았다고 합니다. 코로나로 전 세계 인구가 이전과 달리 서로 일정 간격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이 시간이 홀로 유배지에서 소중한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홀로 겨울을 나는 추사와 닮아 있다는 것입니다.
한라산 성판악부터 관음사까지 두 차례 오르내리며 관찰한 자연을 위주로 엮은 작품은 <세한도>의 감상문이라는 평도 있습니다. 참고로 이 작품은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한겨울 지나 봄 오듯-세한(歲寒)·평안(平安)’이라는 제목으로 개최되고 있는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12월 8일~12월 18일은 감염병 예방 및 확산 방지를 위해 휴관입니다.)
영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김정희의 <세한도>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합니다. 간략하게 추사가 남긴 작품의 의미를 알아보겠습니다.
김정희는 효명세자의 스승이었습니다. 효명세자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뜨자 안동 김 씨는 추사에게 대역죄를 씌워 제주로 유배를 보냈습니다. 가장 무서운 위리안치형(집 울타리 밖을 나갈 수 없는 형)을 받은 김정희는 유배 기간에 부인과 사별하고 한양의 지인들과도 연락이 끊기면서 외로운 나날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 시절 통역관이자 김정희의 제자였던 이상적은 그에게 중국의 최신 서적을 보내주고 학문 동향을 알려주는 유일한 벗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이상적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자 그린 작품이 바로 <세한도>입니다.
작품의 가장 우측에는 제목 ‘세한도’가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우선은 이를 감상하라, 완당(藕船是賞, 阮堂)’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우측 하단에는 도장이 찍혀 있는데요. 장무상망(長毋相忘)이란 인장은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려진 내용을 보면 배경이 없는 빈 공간에 집 한 채와 소나무가 보입니다. 이 작품은 어떠한 대상을 그대로 옮기는 재현에 의미를 두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내용을 그림으로 옮긴 것입니다. 즉, ‘그린 것’이라고 보지 않고, ‘쓴 것’이라고 설명하는 편이 더 적합할 것입니다. 때문에 매우 서예적이고, 전문화가 보다는 문인들 사이에서 성행하였습니다.
작품에서 주목해 볼 것은 중앙의 두 그루의 소나무인 듯합니다. 소나무는 추운 겨울에도 그 녹음을 잃지 않기에 예로부터 씩씩한 기상과 곧은 절개를 상징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두 그루의 소나무를 그린 회화를 ‘쌍송도’라 일컫는데요. 김정희가 그린 두 그루의 소나무 역시 서로 의지하는 형태로 당시 동아시아에서 일반적으로 유행하던 <쌍송도> 형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서로를 향한 그리움, 상대방의 덕을 칭송하기 위함과 존경하는 마음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바로 <쌍송도>입니다. 김정희는 인생의 겨울에 의지할 수 있던 이상적에 대한 마음과 자신의 변하지 않는 절개를 두 그루의 소나무로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즉, 그의 <세한도>는 함께하고자 하는 벗에 대한 그리움, 존경심과 더불어 강한 기개로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려는 의지가 담긴 작품인 것입니다.
장 줄리앙 푸스는 중국 우한에서 성장하여 현재는 한국에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입니다. 감염 바이러스로 인해 위리안치형 못지않은 형벌을 받는 시간을 보내는 많은 이들의 외로움을 그는 영상으로 담았습니다. 생의 겨울을 이겨내려는 의지의 시간을 카메라로 담은 그의 작품은 빼곡한 소나무 숲, 나무와 돌에 새겨진 세월의 흔적 등을 담아 조선시대와 현재의 우리를 연결합니다. 갓을 쓰고 홀로 걷는 인물의 모습은 마치 거울 속 제 자신을 보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모든 것을 최소한으로 표현한 추사와 달리 줄리앙의 영상은 화면이 가득 차 있습니다. 종이 위에 여백을 통해 외로운 느낌을 전했던 추사와 달리 <세한의 시간>은 가득 채우는 이미지 속에서 덩그러니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 같은 느낌을 전합니다. 그럼에도 감상을 마친 후 자신의 내면이 조금은 비워지는 듯 명상의 기운을 남기는 힘이 있습니다.
줄리앙은 현대 문명과 단절된 숲 속을 거닐며 조선시대와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외로움으로 채워진 감정이 당시 김정희가 느꼈던 바와 닮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아마도 현재 생활 속에서 자신만 고립된 것 같은 외로움을 느끼는 분들이 많이 계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전의 삶을 되찾기 위한 모두의 노력으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형벌과 큰 차이를 보입니다. 그리고 그 외로움은 모두가 가까이 있지는 못해도 늘 서로를 응원하고 기댈 수 있는 마음으로 뭉쳐있기에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요.
세한의 시간을 이겨내면 또 봄이 올 것입니다. 두 그루의 소나무처럼 마음의 벗에게 기대어 추운 겨울을 이겨내려는 강한 의지가 필요한 시기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