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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나딘 May 13. 2021

빈센조 & 유다의 키스

이탈리아 마피아! 너무 어색하고 동떨어진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국 배우가 마피아라는 인물을 연기한다는 점과 영화 대부로 익숙한 마피아라는 역이 송중기라는 잘생긴 배우의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앞섰지요. 우연히 한 편을 본 후 바로 저는 정주행 모드로 돌입했지요. 잘못된 선입견이 잘 만들어진 드라마 한 편을 무정차로 지나칠 뻔했다는 아찔한 생각이 들더군요. 시즌 1을 다 본 후 다시 꼼꼼하게 보는 중에 유난히 소품으로 활용된 회화 작품들이 눈에 들어와서 미술가이드_미술랭에서 다루어보려 합니다.    

먼저 1화, 너무 멋진 파자마를 입고 주윤발을 떠올리게 만드는 조금은 촌스러운 연출이지만 그마저도 멋지게 만드는 송중기... 뒤의 작품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바로 앤디 워홀의 판화입니다. 앤디 워홀은 자신의 작업실을 공장이라 칭하며 1962년에서 1964년 사이 약 2000점에 달하는 실크스크린을 제작했습니다. 실크스크린은 판화 제작 기법 중 하나입니다. 판의 재료가 실크이기 때문에 실크스크린이라 불립니다. 제작 비용이 저렴하기 때문에 가장 대중적인 판화로 볼 수 있지요. 콜라병이나 수프 캔 등 일상적인 사물이나 당시 뉴스나 신문에 오르내리는 기사처럼 잘 알려진 대상을 자신의 작업에 반영했습니다. 때문에 제작 기법에서도 쉽게 접하고 대량으로 제작이 가능한 이 기법을 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정밀한 도안을 제작할 수 없는 기법의 한계로 앤디 워홀의 작품에도 꽃잎이 세밀하게 표현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어색한 흔적들이 오히려 워홀의 작품세계를 더 드러내기도 하지요. 

 앤디 워홀의 꽃 연작은 장식성이 뛰어난 꽃이라는 대상을 강렬한 색상으로 대담하게 표현했습니다. 너무 화려해서 오히려 꽃이 진 이후의 죽음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빈센조에 등장하는 워홀의 작품은 『모던 포토그래피 Modernphotography』 잡지의 양귀비 꽃 사진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극 중에서 빈센조의 화사한 슈트 색감과도 잘 어울리고, 죽음으로 대가를 치르게 만드는 극 중의 인물과도 딱 맞아떨어지는 작품입니다.      

안캅 우르비노의 제품 (카페 뮤제오에 가면 빈센조에 나온 잔들을 볼 수 있다고 하네요.)

다른 드라마도 그렇듯이 빈센조 역시 작품들을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습니다. 에스프레소 잔이나 책장에 놓인 도조작품들도 인물들의 성격을 반영하는 것들로 꾸려져 있더라고요. 5화를 보면 피해자들의 소송을 돕는 변호사가 등장합니다. 법무법인 수단과 방법의 소현우 변호사 사무실 벽에 걸린 작품은 일명 소변으로 불리는 캐릭터와 찰떡입니다. 피해자의 소송을 대리하는 변호사는 사무실 벽면에 제작한 금고를 가리기 위해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의 <유다의 입맞춤 The Kiss of Judas>(1306)를 걸어두었습니다. 원 작품은 이탈리아의 북부 파두아의 스코로베니 예배당 벽면의 프레스코 벽화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드라마에서는 원본의 사진을 활용했겠지요. 전체 작품이 아닌 유다가 예수에게 입맞춤을 하는 부분만 확대해서 액자에 끼웠는데요. 이 부분이 아주 흥미진진합니다.     

유다의 입맞춤은 예수를 잡으러 온 이들에게 누가 예수인지 알려주는 신호였습니다. 동시에 예수를 배신하는 키스입니다. 유다라는 이름은 이후 서구에서 배신자를 지칭하는 의미로 전해집니다. 때문에 상대방에게 함부로 저 단어를 말하면 안 된다고 하네요. 작품 속에서 이 배신자의 얼굴은 살짝 원숭이를 닮았습니다. 우매한 행동을 하는 인물인 유다의 콧등과 이마는 울룩불룩하고, 입은 툭 튀어나왔으며 전제적인 분위기가 악인을 연상시킵니다. 반면 그가 키스를 하려는 인물은 부리부리한 눈빛과 반듯한 얼굴선, 상대방보다 큰 키 등 전체적으로 선한 이미지, 명석함과 더불어 상대적으로 우월한 느낌을 전합니다. 

치마부에(1240-1302년경)가 그린 <유다의 키스> 일부 / 조토의 작품 일부 확대

드라마 빈센조는 마피아라는 어두운 인물이 괴물의 방식으로 더 나쁜 괴물에게 대가를 치르게 만드는 이야기입니다. 그중 소변호사는 피해자들을 돕는 척하면서 사실은 악덕기업의 사주를 받아 피해자들의 등에 칼을 꽂는 인물이지요. 배신의 아이콘이 빈센조를 만나는 장소에 등장하는 이 작품은 많은 함축적 의미를 내포하는 듯합니다.     

스크로베니 예배당의 조토의 종탑

이쯤에서 조토 디 본도네에 대해 살짝 알아보겠습니다. 이 작가는 시칠리아의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이후 르네상스 미술의 꽃을 피운 매우 주요한 인물입니다. 비잔틴 양식의 회화는 재현하는 이야기를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작품 감상에 용이합니다. 그러나 조토는 인물에 감정을 대입시켜 전혀 모르고 있더라도 내용을 느낄 수 있도록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바로 작품에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죠. 르네상스의 대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도 조토의 작품이 없었다면 그들의 걸작이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학자도 있습니다.  

조토는 단테의 신곡 연옥 편에서도 등장합니다. 그리고 조토가 그린 피렌체의 바르젤로 궁 막달레나 예배당에 그린 <최후의 심판> 천국 부분에 단테의 얼굴이 등장합니다. 이전 글에서 근대시기 문학가들과 화가들의 관계에 대해 살짝 다루었는데요. 단테와 조토 역시 유사한 관계였다고 합니다. 이들은 절대적 권력을 지닌 종교를 현실적인 문제로 끌어내렸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깊습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말도 안 되는 사건과 삶과 동떨어진 것 같은 비현실적인 외모의 주인공은 그 자체로 저와는 거리가 먼 허구입니다. 그런데 잘 보면 돈 있고, 권력을 쥐고 있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 혹은 최소한의 정의 비슷한 것을 일깨우기 위해서는 마피아 같은 괴물의 방식밖에는 답이 없다는 측면에서는 진짜 현실과 꼭 같네요. 빈센조 다시 꼼꼼하게 보면서 작품을 활용해 한번 더 비틀어 웃음을 전하는 위트를 관찰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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