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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나딘 Jul 17. 2020

[뉴스] 간송 전형필 소장품 경매


지난 5월 21일 미술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뉴스가 있습니다. 바로 간송미술관의 소장품 두 점이 경매에 나온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바로 그 소장품은 다름아닌 우리나라의 보물 284호 금동여래입상과 보물 285호 금동보살입상이었습니다.

(좌)관련 뉴스, (우)보물 제284호 <금동여래입상>, 높이37.6cm, 연대미상/보물 제285호 <금동보살입상>,  높이22.9cm, 연대미상


경매는 5월 27일 케이옥션 본사에서 진행되었으나 모두 유찰되었습니다. 누구도 선뜻 입찰에 나서지 않았던 데에는 국가의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이기 때문에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 추정됩니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은 한국민족미술연구소와 간송미술관의 재정비 및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한국민족미술연구소는 간송이 수집한 문화재를 바탕으로 식민사관을 극복하는 미술사연구를 위한 기관입니다. 또한 성북동에 위치한 간송미술관은 간송 전형필이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미술관입니다. 즉, 간송미술문화재단은 전형필이 우리나라 전통 문화재를 보존하고 계승될 수 있도록 수집한 문화재를 바탕으로 연구 및 전시를 목적으로 하는 재단입니다.

간송 전형필

일제 강점기 약탈되는 우리의 전통 문화재를 보존하고 후대에 물려주기 위한 그의 노력이 있었기에 간송의 업적은 높이 평가되고 있습니다. 식민치하의 일본의 재력가들의 손에 넘어간 <청자상감운학문매병>(국보 제68호) 를 당시 기와집 수십채 값을 지불하고 사들였으며, <동국정운>(국보 제7171호)를 사들여 유일무이한 우리의 문화재를 지켜낸  장본인이 바로 간송 전형필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보물이 경매에 나왔다는 소식에 저 역시 관련 기사와 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 금동여래입상과 금동보살입상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간송미술문화재단 홈페이지에도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읽으면서 많은 의문이 생겼습니다. 과연 ‘육계’, ‘나발’, ‘단판양련’ 등 어려운 단어들이 나열된 이 설명을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래서 이번 글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설명을 좀 더 쉽게 풀어서 전달하는데 목적을 두고자 합니다. 분량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보물 제284호 <금동여래입상>만 설명해드리고자 합니다. 

보물 284호 <금동여래입상>은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금동으로 제작된 불상입니다. ‘여래(如來)’는 부처님을 부르는 10가지 이름 가운데 하나입니다. ‘여실히 오는 자’, ‘진여세계에서 와서 진여를 깨치고 여실한 교화활동 등의 생활을 한 뒤에 사라져 가는 이’를 뜻하는 여래는 부처와 같이 진리에 도달한 사람을 말하고, 자기 스스로를 칭하는 1인칭이 아닌 타인이 부처를 칭하는 이름입니다. ‘입상’은 서 있는 조각상을 말합니다. 따라서 <금동여래입상>은 두발로 서있는 부처를 금동으로 제작한 조각상을 의미합니다.

이 불상의 제작연도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경주 구황동의 황복사지 삼층석탑에서 출토된 <금제여래좌상>(706년경)과의 비교를 통해 제작연대를 추정할 수 있다고 합니다. 황복사지에서 출토된 불상은 1934년 삼층석탑을 해체 복원할 때 출토되었다고 합니다. 사리를 보관하는 사리함에 명문에 따르면 692년(통일신라시대 효소왕 원년)에 이 탑을 세웠으며, 그 뒤 706년(성덕왕)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불사리 4개, 순금으로 된 아미타상을 넣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제 발굴된 것은 금동여래입상과 금동여래좌상이었다고 합니다. 간송의 소장 문화재인 보물 284호는 부처의 얼굴에 풍만함이 덜하는 등 양식상 황복사지에서 출토된 불상 보다는 좀 더 이른 시기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즉, 해당 불상은 통일신라시대 전기(7세기 중반~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통일신라시대 불교미술은 크게 두 시기로 구분됩니다. 250년이라는 긴 기간 중 전 100년과 후150년으로 구분된다고 합니다. 전기는 불교 사상이 발전을 지속하던 시기이며 후기는 퇴락해가는 특징을 보인다고 합니다. 

(좌)황복사지 출토, <금제 불입상>, 통일신라, 692년 경, 금, 높이14.0cm, 국보 80호/<금제 불좌상>, 통일신라, 706년 경, 금, 높이12.0cm, 국보 79호 

통일신라시대인 것은 어찌 확신하는지 불상의 양식을 좀 더 자세히 보겠습니다. 불상을 자세히 보면 부처님이 팔각형 모양의 받침처럼 보이는 것 위에 올라 서 있습니다. 불상을 올리는 대를 ‘대좌’라고 합니다. <금동여래입상>의 대좌는 팔각형 모양 위에 화려한 연꽃잎이 보입니다.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 단판앙련(單瓣仰蓮)과 복판복련(複瓣覆蓮)이 한데 붙어 있다.’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단판앙련은 꽃잎이 위로 향하고 있으며, 한 잎으로만 새겨진 연꽃무늬를 말합니다. 복판복련은 꽃잎이 아래로 향하고 있으며 여러 장(겹잎)의 연꽃이 있음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여래입상이 올라선 대에 새겨진 연꽃무늬는 위로 향하고 있는 한 장과 아래로 향하는 겹잎으로 화려한 장식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연꽃대좌 아래는 마치 할머니 집에 있던 상과 같은 팔각형 모양의 받침이 보입니다. 사전에는 ‘그 아래에 안상(眼象)이 각 면에 투각된 팔각의 받침이 있는데...’라고 쓰고 있습니다. 안상은 한자 그대로 풀어서 말하면 코끼리 눈입니다. 그럼 코끼리 눈 모양은 대체 왜 받침에 새겨 넣을 것일까요?

 

우선 왜 코끼리 눈 모양이라고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고대 인도에서 태어난 고타마 싯다르타는 코끼리를 타고 세상에 나왔다고 전해집니다. 싯다르타는 후에 깨우침을 얻어 부처가 됩니다. 따라서 지금도 코끼리는 부처님을 모시는 상징적인 동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을 상징하는 탑이나 불상을 제작할 때 그것을 받치는 하단에는 코끼리 문양인 안상무늬가 새겨지게 되었습니다.

석탑이나 불상을 올리는 대좌에 새겨진 안상(眼象) 무늬

또한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양식은 당나라로부터 유입된 것을 신라화한 것이라 합니다. 당시 많은 유학승들이 왕래하며 당나라의 양식을 유입해왔을 것으로 보입니다. 초기 당나라에서는 인도로 서신을 보내 인도와 문화교류를 활발히 이어갔기 때문에 인도의 양식이 당나라로, 당나라에 유입된 불상양식이 다시 통일신라로 전해진 것입니다. 불상의 두 어깨가 가사(부처님의 옷)로 덥여 있지만 우측 어깨가 드러난 선정성이 이 같은 양식의 유입경로를 알려준다고 합니다.

오랜 시간과 역사의 흐름이 37.6㎝ 높이의 작은 불상에 모두 담겨있다는 사실은 매우 경이롭습니다. 미세한 옷의 주름이나 얼굴의 표정, 대좌의 연잎 모양 등은 시대를 말하고 당시 문화를 이야기해줍니다. 미술사라는 학문은 어렵지만 알고 보면 이보다 매력적일 수는 없습니다.

이번 글을 통해 뉴스 속 미술 이야기가 좀 더 쉽게 이해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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