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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나딘 Jul 17. 2020

[영화] 천재 화가 오원 장승업과 영화 <취화선>


2002년 개봉한 <취화선 醉畵仙>은 제55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임권택 감독에게 감독상의 영예를 안겨준 영화입니다. 한국 영화의 오랜 숙원을 풀어준 취화선은 조선시대 3대 화가 중 오원 장승업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입니다.

영화 <취화선> 일부 장면

‘술에 취해 그림을 그리는 신선’이라는 뜻의 제목에 드러나는 것처럼 영화에서 장승업은 천재적 재능과 임금의 명령에도 불복하고 자신이 그림을 그리고 싶을 때에만 작업에 임하거나 술과 여색을 밝히는 예술가로 묘사되었습니다. 그의 붓놀림은 살아 움직이는 듯 기운생동하고 한 붓에 그려내는 일필휘지(一筆揮之)는 마치 신선의 손놀림 같았다고 합니다. 장승업의 일화를 마치 자신의 경험처럼 연기한 최민식 덕분에 가끔은 오원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도 '최민식'은 생각나니 그의 연기 역시 신이 들린 연기라 칭할 수 있겠지요.

영화 도입부의 장승업은 화가라고 부르기에는 많이 미숙하지만 타고난 재능이 있는 인물로 등장합니다. 당대에는 환쟁이로 불리며 민화류를 제작하던 그가 중국어 역관들의 후원을 통해 성장하게 됩니다. 극 중에서 김병문(안성기)의 후견을 통해 전문 기관에서 미술교육을 받기 시작한 장승업은 스승에게 “모양만 갖춘다고 그림이냐?"라며 꾸지람을 듣습니다.

영화 <취화선> 속 장승업이 스승에게 그려낸 <귀거래도>와 청나라 작가의 작품을 비교하는 장면
명나라 화가 이재, 마식, 하지, <귀거래혜도>: 영화에서 장승업의 <귀거래도>가 왜 부족한지 깨닫게 해주기 위해 명나라 화가의 작품이 등장합니다.

이때 그가 방모한 작품은 <귀거래도 歸去來圖>입니다.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바탕으로 수많은 대가들이 그렸던 주제입니다. 도연명은 진나라 평택(彭澤)의 수령이 되었으나 혼탁하고 어지러운 세태에 염증을 느끼고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시에 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귀거래사입니다. 귀거래사는 귀거래혜사, 귀거래 등으로 불리며 도연명집에서는 귀거래사병서(歸去來辭幷序)로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의 시에는 오랜 세월 마음이 육체의 노예로 지냈던 것을 반성하고 자연과 일체가 되는 생활 속에서 진정한 기쁨을 느끼려는 도연명의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귀거래도는 단순히 그림의 형식이 아닌 속세를 떠나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도연명의 깊은 고뇌가 드러나야 한다고 영화 속 그의 스승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화에서 초기 장승업은 술병을 바라보는 도연명으로 그렸으나 이후 깨달음을 얻고 장승업은 도연명을 세속과 떨어져 자연을 바라보며 시를 쓰기 위해 사색에 잠긴 모습으로 그렸습니다.

장승업의 여성편력은 영화에서도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그와 살림을 차리고도 오래도록 독수공방을 보내던 기생은 장승업과 결국 헤어지게 됩니다. 장승업은 헤어지면서 그림 한 점을 그려줍니다. 이 그림이 바로 <홍백매도 紅白梅圖> 10폭 병풍입니다.

조선 말기의 조희룡(趙熙龍, 1789~1866)과 유숙(劉淑, 1827~1873) 등의 크고 화려한 홍백매화 그림의 전통적인 맥락에 장승업만의 필력으로 강렬하게 그려 낸 개화기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힙니다.

(좌) 영화 일부. (우) 장승업, <홍백매도>, 10폭 병풍, 종이에 담채, 90X433.5㎝, 조선 말기,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병풍으로 제작된 작품은 영화 후반부에도 등장합니다. 장승업이 기생 향란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는 방 안에 꽃과 동물들이 그려진 병풍이 놓여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8폭으로 보이지만 본래 이 작품은 10폭으로 제작된 병풍입니다. 동물, 꽃, 나무와 풀잎 등을 그린 영모화초(翎毛花草) 그림은 문방사우와 같은 기물들을 그린 기명절지도(器皿折枝圖)와 같이 장승업의 명성을 드높인 그림입니다.

(좌) 영화 일부. (우) 장승업, <영모화초> 10폭 병풍, 비단에 담채, 각각 148.5cm x 35cm

1876년 개항 이후 청나라 상인들이 조선에 유입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상업으로 부를 축적한 새로운 계층의 호사취미와 사치풍조가 성행하게 되었습니다. 또, 상하이에서 석판인쇄술에 의해 대량 발간된 화보가 이때 조선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상하이의 신물물이 지닌 장식적이고 부와 건강을 유지할 수 있기를 기원하는 길상적인 특징을 가장 먼저 수용하여 특유의 양식을 이룩한 사람이 바로 오원 장승업입니다. 그래서 그의 화풍을 오원양식이라고 부르는데요. 이 오원양식은 청계천 주변 중촌의 도시화를 배경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고 합니다. 병풍 역시 방 안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기능을 지닌 중인들의 호사취미를 단번에 보여주는 사례가 되겠습니다. 영화 전반에 걸쳐 장승업의 그림은 당대 반드시 소장해야 하는 필수품으로 묘사됩니다. 그만큼 중인의 성장뿐 아니라 보편적인 인식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개항기 조선은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황이었습니다. 신문물의 유입으로 발전의 기회를 엿볼 수 있었지만 동시에 전통성과 주체를 상실할 위기에 놓여있었습니다. 오원은 당대를 두 마리의 독수리로 표현했습니다. 영화에서는 조선 곳곳을 꼬마와 돌아다니다가 훗날 자신이 스승님과 함께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림을 그려달라고 말하는 당돌한 녀석을 위해 그려주는 작품으로 나옵니다.

바로 <호취도>입니다. 나무의 위와 아래에 앉은 각각의 독수리는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 그 기운이 느껴집니다. 당시 조선의 상황과 결부해서 보면 나뭇가지에서 조선의 기울어져가는 국운을 암시하는 듯 보입니다. 윤곽선이 없이 그리는 몰골법으로 나무를 표현하고 매우 섬세하면서도 생략을 가미하여 독수리의 날렵함과 독기 서린 눈빛을 묘사했습니다. 이는 조선을 차지하기 위해 몰려오는 제국주의 열강 세력에 저항하고자 하는 기백이 강하게 엿보이는 작품입니다.

장승업, <호취도>, 종이에 수묵담채, 135.4cm×55.4cm, 호암 미술관 소장

좌측의 글은 조선 말기 서화가 정학교(丁學敎, 1832~1914)가 쓴 글입니다. 당시 장승업은 글을 몰랐다고 전해지기도 하고, 그림에 글이 불필요하다 여기기도 했다고 합니다. 해당 글의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넓은 땅, 높은 산은 의기를 더해주고 해묵은 나무와 풀포기는 정신을 늘려준다.’

그의 강렬한 필선과 살아 움직이는 듯한 생생한 묘사는 마치 신선이 그린 것과 같다고 칭송받았습니다. 장승업 자신도 붓을 댈 때마다 신운이 생동한다고 큰소리쳤다고 합니다. 또한 그가 그린 <삼인문년도 三人問年圖>에 쓰인 안중식의 글에도 ‘(중략) 필법과 채색은 신운이 생동한다고 할 만하다.’고 쓰여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신운’은 영화 제목에서 말하는 내용과 같이 신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 청나라의 새로운 시풍을 수용하게 됩니다. 청나라 시인 왕사진(王士禛, 1634~1711)의 신운(神韻)론을 수용한 문인들의 영향으로 회화에도 이 같은 경향이 반영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시는 언어를 통해 어떠한 이미지를 심상에 떠오르게 만들고, 그것을 통해 작가의 정서나 시의 주제를 표현합니다. 신운론은 묘사하려는 대상과 작가 주체가 만나 즉흥적으로 발생하는 시각적 우발성에 의한 감각을 표현하는데 주된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입으로 느낄 수 없는 깊이 함축되어 있는 맛을 의미하는 미외미(味外味)가 담겨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운론을 추구하는 작가들은 교육이나 특정 목적을 두고 그림을 그리거나 시를 쓰는 목적성을 배제하고 시각적으로 순수한 우발적인 흥취를 강조하는 데 작품 제작의 목적을 두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장승업이 ‘그림은 그림 자체로 말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내용도 이와 일치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신운론은 기교적이며 옛사람들의 작품을 임모하며 얻어진 형식적인 격조를 기반으로 합니다. 그렇기에 모사술에 뛰어났던 장승업의 재량과 당대 새로운 소비층의 부상이 더해져 그의 양식이 융성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개화기라는 격동 속에서 위기를 구해줄 초인의 출현이 간절했던 시대상에 부응하는 조형적인 의미도 있었습니다. 개화기의 오원양식은 장승업 타계 이후 조석진(趙錫晋, 1953~1920), 안중식(安中植, 1861~1919)에게 전수되었습니다.


영화에서 묘사된 것처럼 장승업의 업적은 술에 취한 신선의 움직임에 따른 것이 아닙니다. 고전과 전통의 숙지를 바탕으로 하여 자연과 주체가 만난 순간의 우발적 흥취를 빠르게 표현할 수 있는 신운, 이점이 바로 장승업의 기량이라 할 수 있습니다. 타고난 소질도 있었겠지만 부단히 노력하고 신문물에 대한 열린 자세와 수용 그리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응용시키는 점은 단순히 술에 취한 정취로 치부하기에는 많은 아쉬움을 남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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