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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문제였는데

갈길 먼 아빠되기

by 돈태

"아들, 엄마가 아파. 그래서 엄마는 침대에 누워있어야 하니까 조용히 해주자."

아내와 함께 집에 들어서며 아들에게 선수를 쳤다. 하루종일 엄마와 아빠를 기다렸을 아들은 여느 때와 같이 현관문 소리에 엄마아빠에게 뛰어드려는데, 아빠의 완곡한 제지와 위경련으로 명치 쪽을 감싸고 있는 엄마를 보고 멈칫했다. 엄마아빠를 올려다보는 다섯 살 아들의 얼굴에서 개구쟁이 같은 해맑은 표정을 찾기 어려웠다.


아내를 침대에 뉘우고 샤워를 하자 허기가 밀려왔다. 갑작스러운 아내의 위경련에 정신없이 병원에 다녀오고 급하게 집에 오느라 저녁을 건너뛰었다. 아들은 거실에서 조용히 장난감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아들은 엄마가 누워있는 안방을 바라보면서도 안방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아들이 엄마가 아프다는 사실과 조용히 하자는 아빠의 말을 어느정도 이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라면을 끓였다.


"아빠, 같이 놀아요."

라면을 먹으려는 순간, 아들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들에게 "아빠 배가 고파서. 이거 먹고 같이 놀자"라고 말했다. 거실에 앉아 있던 아들이 장난감을 들고 식탁으로 다가왔다. 아들은 다시 "같이 놀아요"라고 말했다. 나는 다시 "아빠 저녁을 안 먹었어"라고 말했다. 아들은 식탁 의자에 앉아 장난감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잠깐이라도 방해받지 않고 저녁을 빨리 해결하자는 생각으로 아들의 태블릿을 가져왔다. 거실 소파 쪽에 태블릿을 켜고 아들을 불렀다. 아들을 소파 쪽에 앉히며 "이거 보고 있으면 아빠가 밥 먹고 놀게"라고 말했다. 아들의 입이 삐쭉 나오는 것이 보였지만 식탁으로 돌아와 라면을 먹었다.


"달걀도둑 틀어주세요."

라면을 먹고 아들이랑 놀려고 거실로 갔다. 아들은 틀어준 태블릿을 조용히 보고 있다. 장난감을 집어 아들에게 장난을 쳤는데 반응이 시큰둥하다. 태블릿 화면을 보고 있는 아들은 아빠의 장난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아들의 무반응을 뒤로 하고 식탁으로 돌아왔다.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전에 쓰던 글을 마무리 하자. 노트북을 켜고 쓰던 글이 저장된 파일을 열었다. 기존 내용을 다시 훑어보고 이어 쓰려는데 아들이 말했다. "이거 말고 다른 거 틀어주세요."


아들 쪽으로 가서 무엇을 보고 싶은지 물으니 아들은 "달걀도둑"이라고만 말했다. 처음 듣는 제목이다. 검색을 했지만 아들이 원하는 유튜브가 나오지 않았다. 아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달걀도둑을 틀어달라고. 유튜브에서 달걀도둑을 찾느라 헤매는데 옆에서 아들의 소리가 점점 커졌다. "달걀도둑. 달걀도둑. 달걀도둑." 순간 짜증이 솟구쳤다. 아들이 두 손으로 잡고 있던 태블릿을 뺏어 들며 "보지 마"라고 소리를 질렀다. "달걀도둑"을 외치던 아들의 입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이내 아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어느새 아내가 배를 잡고 꾸부정하게 거실로 나왔다. 아내는 내 손에 있던 태블릿을 아들에게 돌려주며 "헬로카봇 달걀도둑 잡아줘"라는 제목의 유튜브를 틀었다.


다시 아들은 거실에서 혼자 태블릿을 보고, 나는 식탁에서 글을 이어 썼다. 아내는 안방에 누워서 잠이 든 거 같았다. 아들을 재워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해 노트북을 껐다. 아들에게 다가가 양치하고 자자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들은 들은 척도 안 했다. 몇 번을 얘기하니 아들이 스스로 태블릿을 껐다. 대견해서 "착한 우리 아들"이라며 화장실로 데리고 갔다. 화장실까지 순순히 따라온 아들은 양치를 안 하고 버텼다. 아들은 "엄마"라고 말했다. 아들에게 "아빠랑 같이 양치하고 자자"라고 말하니 아들은 "엄마랑 하고 싶어"라고 분명히 말했다. 그렇게 몇 분을 실랑이를 하다가 아들한테 "하지 마"라고 소리를 질렀다.


아들은 울음 섞인 목소리로 "엄마"를 외치며 화장실에서 나갔다. 아들을 외면하고 혼자 양치를 했다. 화장실에서 나와 안방으로 가니 아들이 엄마 옆에 누워 있다. 새록새록 숨소리가 곧 잠이 들려는 거 같다. 엄마는 옆에 누워있는 아들을 토닥토닥해주고 있다. 아들의 작은 손이 엄마의 아픈 배를 덮어주고 있다.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왔다. 거실에 혼자 있으니 눈물이 날 거 같았다. 아들은 아픈 엄마를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했다. 아빠랑은 놀고 싶은데 서운하기만 했을 테다. 아빠는 자기 생각만 하며 혼자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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