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는 삶
나는 모든 사람들의 '순종을 망치'는 '존엄의 애통한 형식'을 본 적이 있는가? 본 적이 있다면 그 장면을 구체적으로 기록함으로써 목격 당시의 감각에만 허우적대지 않으려고 기를 썼던가? 아니 에르노가 전철역에서 불알을 내보이고 있는 남자를 본 후 썼듯이.
<바깥 일기>를 읽는데 진도가 안 나간다. 짧은 일기 형식의 글들을 엮은 책인데, 두 꼭지의 글이 계속 나를 부여잡고 있다. 전철역에서 목격한 외설적이고 충격적인 장면을 그대로 묘사하면서도 사회적 의미를 부여하는 첫 번째 꼭지와 첫 번째 꼭지를 쓰게 만든 내적 사유를 적은 두 번째 꼭지를 읽고 또 읽는 중이다. 이해가 될 듯 말 듯하면서.
순종하며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비굴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드는 비참한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남성에게서, 아니 에르노가 길어 올린 ‘존엄의 애통한 형식’, ‘순종을 망치는 행위’, ‘감각에 매몰되지 않으려는’ 등의 단어와 문장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내 이해가 얕은 걸까.
아니 에르노의 <바깥 일기> 중
오후가 한창이라 인적이 드문 전철역 통로에, 어떤 남자가 고개를 떨구고 벽에 등을 대고 있었다. 그는 구걸하지 않았다. 그에게 가까워져서야, 바지 앞섶을 열어 놓고 불알을 내보인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봐주기 힘든 행위, 존엄의 애통한 형식. 즉, 자신이 남자임을 드러내기. 지나가며 여자들이 고개를 돌린다. 그에게 적선을 베풀 수는 없고, 오로지 아무것도 못 본 척하면서 열차가 들어올 때까지 그 광경을 속에 간직했다. 그것은 전부를, 모피를 두른 여자들의 허세와 시장 정복자들의 단호한 발걸음과 노래하고 구걸하며 동전 한 닢 받는 거지의 순종을 망치는 행위이다.
왜 나는 이 장면을 이글에 나온 다른 장면들과 마찬가지로 이야기하고 묘사할까. 내가 기를 쓰고 현실에서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의미? 오로지 감각에 매몰되지 않으려는, 그러니까 감각을 <자신보다 위에 놓지 않으려는> (학습된) 지적 습관에 따라서 종종 그러긴 하지만, 늘 그러는 것은 아니다. 혹은, 내가 맞닥뜨리는 사람들의 동작, 태도, 말의 기록은 내가 그들과 가까워진다는 환상을 품게 한다. 나는 그들에게 말을 건네지 않고, 나는 그저 그들을 바라보고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인다. 하지만 그들이 내게 남기는 감정은 실재하는 그 무엇이다. 어쩌면 나는 그들을 통해, 그들의 행동 방식과 그들의 대화를 통해, 나에 대한 무언가를 추구하는 지도 모른다. (종종 <왜 내가> 전철에서 맞은편에 앉아 있는 <저 여자가 아닌 걸까?>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