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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

끈적했던 미소들

by 돈태

사무실 안에는 정적이 흘렀다. 모두들 남성의 강의에 집중하고 있었다. 노벨문학상의 권위에 넋 놓고 귀 기울이다가 남성의 논리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남성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우며 다시 거침없이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시스템을 만드는 자 vs 시스템에 이용당하는 자’라는 굵은 글씨가 적힌 슬라이드가 나왔다.


“돈을 위해 일을 하는 사람은 평생 노동하는데 시간을 써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돈이 여러분을 위해 일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본주의라는 구조를 만든 사람들의 비법입니다. 여러분이 여기 앉아 있는 이유는 돈이 여러분을 위해 일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입니다. 즉 직접 뛰지 않아도, 여러분이 구축한 시스템이 스스로 움직이면서 돈을 만들어내는 구조. 이게 바로 부의 공식입니다.”


슬라이드가 넘어가고 새로운 화면에는 ‘Passive Income - 자동으로 들어오는 수입’이라는 문구가 나왔다. 문구 옆에는 사람 대신 달러 기호가 컨베이어벨트 위를 뛰어가는 애니메이션 영상이 재생됐다. 의자에 앉은 사람들 사이에서 휴대폰을 꺼내 사직을 찍거나 노트와 펜을 꺼내 메모를 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눈에 띄었다. 나도 모르게 눈에 힘을 줬다.


“그럼 지금부터 시스템이 돌아가는 메커니즘을 간단하지만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핵심은 네트워크를 만드는 겁니다.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면 여러분이 휴가를 즐기는 시간에도 네트워크가 알아서 돈을 벌어주게 됩니다. 우선 여러분이 제품을 사용하고, 마음에 들면 주변에 소개합니다. 이어 소개받은 사람은 다시 다른 사람에게 소개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네트워크에서 발생하는 매출이 바로 여러분의 수익이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 제품이 매달 반복해서 구매가 일어나는 제품이라는 점입니다. 비타민, 단백질 보충제, 생활용품, 화장품 등. 없어지면 또 사야 하는 제품들이죠. 바로 자동소득 원리입니다.”


나는 고개를 살짝 갸우뚱거렸다. ‘내가 먼저 제품을 사서 써봐야 하는 건가?’ 순간 석영이 형과 눈이 마주쳤다. 석영이 형은 나를 향해 살짝 미소를 지었다. 자신감 또는 확신에 찬 표정이었다. 나는 입을 앙다문 채 슬라이드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자... 그럼 이제. 여러분이 제일 궁금해할 구체적인 수익구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총 네 가지 부분으로 정리됩니다. 첫째, '직접 추천 수당'으로 여러분이 직접 소개한 회원의 첫 구매액에서 일정 비율을 받습니다. 둘째, '조직 매출 수당'으로 여러분이 소개한 사람들 즉 여러분의 아래 단계의 네트워크에서 발생한 총매출액의 일정 비율을 받습니다. 이어 '리더 보너스'로 내가 키운 하위 리더들의 매출에서 추가 보너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교육 지원금'입니다. 아카데미라는 이름으로 매달 교육 활동비를 지원받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소개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는 영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네트워크 구축의 핵심은 지렛대 효과입니다. 혼자 100만 원어치를 파는 것보다 100명이 각각 1만 원씩 팔면 됩니다.”


"와~" 참석자들 사이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슬라이드를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는데 남성 옆에 줄지어 서있던 직원들이 칸막이 뒤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사무실 내 조명이 다시 밝아졌다.


“집중해 줘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회사 이름이 어떤 뜻을 갖고 있는지 궁금할 겁니다. GF Business Academy의 GF는 ‘Global Freedom’의 줄임말입니다. 이름 그대로, 전 세계 어디서든 경제적 자유를 만드는 시스템입니다. ‘Academy’라는 단어, 그냥 붙인 게 아닙니다. 우리는 사람을 교육하고, 성장시키고, 리더로 만드는 일을 합니다. 상품은 도구일 뿐, 진짜 상품은 네트워크입니다.”


업무공간에서 시작된 박수 소리가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로도 번졌다. 나도 모르게 분위기에 휩쓸려 손뼉을 치려다 멈췄다. 넥타이를 맨 한 직원이 강연을 끝낸 남성의 손에서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서 출입문 쪽으로 이동해 주세요. 잠시 후 조별 모임을 갖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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