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 식육식당

<올바른 고기> 16장.

by 돈태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는 노트북 화면을 닫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영은 이미 외투를 들고 문 앞에 서 있었다.


"가자."


두 사람은 대화 없이 엘리베이터를 탔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탓인지 식당 안에는 손님이 많지 않았다. 창가 쪽 자리에 앉자마자 수영이 메뉴판을 넘기며 말했다.


"오늘은 아무거나 먹자."

"네."


주문을 마치고 물이 놓이자 수영은 잠시 식당 안을 둘러봤다. 그리고는 컵을 손으로 천천히 굴리며 입을 열었다.


"현장 영상 말이야."


그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일단 보류하기로 했어."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수영이 말을 이었다.


"팀장 회의에서 이야기가 좀 나왔어." 수영은 말을 천천히 골랐다. "전략기획 쪽에서 캠페인이 길어지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거든."


그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편집해둔 건 일단 그대로 놔둬보자." 수영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영상 자체 문제는 아니니까."


음식이 나왔다. 잠시 대화가 끊겼다. 수영은 젓가락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그가 별다른 대꾸가 없는 것이 살짝은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전략기획 쪽에서는 이번 캠페인으로 인해 단체가 독립성에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어. 특히 이번 공청회도 그렇고 너무 특정 정당과 함께한다는 모양새라고."


그는 딱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수영이 하는 말을 집중해서 듣는 것 말고는 자기가 할 수 있는 말들이 없다는 생각이었다. 수영은 잠시 그의 표정을 살폈다.


"괜히 밤새 편집하게 만든 거 같네."


뭔가 조급해 보이던 수영의 말투가 차분해졌다. 그는 수영을 한번 바라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둘이 점심을 먹자고 할 때, 그는 당연히 수영이 뭔가 따로 할 말이 있다는 감은 잡았다. 하지만 영상 작업이 보류될 것이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는 당황스러울 만도 한 수영의 말에 별다른 감정이 올라오지 않았다. 그 점이 스스로도 이상했다. 화가 날만도 한데! 굳이 화를 낼 필요가 있나! 그런 그의 모습에 오히려 수영이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다시 대화가 끊기고 테이블에 차려진 음식에 손을 뻗는데 순간적으로 옛날 기억이 머릿속을 스쳤다. 외삼촌의 옛날 집 풍경이 그림처럼 어렴풋이 떠올랐다. 곧 좁은 돼지우리 안에서 돼지들이 서로 부딪히며 비명을 지르던 장면이 이어졌다. 그때 외삼촌은 웃으며 말했다. 며칠 뒤면 한 마리는 출하하고, 나머지는 조금 더 살려둬야 돈이 된다고. 어린 그는 그 말을 듣고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돼지들의 소리를 들으며 서 있었을 뿐이었다.


그 이후로도 비슷한 순간들이 몇 번 있었다. 사춘기를 지나며 학교 안에서 중심에 서본 적이 없던 시절, 무언가 불편한 일이 있어도 나서지 못하고 한 발짝 뒤에서 지켜보던 시간들. 그때마다 그는 나중에야 그 감정을 하나의 단어로 정리할 수 있었다. 무력감.


"뭐해?"

"아...네..."


수영의 말에 그는 정신이 갑자기 든 것처럼 눈을 깜박였다. 젓가락에 들려 있던 반찬을 얼른 입에 넣어 씹었다.


"괜찮아?" 수영이 그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천천히 먹어."

"잠깐 딴생각을... 선배도 드세요."


대화가 끊긴 식사는 금방 끝났다. 식당을 나오자 초겨울 공기가 생각보다 차가웠다. 수영은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사무실 쪽으로 천천히 걸었다. 수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도 캠페인 자체를 접는 건 아니야."


그는 고개를 살짝 들었다.


"영상은 일단 보류지만… 언제든 바로 쓸 수 있게 준비는 해 두자." 수영은 길가에 멈춰 서 있는 차들을 잠깐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의원실과 조금 더 논의를 해보고 다른 방법을 찾을 거야."


그는 수영의 옆에서 고개를 숙인 채 걸었다. 여전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수영의 시선이 잠깐 그에게 향했다.


"동물과함께 이름으로 할 수도 있고, 완전히 다른 형식으로 풀 수도 있고." 수영이 말했다. "어쨌든 우리는 이번 작업을 물밑에서 계속 이어가 보자."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수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네 생각은 어때?"


그는 수영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사무실 건물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입을 뗐다.


"일단 알겠습니다. 저도 생각을 좀 해볼게요."


사무실로 돌아오자 먼저 점심을 먹고 돌아야 온 직원들이 얼마 남지 않은 휴식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보내고 있었다. 그는 그들을 지나쳐 바로 자리로 갔다. 습관적으로 노트북을 켜니 작업 중이던 영상 편집 파일이 눈에 들어왔다. 바탕화면에 떠있는 메모에는 편집 타임라인이 적혀있었다. 수산시장 바닥을 지나가는 의원의 구두, 얼음 위의 생선들, 순식간에 찜통으로 들어가는 홍게, 그리고 의원 인터뷰 컷이 일정한 간격으로 적혀있었다. 그는 멍하니 바라만 봤다. 같은 시간과 공간, 수영은 누구보다 바쁘게 사무실을 들락거리며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있었다.


영상 편집이 멈춘 상태에서 며칠이 흘렀다. 그 사이 수영은 그에게 영상과 관련해 다른 말은 없었다. 그는 출퇴근 시간의 간격이 이렇게 아득한지 생소했다.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서 시간을 확인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사무실에서 이렇게 시간이 안 가는구나?' 그는 자기만 빼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바쁜 것처럼 보였다. 무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그렇다고 뭔가를 할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가끔 눈에 들어오는 수영은 전보다 더 바빠 보였다. 마치 영상 편집 문제를 까먹은 사람처럼, 수영의 시선에서 그가 마치 사라진 것처럼. 그 순간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준비를 하자는 건, 수영 선배의 판단이고.'


그날 오후, 이산에게서 전화가 왔다. 공청회 때 받은 명함을 저장해 뒀었다. 이산의 이름이 뜨자 그는 휴대폰 화면을 잠시 바라봤다. '안 받을 이유는 없는데 무슨 일이지?' 그는 궁금했다. 설레는 감정도 살짝 들었다. 자기도 모르게 뭔가를 기대하고 있다는 듯.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이산의 차분한 목소리가 바로 이어졌다.


"요즘 바쁘시죠."

"네, 뭐… 그냥 그렇습니다."


"수산시장 영상이 궁금해서 전화해 봤습니다." 이산이 말했다. "아직 인터넷에 공개되지 않은 거 같아서요. "


그는 잠시 모니터를 바라봤다. 편집 타임라인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순간적으로 말을 골랐다.


"아직 정리가 좀 덜 됐습니다."

"편집이 길어지나 보네요."

"꼭 그런 것은 아닌데..." 그는 머리를 긁적였다. "내부 논의가 조금 더 필요해서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이산이 먼저 말을 이었다.


"그렇군요. 하나 제안해도 될까요." 이산은 그의 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대안을 넣어보면 어떨까 싶어서요."

"어떤 대안이죠?"


"제가 말할 수 있는 대안은 대체육이겠죠." 이산의 말투는 여전히 담담했다. "조리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를 넘어 ‘다른 선택지’를 제시하면 이야기가 입체적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산의 말은 정중했다. 그리고 논리 흐름도 깔끔했다. 군더더기 없는 이산의 말에 그는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가 답을 하려는데 이산이 먼저 말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의 다양한 사례를 영상자료를 제공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이산은 잠시 간격을 둔 후 덧붙였다. "해외에서는 대체 단백질 때문에 특정 조리방식에 대한 논쟁이 부드럽게 넘어간 경우가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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