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고기> 17장.
그는 그날 오후를 거의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보냈다. 수영은 오전 내내 전화를 하거나 회의실을 오갔고, 몇 번 자리로 돌아와 노트북을 두드리다가 다시 어디론가 나갔다. 사무실 안에서는 평소와 다르지 않은 일상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그는 그 흐름 속에 섞이지 못한 채 사실상 자리만 지키고 있었다.
전날 이산에게서 받은 USB를 만지작 거리며 그 속에 담긴 영상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참았다. 수영을 향한 미안함 비슷한 감정이 꿈틀거렸기 때문이다. 수영과 함께 있는 공간에서 이산의 영상을 확인하는 것이 불편했을 수도 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수영의 말이 문득문득 맴돌았다.
'영상, 꼭 내보내자.'
그는 눈치를 보다가 평소보다 조금 이르게 사무실을 나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노트북을 켰다. 곧바로 이산의 USB를 꽂았다. 작은 알림창이 화면 한쪽에 떠올랐다.
'외장 저장 장치가 연결되었습니다.'
그는 잠깐 화면을 바라보다가 폴더를 열었다. 영상 파일은 3개였다. 영어로 된 제목이 살짝 생소했다.
Denmark_PeaFarm.mp4
EU_FoodLab_Interview.mp4
Berlin_Restaurant_Service.mp4
그는 가장 위에 있는 파일을 클릭했다. '덴마크 피팜.' 생각한 대로 영상은 덴마크의 평평한 농장 풍경으로 시작했다. 초록색 완두콩 밭이 화면 가득 펼쳐져 있었고, 바람에 줄기들이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다. 카메라는 가까이 다가가 농부의 손을 비췄다. 농부가 완두콩을 껍질째 따서 손바닥 위에서 비벼 보였다.
"이건 가축 사료가 아니라 사람 음식이 됩니다."
편집된 듯한 한글 자막이 짧게 지나갔다. 카메라는 밭에서 수확된 완두 단백질 원료를 비췄다. 흙이 묻은 자루들이 트럭에 실리고 있었다. 장면은 특별히 극적인 연출 없이 이어졌다. 농장 풍경, 작업하는 사람들, 그리고 자루에 적힌 단순한 표시.
'Plant Protein.'
다음 장면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작은 푸드랩이었다. 공장이라기보다는 넓은 주방에 가까운 공간이었다. 스테인리스 조리대 위에 재료들이 놓여 있었다. 버섯, 해조류 추출물, 향신료 병, 식물성 단백질 반죽.
흰 앞치마를 입은 셰프가 반죽을 손으로 들어 올려 섬유처럼 늘려 보였다.
"우리는 고기를 복제하지 않습니다." 셰프가 웃으며 말했다. "고기의 경험을 다시 설계합니다."
셰프는 반죽을 조심스럽게 접어 팬 위에 올렸다. 카메라는 조리 과정을 가까이에서 따라갔다. 기계가 아니라 사람의 손이 움직이고 있었다.
다음 장면은 독일 베를린의 작은 레스토랑이었다. 저녁 시간. 손님들이 테이블에 앉아 메뉴를 보고 있었다. 서버가 접시를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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