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해줄래"

<올바른 고기> 18장.

by 돈태

수영이 노크를 하고 들어갔을 때, 대표는 책상에 앉아 있지 않고 창가 쪽에 기대 서 있었다. 창밖을 잠깐 보다가 수영을 보며 웃었다.


"왔어?"


수영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무표정하게 대표를 바라봤다. 대표는 그대로 창가 쪽에 서서 말을 꺼냈다.


"어제 저녁에 캠프 쪽 사람들이랑 자리 있었어."

"대선 캠프요?" 수영은 자연스럽게 대표 쪽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응." 대표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지금 뭐 그쪽이 유리하지. 이번엔 정권 교체하자는 의지도 충분하고."


수영이 가까이 오자 대표는 수영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진보 단체들 몇 군데 불러서 간담회 했어. 대선 공약 정리 들어간다고." 대표는 잠시 뜸을 들이다 옅은 미소를 지었다. "후보가 윤리적 조리법에 관심이 크단다."


수영의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바뀌었다. 대표는 그걸 보고 피식 웃었다.


"정확히는 관심 정도가 아니야. 공약으로 올릴 생각인가 봐." 대표는 수영의 표정을 살피듯 눈을 굴리다 말을 이었다. "그리고 공청회 영상 얘기도 나왔다."


수영은 대표의 다음 말을 기다라고 있다는 듯 아무 말 없이 대표를 바라봤다.


"지금 보류된 영상 있잖아. 그거 다시 가자." 대표는 기지개를 켜며 말을 덧붙였다. "추가 영상도 준비하면 어떨까?"


수영은 속이 답답했던 속이 뚫리기라도 하듯 깊은 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 대표를 잠시 바라보다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대표는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수영은 바로 말해다.


"전략기획팀은요?"

"알고 있다. 그건 신경 쓰지 말고. 영상 준비만 잘 해줘."


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수영은 잠시 뜸을 들인 후 말했다.


"선배.."

"응."

"마음 정한 거죠?"

"그래 인마. 우리가 같이 한지가 얼마인데.. 이번에 제대로 해보자. 대선이다. 그것도 유력 후보가 우리랑 손을 잡으려고 해."

"알겠어요."

"영상 언제쯤 볼 수 있나??"

"준비는 하고 있었어요. 내일 퇴근 전에 보여드릴게요."

"그래. 고생했다."

"아시는군요."


수영은 뭔가 속이 후련하다는 느낌을 받으며 대표실을 나왔다. 창밖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퇴근 시간이 조금 지난 사무실은 한적했다. 수영은 그의 책상을 살폈다. 그도 이미 퇴근한 상태였다. 수영은 핸드폰으로 그에게 문자를 보냈다.


'내일 출근하고 영상 확인할 수 있을까?'


그는 지하철에서 막 내리려던 참에 수영의 문자를 확인했다. 별다른 저녁 약속이 없어 퇴근 후 바로 집으로 향했다. 집 앞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사서 저녁을 대충 해결하려고 했다. 다른 것에 신경을 쓰거나 생각 자체를 하기 싫었다. 끼니를 때우는 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머릿속을 꽉 차고 있는 생각은 퇴근 직전 마무리한 영상 편집이 아니었다. 솔직히 그리고 그도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지만 수영에 대한 것들이었다. 수영의 말 토씨 하나하나, 미세한 표정 변화 등을 수시로 되뇌었던 것이다. 그럴 때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수영이 보낸 문자를 한참 바라봤다. 답장은 어렵지 않았다. '가능합니다.’ 그 한 줄이면 됐다. 하지만 바로 입력하지 않았다. 지하철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는 그 흐름에 섞여 계단을 올라갔다. 휴대폰은 손에 쥔 채.


집으로 가는 길은 평소보다 짧게 느껴졌다. 편의점을 그냥 지나쳐 집으로 들어왔다. 그는 의자에 앉아 수영의 문자를 다시 한번 바라봤다. 잠시 후 그는 핸드폰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노트북을 켰다. 사무실을 나오기 전에 저장한 '최종본' 파일을 열었다. 영상이 처음부터 재생됐다.


수산시장.

짧게 스쳐 지나가는 돼지의 눈.

완두콩 밭.

푸드랩.

레스토랑.

그리고 시민 인터뷰.

"먹을 게 많아졌으니까요."


영상이 끝났다. 그는 멈추지 않고 다시 재생했다. 이번에는 컷을 보지 않았다. 흐름을 봤다. 장면들이 설명 없이 이어지면서 하나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는 화면을 멈췄다. 수영에게 이 영상을 설명하는 장면이 잠깐 머릿속에 떠올랐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설명으로 이해되는 영상이 아니었다. 그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휴대폰을 다시 집어 들었다.


‘내일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메시지는 바로 읽혔다. 그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다시 노트북 화면을 바라봤다. 그제야 허기가 올라왔다.


다음 날 오전. 평소보다 몸이 피곤했다. 출근길에 으레 시청하던 OTT를 틀지 않았다. 오랜만에 이어폰을 귀에 꽂지 않았는데도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는 거 같았다. 사무실 앞에 도착한 그는 깊게 숨을 한번 들이쉬고 문을 열었다. 사무실로 들어서자 정면으로 보이는 회의실 문이 열려 있었고, 전략기획팀장이 안에서 나오고 있었다. 전략기획팀장은 수영과 마주치자 잠깐 멈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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