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책방 이름은?
상가 계약을 하기 전에 책방 이름부터 지었다. 상가를 계약하고 사업자등록을 하기 위해서는 이름이 필요하다. 책방을 시작할 공간을 찾아 발품을 파는 동시에 책방 이름을 놓고 머리를 굴렸다.
이름 후보군을 나열하면서 책방을 왜 하고 싶은 지 생각했다. 매달 들어오는 월급에 코가 꿰어 눈치 보는 삶과는 거리를 둔 삶을 표현하고 싶고, 정치적 성향과 가치관을 대놓고 드러낼 수 있는 단어가 고팠다. 주체적인 삶이라는 지향점을 담아낼 수 있는 철학적인 표현들에도 끌지만, 결국 내가 좋아해온 단어였다.
'일단 불온'
'일단'과 '불온'을 조합했다. 두 단어에 꽂힌 지 오래다. '일단'이라는 단어는 움찔하듯 무의식적으로 몸이 먼저 반응하는 느낌을 준다. '일단 해보자'처럼 말보단 행동이라는 의미가 베어난다. 책방을 열자고 결심했던 마음가짐과도 들어맞는다. 이리저리 머리만 굴리다 시도도 못해본 일들이 많았다는 회한도 한몫했다. '그냥 해'다.
'불온'은 섹시한 단어다. 사전적 정의로 '온당하지 않음'이다. 이보다는 '불온서적'의 불온처럼 정치적인 냄새가 짙다는 데 마음이 간다. 지배 이데올로기, 기존 질서와 체제, 통념 등에 저항하는 삐딱함을 느끼며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여전하지만 나에게는 생기발랄함을 연상시킨다. 조련되지 않는 야생마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고, 어떤 생각을 할지 가늠하기 어려운 자유로움이 단어 속에 꿈틀댄다. 표현의 자유를 위해 분투했던 김수영 시인을 마음속에 품고 다니면서도 회사에서 쓰라는 글을 써댄 분통이 '불온'에 홀리게 했던 거 같다.
요즘은 다른 책방 이름을 떠올린다. 일단 불온의 상가 계약이 끝나면 잠시 책방을 쉬고, 다음 책방을 고민할 계획이다. 두 번째 책방을 열게 되면 이름을 바꿀 예정이다. 이름이 바뀌더라도 첫 책방의 정체성은 남기고 싶다. 일단 불온이라는 단어를 두번째 책방 어딘가에라도 흔적을 남길 작정이다.
두 번째 책방 이름 역시 일단 불온과 마찬가지로 지향하는 삶을 상징할 수 있는 이름을 먼저 떠올렸다. 니체의 '위버맨쉬', 이반일리치의 '버내큘러' 등. 철학자들의 사유를 응축한 단어들에 끌렸다. 다만 가장 잘 쓴 글은 쉽게 읽히는 글인데 어렵다. 빈수레가 요란하듯 있어 보이는척 하는 거 같아 민망하다. 이름만 심오하면 뭐하나 정작 책방 주인이 심오하지 않은데라는 자조도 튀어 나온다.
쉽게 가자. 그래서 떠오른 단어는 '동태'다. 아들을 부르는 애칭이다. 아들과 함께 책방을 꾸리며 살고 싶은 마음도 담았다. '동태'라는 단어에 담긴 사연은 물론, 들리는 어감도 정답다. '동태 책방' 확정이라고 생각했던 순간, 아들이 말을 떼면서 자신의 애칭을 소리낸 장면이 떠올랐다.
"돈태, 돈태."
엄마아빠가 부르던 자신의 애칭을 따라 소리 내는데 'ㅇ' 받침이 완벽하지 않다. 어설픈 발엄이 귀여웠다. 어느순간 나도 동태가 아닌 돈태로 발음하며 아들을 불렀다. 아들의 애칭을 책방 이름으로 쓸 바에 아들이 직접 발음한 단어로 하자고 마음 먹었다. 또 하나, 돈키호테가 연상된다. 얼마 읽지 않은 고전 중에 최고로 치는 작품을 고르라면 돈키호테를 꼽는다. 이보다 정겹고 나름 의미있는 책방 이름이 어디 있나!
그런데 두 번째 책방을 언제 어디서 열지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도 '일단' 열 테다. 돈태 책방(구 일단불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