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책방을 열었나

결심 전 / 다짐 보단 저지름

by 돈태

탄흔. 상상만 해오 던 책방을, 저질러 버리게 만든 신호탄이다. 사연을 쓰려니 스스로 간지럽다. 그때는 머리띠라도 둘러멜 기세로 비장한 표정을 하고 거창한 의미를 부여했던 거 같다.


인스타 책방 계정의 첫 포스팅을 올린 날짜는 2018년 5월 20일이다. 전 날 광주 금난로에서 찍은 사진을 올렸다. 5-18 행사가 열리던 금남로는 차량 출입이 통제됐다. 옛 전남도청 자리 앞에 서 있는 전일빌딩을 처음 봤다. 전일빌딩 외벽에 남아있는 탄흔이 눈에 들어왔다. 건물도 역사를 저렇게 명확히 기억하고 있는데 나는 뭐 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때 한창 기자 생활에 회의감을 품고 있었다. 내가 쓰는 기사는 내 글이 아니라는 생각이 컸다. 부장이, 회사가 원하는 글을 썼다. 조직이 원하는 방향으로 기사에 들어갈 팩트를 취사선택했다. 내 가치관, 정치적 지향점과 반대되는 방향으로도 억지스럽게 기사를 만들었다. 이러려고 기자가 됐나,라고 주먹을 불끈 쥐면서도 월급을 기다렸다.


당장 월급을 포기하지 못한다면 응어리를 해소할 배출구 하나라도 마련해야 한다는 얄팍하면서도 절박한 심정이었다. 기사로 뱉어내지 못한 생각들, 주장들 그리고 팩트들을 대신 분출해 줄 무언가를 떠올리려고 머리를 싸맸다. 그러던 중에 책방에 생각이 미쳤다. 당시 동네책방, 독립서점이라는 이름을 단 작은 책방들이 서울과 제주도를 중심으로 활발히 생겨나고 있었다. 신기하고 궁금한 마음에 책방 투어를 다니다가, 어느 순간부터 나를 닮은 책방을 차리고 싶다는 마음이 자랐다. 지금 내 글에 담지 못하는 정치적 색깔을 탄흔처럼 명확히 드러낼 책방을 열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다짐은 했지만, 정작 몸이 굼떴다. 시간이 흐를수록 변명만 늘어났다. 시간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준비를 해보고 등 스스로 타협을 하고 있었다. 책방을 다짐했던 마음이 어느새 흐릿해져 갈 무렵, 뒤통수를 맞았다. 지금은 돌아가신 홍세화 선생님의 글에서 한 문장에 눈이 꽂히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대학에 진학해도 취업 문제로 억눌리는 삶을 살며 청춘을 저당 잡히고 있다."


홍세화 선생님이 말하고자 했던 구조적인 문제제기와는 문맥이 다르더라도, 내 오늘도 저당 잡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심각하게 다짐을 해 놓고서 현실적인 문제들을 계산하며 나중으로 미루고 있었다. 여건이 나아지면 책방을 열자는 생각은 오늘은 어쩔수 없이 또 버텨내야 한다는 말이 될 뿐이었다. 당장 오늘부터 그만 버티겠다는 생각이 불끈불끈 삐져나왔다. 나중에 책방을 열었을 때 진작 열 걸, 하며 버터온 오늘들을 후회할 거 같았다. 다짐이 일단 저지르자, 로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첫 저지름으로 오토바이를 팔았다. 서울 교통체증과 주차가 짜증 나서, 한 번은 타보고 싶다는 생각에 몇 년 전에 샀던 오토바이다. 상가를 계약하기 전이라도 우선 보증금으로 쓸 돈을 마련하자는 심사였다. 나름 퇴로를 차단한 셈이다. 서울 곳곳의 매장에 발품 팔은 후 가장 괜찮은 가격을 제시한 곳에 오토바이를 넘겼다. 정가에서 60% 정도 되는 값이었다. 계좌에 오토바이 판매대금이 입금되는 순간, 강을 건넜다고 생각했다.


퇴로를 막자 몸이 알아서 앞으로 나아갔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동산 사이트와 상가임대 앱을 뒤졌다. 상가 기준은 상권이 아니었다. 주변 환경과 교통, 유동인구 등은 중요하지 않았다. 임대료 싼 것이 첫 번째고, 지역이 그 다음이었다. 돈을 더 벌지는 못해도 너무 까먹지는 말자고 생각했다. 월급은 받아야 하니 책방 위치는 집과 일터를 오가기 수월한 곳이 우선이었다. 어차피 책방에 관심 있는 사람이면 어디에 있든 찾아 오겠지, 생각했다. 그렇게 손님 입장은 배제한 기준으로 상가를 보러다녔고, 한 번 실패한 후 빨간색이 눈에 들어온 상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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