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질 에피소드
"나한테 미안하지 않냐."
부장은 한 마디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통화 종료음이 들리는 핸드폰을 귀에서 천천히 떼면서 '더는 못하겠다'라고 생각했다. 바로 부장한테 전화를 걸었다. 부장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부장한테 카톡을 남겼다. '사표 쓰러 회사에 들어가겠습니다.' 부장한테 전화가 왔다. 받지 않았다. 기자실에서 짐을 싸서 나오는데 부장의 전화가 다시 왔다. 핸드폰을 노려보다가 받았다.
"지금 뭐 하자는 거냐?"
"제가 부족합니다. 사표 쓰겠습니다. 국장한테 연락하고 회사로 들어갈게요."
"아니 갑자기 왜 그래. 일을 왜 망치려고 하는 건데. 일이 되게 해야지."
"갑자기 아닙니다. 오래 생각한 겁니다."
"전에 있었던 일 때문에 그러냐. 그건 이제 다 지난 일이다. 앞으로가 중요해."
"아니요. 저는 선배랑 생각이 다릅니다. 끊겠습니다."
"잠깐만, 문제가 있으면 해결을 해야지."
"같은 말 또 반복할 뿐입니다. 끊을게요."
부장은 보고받은 지면발제가 못마땅했던 것이다. 지면에 쓸만한 기사가 없다는 의미다. 지면발제의 부실함을 지적하는 대신 자신한테 사과를 요구했다. 이런 보고를 해놓고 자기를 볼 면목이 있냐는 뉘앙스다. 너희들이 일을 제대로 못 하거나, 안 한 결과로 자기가 피해를 보게 됐다는 인식도 베어난다. 팀장이던 나는 매일 아침마다 후배들의 발제를 취합해 지면발제를 데스크에 보고한다. 언제부터인가 후배기자들은 "지금 상황에서 지면발제까지 신경 쓰라는 것이 말이 되나요"라는 불만을 입에 달고 살았다.
언론사의 기사는 기자가 쓰지만 데스크와의 협업 작품이다. 당장 기사에 달리는 제목부터 데스크가 결정한다. 기사의 마침표도 사실상 데스크가 찍는다. 추가적인 팩트 체크 등 게이퍼키핑 역할을 데스크가 한다. 기사의 완성도를 결정짓는 권한이다. 기사의 실질적인 출발점도 데스크다. 기사를 내보내는 것보다 기사를 안 내보내는 권한이 더욱 세다. 데스크는 기사발제를 '킬'할 수 있다. 기자는 기사를 완성하는 것보다 발굴하는 일이 핵심이다. 기사 발굴 능력을 발제라는 형식으로 매일 평가받는다. 신문사의 경우 지면에 실을 기사를 선별하는 작업에 가장 공을 들인다. 지면발제가 일간지 기자의 하루 일과 가운데 중심인 이유다.
기자는 발제에 대한 지적을 일상으로 받아들이며 산다. 발제 준비가 시원치 않은 날은 "내일 뭐 먹고사나"라는 한탄을 한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기자는 기사만 안 쓰면 최고의 직업인데"라는 말을 많이 한다. 정확히는 기사 작성보다 발제 스트레스다. 어떤 직업군보다도 다양한 경험을 하지만 그에 대한 대가는 매일 뒤따른다. 오늘 보고, 듣고, 읽은 내용들을 기사 아이템으로 만들기 위한 발제를 해야 한다. 어떤 일이건 기사화 여부를 가늠해 보는 습관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발제가 부실한 날에는 심기일전할 마음을 다잡는다. 바로 다음날 또 평가를 받아야 하니. 무엇보다 자기 이름 걸고 나갈 기사이니. 그래서 부실한 발제는 누구한테 미안해 하기보다 스스로 극복해야 할 당면과제다. 여기서 기사가 협업 작품이라는 의미가 중요하다. 기자 혼자만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사의 방향성, 아이템의 밸류 판단, 추가 취재 필요성 등 데스크의 피드백이 양질의 발제를 만드는 발판이다.
부실한 지면발제는 구조적으로 반복되는 결과였다. 대놓고 드러내지 않았지만 회사는 온라인기사의 클릭수에 목을 매었다. 직간접적으로 수익과 연결된다. 회사 차원에서 기사라는 표현 대신 콘텐츠라는 단어를 쓰며 온라인 기사를 강조했다. 취지는 온라인 독자층을 확대하기 위해 양질의 온라인기사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존의 지면기사에 대한 부담을 줄이겠다는 방침까지 공식적으로 세웠다. 방침이 말을 넘어 시스템으로 구축되는 일은 점점 요원해 보였다.
그래도 회사의 방침이다. 책임자들은 성과를 내야 한다. 각 부서의 데스크들은 당장 온라인기사 클릭수 압박에 시달리는 처지가 됐다. 당초 취지인 양질의 콘텐츠는 품이 많이 든다. 당장 성과도 보장하기 어렵다. 반면 쉬운 길이 있다. 양으로 승부하는 것이다. 온라인기사 꼭지수를 늘려서 클릭이라는 당장의 결과물만 내면 된다. 매일 온라인기사 꼭지수를 늘리라는 닦달을 받은 배경이다. 안 써도 되는데, 쓸 의미가 전혀 없는데 그리고 클릭만 유도하면 된다는 심사로 써대는 온라인기사들은 기레기라는 비판을 수긍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전날에도 온라인기사를 날림으로 써대는데 집중했다. 당일 일어날 이슈가 많아서 실시간으로 속보와 종합 기사를 쏟아냈던 날이기도 했다. 당연히 다음날 발제할 아이템을 준비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부장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런데도 어김없이 지면발제 트집을 잡았다. 발제 지적이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이런 지적을 후배기자들에게 전달하는 일에도 지쳤다. 부실한 발제를 미안해하라는 말에는 어이가 없었다.
미안함의 요구는 결국 남 탓이다. 데스크는 보고 받은 지면발제를 들고 지면회의에 참석해 국장한테 보고를 해야 한다. 지면발제 부담을 줄이자는 것이 회사의 방침이지만 말 뿐인 방침인 상황이다. 현실은 여전히 지면발제에 대한 평가가 매일 이뤄진다. 국장은 한 언론사의 지면을 책임진다. 부실한 지면발제를 보고한 데스크는 여전히 국장한테 한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고, 국장의 지적은 낙수효과처럼 기자들에게 순차적으로 내려온다.
미안해하라는 말에 부장을 위해, 넓게는 회사를 위해 기사를 쓰려고 기자가 됐던 것은 아니라는 늦은 자각이 번뜩였다. 부장이 통화에서 물었던 '전에 있었던 일'도 부장의 생각과 같이 지나간 일이 아니라 쌓여온 내상이었다. 미안해하라는 말에 안으로 곪던 상처가 터져 나왔다. 밥 한 술 못 뜨게 만들었던 '전에 있던 일'이 이제는 지나간 일이라고. 당치도 않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