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으름장

이중성

by 돈태

나의 첫 번째 육아휴직은 아들이 2살 되던 해다.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한 아들의 등하원을 책임졌다. 다만 전적으로는 아니지만. 아들을 돌본다는 이유와 함께 십 년 넘게 이어온 밥벌이에 잠시 쉼표를 찍고 싶은 마음도 컸다.


육아휴직은 법적인 권리지만 눈치가 보였다. 회사에서 남자 직원의 육아휴직은 흔치 않았다. 초대 노조위원장을 지냈던 선배가 몇 년 전에 남자로서 처음으로 육아휴직을 썼다는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들었던 기억도 났다. 경제적인 부담도 고려해야 한다. 국가에서 지급하는 육아휴직 급여는 매달 들어오던 월급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도 용기를 냈다. 와이프의 육아휴직 기간이 끝나는 시점이라 육아 인력도 필요했다.


머리를 굴렸다. 법적으로 보장된 1년을 다 쓰기에는 회사에 눈치가 보이고 경제적인 부담도 크다. 반으로 자른 6개월은 조금 아쉬웠다. 그래서 어중간하게 8개월의 육아휴직 의사를 회사에 밝혔다.


"지금 육아휴직을 하면 복귀해서 어려울 거다."

지금은 경영진이 된 당시 편집국장은 육아휴직 통보에 못마땅해했다. 복직 후 인사에서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암시했다. 바빠 죽겠는데 한가로운 소리를 한다는 뉘앙스도 배어났다. 자기 때는 남자가 육아휴직 쓴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다는 말까지 안 나온 것은 다행이다. 육아휴직을 막는 불법을 저지르지는 못하니 조심스럽게 협박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는 국장한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육아휴직 의지를 꺾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니 노예근성이다.


8개월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회사에 복귀했다. 인사권을 쥐고 있는 편집국장이 바뀐 상태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인사상 불이익은 없었다. 마침 원하던 부서에 인력 공백이 생겨 그쪽으로 배치받았다. 그리고 1년 가까이 해당 부서에서 기자질을 하면서 비로소 퇴사를 결심하게 됐다.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거다."

두 번째로 육아휴직 의사를 밝힐 때는 조금 더 직접적인 협박을 받았다. 복직을 했을 때 인사고과는 물론이고 업무 배치에서도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는 경고를 받았다. 이 때는 미안한 감정은커녕 하는 육아휴직 의지가 더욱 강해졌다. 두 번째 휴직은 차선책이었다. 기자질에 미련이 사라진 상태에서 사표를 쓰려고 했는데 국장이 잡았다. 국장은 부서 이동을 제안하며 마음을 돌리려고 시도했다. 부서 이동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었다. 어차피 같은 조직이기에 또 같은 일이 반복될 뿐이라고 생각했다. 당장 사표는 쓰지 않는 대신 남은 육아휴직을 마저 쓰겠다고 말했다. 국장은 육아휴직을 막지 못하는 대신 으름장을 놨다.


"예견된 바 아닌가. 얼굴이나 한번 보고 가라."

두 번째 육아휴직이 끝나기 며칠 전 국장에게 전화를 했다. 복직 의사가 없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다. 떨렸고, 뭔가 미안한 감정도 들었다. 그러나 통화를 마치고는 허무했다. 국장의 말은 건조했다. 복직을 안 할 줄 알았다는 식으로 내 말을 받았다. 껄끄러운 짐 하나 덜었다는 뉘앙스도 느꼈다.


'0.7'

두 번째 육아휴직을 신청하기 몇 달 전, 회사는 연재기사를 내보내고 있었다. 회사 차원에서 이슈화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야심차게 추진했던 기획기사다. 회사는 대한민국의 중대한 국가적 문제로 저출생을 지목했다. 합계출산율 수치를 연재물 문패에 달면서 저출생의 심각성을 강조한 기획이다. 연재기사는 저출생 현황과 대안 그리고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이 가운데 남자 직원의 육아휴직을 적극적으로 권유하는 한 대기업 사례도 기사화했다. 해당 기업의 탄력적인 근무시간이 육아휴직을 적극 권유하는 동력이 되고 있다는 분석도 제시했다. 그러면서 육아휴직 제도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꾸짖음도 빼놓지 않았다. 지금 보면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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