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운동
소박한 삶. 지금은 강제하고 있지만 어느 순간에는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길 바란다. 자본주의라는 체제를 뒤엎거나 거역하지 않을 바에는 그 안에서 모색을 하자는 심사가 깔려 있다. 그래서 내게 소박함이란 두 가지로 나뉜다. 어쩔 수 없이 소박해져야 하는 처지와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소박하게 살려는 자세. 난 후자를 밀고 나가는 중이다. 여기에는 비트코인과 이반일리치의 철학이 무기가 된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차근차근 쓸 계획이다.
매일 10킬로미터 이상을 걷는다. 일주일에 3일 이상은 일어나서 집을 나와 운동한다는 생각으로 걷는다. 이때 보통 10킬로미터를 걷는다. 운동으로 걷지 않을 때는 버스정류장 2곳 정도의 거리면 그냥 걷는다. 러닝을 시도했는데 나랑은 안 맞는다. 숨이 차오르는 것을 버티며 이겨내려는 마음가짐이 별로다. 걸으면서는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대부분 오늘은 뭘 쓸까,라는 생각을 한다. 이 점이 뛰는 거랑 비교할 수 없이 탁월한 점이다.
걷기로 유산소 운동을 하고, 근력 운동은 일주일에 1~2번 한다. 헬스장을 다니려고 했지만 접었다. 살아오면서 수도 없이 겪은 경험의 교훈이다. 꾸준하기 어렵다. 러닝이랑 비슷하게 버티고 있다는 느낌이 싫다. 헬스장을 다니는 초반에는 초심으로 무장해 열심히지만 점점 돈이 아까워 가게 된다. 종국에는 안 가는 날이 늘어나며 헬스장을 연장하지 않는다.
가끔 사우나 생각이 날 때 가던 오래된 동네 목욕탕이 있다. 시설도 괜찮고 규모도 커서 손님이 꾸준히 몰리는 목욕탕이다. 주말이나 휴일에는 손님으로 꽉 차는 경우가 많다. 최신 찜질방이나 사우나에 비해서도 온통과 냉탕이 널찍한 점, 사우나 방이 종류별로 3가지나 된다는 점이 손에 꼽을 만한 경쟁력이다.
육아휴직 중이던 평일 이른 아침에 동네 목욕탕에 갔다. 남탕 안의 모습은 낯설었다. 사람들로 북적이던 익숙한 풍경과 거리가 멀었다. 손님이 한 두 명 정도 됐을까. 사실상 남탕 안은 목욕탕 직원을 제외하면 나 혼자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날 이후, 평일 이른 아침에 동네 목욕탕을 찾는 일이 늘었다. 집에서 일어나 대충 얼굴에 물을 묻히고 목욕탕으로 향했다. 언제나 목욕탕은 한산했다. 다른 손님들의 눈치를 볼 일이 없는 목욕탕 안에 있으면 이곳을 내가 전세를 낸거 같은 생각마저 들었다. 이렇게 쾌적하게 사우나를 즐길 수 있다니.
딴생각이 났다. 씻고만 가기 아까운데. 3개의 사우나방 가운데 온도가 가장 낮은 습식방에서 푸시업을 했다. 혼자 헉헉대도 보는 눈이 없으니 자신감이 생기는 듯했다. 앉았다 일어나기도 이어서 했다. 습식방을 나와 정수기의 찬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생각보다 괜찮은데. 다시 습식방에 들어가 유튜브에서 본 적이 있는 복근운동을 해봤다. 양손을 깍지 껴 뒤통수에 대고, 팔꿈치와 무릎이 닿을 정도로 다리를 올리는 동시에 상체를 비틀어 굽히는 동작을 좌우 번갈아가며 했다.
습식방을 나오면 바로 옆에 길이가 적어도 10미터 이상은 되는 냉탕이 있다. 역시 사람이 없다. 냉탕에 들어가 주위를 잠깐 둘러보다 바로 물속으로 몸을 던졌다. 접형으로 냉탕을 왕복한 후 샤워 부스에서 몸을 씻고 목욕탕을 나왔다.
목욕탕에서의 운동 루틴이 자리잡자 정기권을 끊었다. 사우나 이용료는 9천 원인데 10회권은 8만 5천 원이다. 매회 500원 정도가 싼 셈이다.
한 가지 비밀이 있다. 나는 목욕탕에 가면 옷장을 두 개 쓴다. 물론 손님이 없는 평일 이른 아침 시간대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겨울이라서 두꺼운 외투에 백팩까지 있기 때문에 보통의 목욕탕 옷장 하나는 버겁다. 그래서 항상 쓰는 옷장 바로 옆 옷장에도 짐을 나눠서 넣는다. 목욕탕 직원도 그 시간대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