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역에서 한강진역 가는 길
옥수역 5번 출구로 나와 옥정중학교가 있는 언덕을 오른 후, 한남더힐아파트를 끼고돌아 남산 방향의 한남제1고가 진입로 가장자리 차도를 경찰의 바리케이드의 도움으로 차들의 방해 없이 걷는다. 민주노총 이름이 붙은 고속버스가 세워진 도로 뒤쪽에서는 "윤석열을 탄핵하라"는 취지의 목소리가 파편적으로 들린다. 주변에는 같은 맥락의 플래카드를 손에 든 사람들이 서성이고, 비교적 사람들이 몰려있지 않은 구역에서는 마찬가지 의미를 지닌 커다란 깃발들이 허공을 휘젓고 있다.
깃발을 든 사람들 바로 뒤쪽 역시 경찰의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어 사람들의 통행에 물리적인 제약을 준다. 바리케이드 사이의 좁은 틈을 비집고 나가면 곧바로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들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들의 시선이 향하는 대형 스크린 앞 무대에서 마이크를 든 사람이 "이재명을 구속하라"는 취지로 목에 핏줄을 세운다.
양쪽의 목소리는 모두 저 뒤쪽 매봉산 언저리를 향하고 있다. 오늘은 그곳에 살고 있는 한 사람을 공권력이 합법적으로 체포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있는 무리에서 마이크를 든 사람이 "지금 우리들의 말을 대통령님이 관저에서 다 듣고 계십니다"라고 외쳤다.
어느 쪽의 목소리가 그곳에 더 잘 닿을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양쪽 사람들의 목소리에 매가리가 없는 것은 매한가지다. 무대에 올라 마이크를 거쳐 나오는 목소리만 유독 우렁차다. 양쪽의 지친 얼굴들 사이에서도 생기가 도는 공간은 따로 있다.
윤석열을 외치는 사람들과 이재명을 소리치는 사람들 모두 차가운 거리에서 끼니를 때운다. 윤석열을 외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구역에서는 컵밥 비슷한 음식을 나눠주는 푸드트럭 앞에 줄이 늘어나고 있다. 근처에서는 한 언론사가 후원금 계좌를 적어놓은 팻말을 세워두고 모여드는 사람들에게 어묵꼬치를 담은 컵을 건네고 있다. 컵밥과 어묵꼬치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어깨가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소리에 맞춰 들썩인다.
바리케이드를 넘어 이재명을 외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활기찬 곳은 무리를 빗겨 나 있다. 길 한쪽에 노점상 좌판처럼 펼쳐진 돗자리 위에는 커피믹스와 컵라면이 널려 있다. 돗자리 주변에서 자기 순번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옆 사람 혹은 앞뒤 사람과 대화에 열을 올린다. 그 옆 온수통에서 물을 받은 사람들 역시 삼삼오오 자리를 잡고 침을 튀기듯 두 가지 일에 입이 열심히다.
오늘 상황이 유독 묘하게 느껴져 한남동으로 향했다. 작년 12월 3일 이후로 조기에 정권이 교체될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오늘 윤석열 대통령의 여론지지율이 계엄 사태 이후로 처음 40%를 돌파했다는 기사가 떴다. 여당의 지지율은 계엄사태 이후로 회복했다는 보도까지 나온다. 이런 기사들에는 '민주당 역풍 맞나'라는 꼬리표가 부제목으로 붙고 있다.
옥수역에서 한강진역까지 걸으며 무리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한 가지 느낀 점이 있다. 그들의 눈이 왠지 모르게 퀭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거리에서 끼니를 해결하지 않은 내가 감히 그 이유를 알 수는 없는 것일까. 내 기분 탓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