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마음속에는 모두 그림이 있다. 눈을 뜨고 감을 때까지, 매일매일 비슷하고 또 달라지는 삶을 바라보면서 마음은 무언가 다짐한 듯 으흠 헛기침을 한 다음 쓱싹쓱싹 그림을 그린다. 이런 마음의 풍경들은 우리가 어떻게 삶을 바라보는지 이야기해 준다. 어쩌면 어두운 그림일 수도, 밝은 그림일 수도 있지만 언제나 어둡거나 밝지는 않을 것이다.
때로는 그림이 의도와 다르게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누가 내 그림을 보고 "이야, 멋진 침팬지를 그렸구나?" 하면 나는 눈을 흘기면서 "배트맨이야."라고 말하는 그런 종류의 그림 말이다. 그런 그림을 그린 날이면, 누군가 내 그림을 알아봐 주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면서 동시에 아무도 모르게 그 그림을 태워 버리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물감은 이미 엎질러졌고 주워담을 수는 없는 일이다.
각자의 그림이 어떤 모습이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 그림의 처음에는 분명 비어있는 공간이 있었다는 것이다. 마음이 깨끗한 흰 종이라는 말이 아니다. 그저 여백이 더 많았다는 말이다. 아직 뭘 어떻게 그려야 할지 모르는 손이 붓을 만지작거리기만 하던 시간이 있었고, 나는 가끔 기억도 안 나는 그 순간이 그립다.
어느 날에 보면 나는 내 그림에 매우 집착하는 것 같다. 이건 이렇게 그려야지, 이 색깔이 맞다니까, 뭘 그리면 더 풍성하게 보일까. 분주해진 마음이 비좁은 캔버스에 얼른 뭔가를 채워넣는다. 잘못 그려진 부분은 덧칠을 해서 가린다. 하지만 찝찝한 느낌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하다.
우리가 어느 야트막한 언덕에 있는 미술관에 왔다고 상상해 보자. 세상 온갖 것들이 그려져 있는 그림이 천장부터 바닥까지 빽빽하게 차 있고 그것도 모자라 건물의 벽면까지 모두 그림으로 뒤덮인 미술관이다. 보기만 해도 더부룩해지는 것은 물론 그림을 제대로 즐길 수도 없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그림에는 그려지지 않은 부분이 있다. 그릴 필요가 없었거나 아직은 그릴 수 없었거나. 어떤 이유에서든 비워져 있는 곳이 있어야 보는 사람도 그리는 사람도 마음이 편하다. 작품과 작품 사이의 거리도 중요하다. 모든 그림이 이어붙여져 있는 미술관은 매우 우스꽝스러울 것이다. 뺄 그림은 빼고 있어야 하는 그림은 그대로 두어야 한다. 한 그림에서 다음 그림으로 넘어가는 동안 생각하고 기대하는 시간은 미술관 전체의 분위기를 차분하게 그러나 서서히 고조시킨다. 훌륭한 미술관은 마음의 평화와 정열을 한꺼번에 가져다준다.
이것은 그저 나의 상상 속에 있는 이상적인 미술관이다. 누구도 이런 미술관을 가질 필요는 없다. 다만 나는 혼자 있을 때, 이런 마음속의 미술관을 한 바퀴 둘러보는 타입의 사람인 것이다. 이렇게 괜히 미술관을 들락날락 거리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그리기 행위는 거의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반면에 지우기 행위에는 매우 고되고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왜 빼야 하는지, 어디까지 지워야 하는지 판단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아주 오랫동안 그림들을 바라봐야 하고, 날카롭게 감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무척 힘든 작업이지만, 적어도 나는 이렇게 해야 머릿속에 바람이 통하는 기분이 들고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생긴다.
내가 바라는 것은 평생 무언가를 신선하게 바라보는 일이다. 아무렇게나 내 그림이 맞다고 우기거나 멀쩡히 있는 것을 좁은 틈에 욱여넣고 싶지는 않다. 있는 그대로를 그릴 수 있는 넉넉한 마음씨를 가질 수 있을까? '훌륭한'까지는 못되어도 '꽤 괜찮은' 미술관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