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의 카프카(상)

장편소설에서 길을 잃지 않는 법

by 오늘의 혼자

방금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 1편을 다 읽었다. 의심할 여지없이 좋은 책이다. 누군가 나에게 "하루키는 모르고 읽어도 재미있고 알고 읽으면 더 재미있다."라고 한 적이 있는데, 하루키의 작품을 설명하는 좋은 말들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해변의 카프카는 이렇게 시작한다. 주인공 다무라 카프카는 아버지의 저주를 피하기 위해 가출을 감행한다. 세상에서 가장 터프한 소년이 되고 싶은 이 열다섯 살 소년이 결국 도착한 곳은 어느 도서관. 그는 이 도서관에서 일하는 여자에게 알 수 없는 이유로 끌린다. 한편, 어렸을 적의 사고로 지적 능력이 저하된 노인 나카타는 고양이와 말을 할 수 있다. 그는 소일거리 삼아 동네의 가출한 고양이를 찾아 주는 일을 한다. 그러던 중, 스스로를 조니 워커라고 소개하는 고양이 살해자를 만난다.


내가 소설을 읽을 때 쓰는 좋아하는 방법 중 하나는 하나의 문장이나 이미지를 머릿속에 끊임없이 그리는 것이다. 이를 테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잔이라든지, 연필에 의해 깊게 패인 손가락이라든지 하는 것들이다.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가능할까 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전혀 없을지도 모른다 와 같은 문장도 좋다. 작가가 의도한 것과 전혀 상관 없는 것일지라도 길을 잃기 쉬운 장편소설을 읽을 때는 이것들이 확실히 훌륭한 방향키가 되어 준다. 아무래도 중심이 있으니 지형을 파악하기가 쉽다. 나는 문장보다는 이미지를 그리는 것을 훨씬 좋아한다. 처음부터 지나치게 구체적인 말을 떠올리면 방향이 틀어질 때마다 수정이 필요하고, 그 작업이 몰입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추상적이고 변형이 가능한 이미지를 선택할 때 읽는 일이 좀 더 수월해진다.


<해변의 카프카>를 읽으며 그린 이미지는 검고 끈적한 웅덩이였다. 그리고 이것을 대충 이런 식으로 활용한다. 카프카에게 아버지는 검고 끈적한 웅덩이다. 그는 이대로 웅덩이에 빠져 죽을 수는 없기 때문에 가출을 한다. 하지만 그는 세상이 검고 끈적한 웅덩이로 가득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동시에 자신에게도 그 웅덩이가 있음을 깨닫는다. 그렇다면 세상은 그저 검고 끈적한 웅덩이일까? 나와 세상은 대체 무엇일까?


폭력이나 충동, 리비도와 같은 단어들로 대치할 수 있겠지만, 웅덩이 이미지는 주인공이 처한 상황에 따라의미를 자유롭게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 가령 웅덩이는 겉으로 보았을 때는 무시무시하지만 막상 안으로 들어가보니 기묘한 포근함을 느끼는 장소가 될 수 있다. 카프카의 오이디푸스적 상황을 대입하자면 빠져나올 수 없는 운명의 늪을 상징할 수도 있다. 너무 이것저것 막 갖다붙이는 게 아닌가 싶지만 분명 웅덩이가 햇살이 될 수는 없기 때문에 나는 이 방법을 사용한다.


작품 안에서 그리는 이미지가 다양하게 변형될수록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작품은 해석의 여지가 많다. <해변의 카프카>도 그렇다. 어떤 이는 이 작품을 열다섯 살 소년의 성장을 다룬 소설로, 어떤 이는 꿈과 현실이 뒤섞인 오이디푸스의 여정을 그린 환상적 소설로 볼 것이다. 나에게는 검고 끈적한 웅덩이의 소설이다. 다르게 표현할 말을 찾기가 힘들다.


이 작품의 뒷부분에서 웅덩이 얘기만 하다가 끝이날지, 여기서 어떤 다른 이미지로의 이행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나중에 무엇이 나오든 책장은 술술 넘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하루키는! 너무! 재밌으니까!!!) 마지막으로 원서 표지를 또 찾아본다. 개인적으로 무척 웃겼다. 이미지화하기 힘든 하루키의 작품 때문에 표지 디자이너가 한숨을 푹푹 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것은 원서 표지.

정말 넣을 것이 고양이밖에 없었니?

소설에 나오는 많은 소재들 중에 고양이가 선택되었다. 고양이로 대체 뭘 말하고 싶은지, 고양이가 뭘하는 중인지 등 도통 이해 안 되는 표지지만 고양이가 귀여우니까 봐준다.

얘 왜 이러는 거야

영문을 알 수 없는 영문판 표지 1. 옛날 버전이라 도저히 큰 사진을 구할 수 없었다. 외계인을 그리고 싶었던 것일까. 너무 심오해서(?) 이 표지도 이해하지 못했다. 거꾸로 보면 보이는 그림인가 싶어서 노트북을 뒤집어도 보았다. (응 아니야.)

초현실주의자의 표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을 떠올리게 하는 영문판 표지 2. 하루키가 무의식의 세계를 다룬 것은 맞지만 이 표지는 왠지 아쉬움이 남는다. 아마 하루키 책 특유의 모호함 때문에 모든 표지 디자이너가 고통받지 않았을까. 표지가 어떻든 어떤 언어로 쓰였든 그 안의 내용물은 모두 훌륭하다. 요즘 같은 서늘한 밤, 창문을 열고 읽기에 딱 맞는 소설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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