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T

일요일의 독서

by 오늘의 혼자

이번 주 출퇴근길 틈틈이 이 책을 읽었다. 누군가가 리뷰에 책을 느리게 읽는 사람도 20분 만에 다 읽을 만한 책이라고 써 놓았지만, 하루키는 한 장 한 장이 소중하니까 20분짜리 책도 2시간으로 아껴가며 읽었다. 그리고 실제로 나에게는 20분 만에 읽을 수 있는 책도 아니었다.


<무라카미T-내가 사랑한 티셔츠>는 일흔 넘은 하루키 할아버지가 쓴 티셔츠 이야기다. 아, 역시 쿨하다. 저번 주 토요일 괜히 신의 계시를 받아(?) 합정 교보문고에 갔다가 '내 책이 잘 있는지만 보고 오리라', 했지만 결국 구입. 아무리 하루키를 좋아해도 그 사람이 입는 티셔츠 이야기까지 읽어야겠어? 하며 애써 외면했던 3개월이 무색하게(5월 출간, 지금은 8월) 책을 손에 들고오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책 표지만 봐도 이상하게 재미있다. 얼굴만 봐도 재미있다는 말이 여기서도 적용되다니. (하루키 당신은 도대체...) 꼭 하루키가 아니더라도, 1~2달러짜리 티셔츠를 하나 둘 모은 어느 노인이 아주 캐주얼하게(이게 중요하다) '티셔츠 얘기나 한 번 써 보실래요?'라는 말을 듣고, 티셔츠를 입은 채로(이것도 중요) 설렁설렁 쓴 티셔츠 이야기는 그 사연을 듣기만 해도 즐겁다.


티셔츠에 대해서 말하는 만큼, 너무 진지해져도 이상하다. 물론 진지해질 수는 있겠지만 아무래도 티셔츠는 가볍게 격식따윈 차리지 않고 입는 옷이니까. 내용도 티셔츠 얘기를 하다가, 술 얘기를 하다가, 술을 먹고 싶다는 얘기를 하다가, 오락가락이다. 현재 집값이 어떻고, 주식이 어떻다는 이야기는 집어치우고 바에 앉아 과자를 집어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그저 즐거우면 된다. 할아버지 인생에 말이야, 이런 일이 있었는데 이야기하고 보니 사실 별거 아니네. 하하, 술이나 마시자. 미소 짓는 하루키가 떠오른다.


너무 가벼운 내용에 실망하는 독자들도 여럿 있는 것 같다. 무려 무라카미 하루키인데, 이게 끝이야? 하는 것이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같은 에세이를 기대한다면 이런 코멘트도 이해가 된다. 편집도 무척 널널하고 200페이지도 안 되는 분량에 티셔츠 사진이 1/3을 차지하다니. 한국 출판사가 페이지 수를 늘려서 책값을 더 받으려고 했던 게 아닐까? 는 사실이 아니었다. 일본에서 나온 원서도 똑같이 192p, 심지어 가격은 한화로 21,000원이 넘는다. 일서 가격은 잘 모르지만, 14,800원에 구매하게 된 것이 감사해진다.


이렇게 번역판이 나오면 책 표지를 비교해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무라카미 하루키.png

꽤 비슷한 표지다. 한국판 표지가 채도도 높고 더 밝다. 옷걸이에 걸린 티셔츠가 휘날리는 듯한 느낌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일본판 띠지 문구가 궁금했지만 아마존 재팬에 나온 설명으로 대체한다. 대충 비슷한 내용이지 않을까. 번역은 파파고가 맡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그냥 모여 버린 티셔츠가 책이 되었습니다!


내가 인생에 있어서 행한 모든 투자 중에서, 그것은 틀림없이 최선의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

-머리말에서


『뽀빠이』연재의 에세이가 1권이 되었습니다!

록 T/레코드계/마라톤 완주 티셔츠/기업자/맥주 관계/노벨티…….무라카미 하루키의 골판지 상자로 쌓아 올린 방대한 T셔츠 콜렉션을 기초로, T셔츠를 둘러싼 18편의 에피소드와 108매의 마음에 드는 T셔츠를 게재.또 무라카미 하루키와 노무라 훈시에 의한 T셔츠에 관련되는 스페셜 인터뷰도 수록.


너무나 정직한 문구라서 웃음이 난다. 이 책은 분명 록 콘서트 티셔츠와 마라톤 완주 티셔츠 등 티셔츠에 대한 에피소드와 사진이 담겨 있다. 하지만 한국판 띠지처럼 맥주, 위스키, 자동차, 슈퍼히어로 이야기도 있다! 이쯤 되면 대체 무슨 책인지 알 수 없을 지경이지만 그래서 재미있다. 이번에는 미국판 표지.

61Coeg4YN2L.jpg 쿨한 <무라카미 T> 영문판 표지

티셔츠의 특징을 한껏 담은 영문판 표지. 이런 것도 좋다. 약간 창의적이기도 하고. 그래도 나는 일본판 표지에 마음이 끌린다. 저의 티셔츠 이야기입니다. 라고 공손하게 말하는 하루키가 더 잘 떠오르는 것 같아서일까.


아무튼 재미있었다. 알라딘 100자 평에 이런 글이 달려 있다. "부담 없이 후루룩 읽히는 글. 하루키의 에세이는 언제나 차밍하다." 코멘트마저 차밍한 하루키의 팬들이 읽기엔 훌륭한 에세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회사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