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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May 31. 2024

도심의 로빈슨 크루소

"그에게 이것은 고독한 삶의 영향으로 그의 정신이 겪고 있는 변화의 중요한 국면을 발견하게 된 기회였다. 주의력의 한계는 점점 깊어지는 동시에 좁아졌다. 이젠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생각하거나 심지어는 골몰한 한 가지 주제에서 다른 주제로 옮겨 가는 일마저 점점 더 어려워졌다. "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섬에 정착한 로빈슨처럼 그는 그에게 필요한 모든 자원이 집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의 집은 도심의 섬이다. 집을 나서자 뜨거운 햇살이 머리 위로 쏟아진다. 현기증의 원인은 햇살 때문만은 아니다. 사거리의 소음과 담배 냄새, 민소매 아래 드러난 문신, 경적 소리가 그를 둘러싸고 빙글빙글 돈다. 밀려드는 파도를 피하듯 그들에게서 비켜선다. 집 밖은 망망한 바다였다. 


로빈슨처럼 그의 주의력은 깊어지는 동시에 좁아진다. 식민지를 개척하는 로빈슨처럼 새로 꾸민 집에서 개선할 거리를 찾아낸다. 바늘 끝처럼 날카로워진 신경 때문에 기르는 고양이에게 가끔 짜증을 부린다. 이른 새벽에 그를 깨우던 고양이가 유리구슬 같은 눈망울로 바라본다. 그 투명한 눈빛에는 늘 그를 부끄럽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고양이는 그의 식민지였다. 결코 정복되지 않을 땅. 그는 다른 섬의 주민들을 초청해 술과 음식을 나눠먹을 계획을 세운다. “타인이란 우리에게 있어서 강력한 주의력 전환 요인이라는 것을 깨달”은 로빈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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