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수정 May 17. 2024

홀로 타는 썸

오십이 다 된 총각이 연애 조언을 구해왔다. 듣다 보니 연애라기보단 썸에 가까웠는데 그나마 혼자 타는 썸 같았다. 그러나 그는 이미 ‘확증편향’에 빠져 상대의 모든 몸짓과 눈빛에 분홍 칠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밸런타인데이에 받은 '매너 초콜릿'을 정표로 여기는 것 같았다. 연애 상담을 해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조언을 해줘도 말을 안 듣는다. 두서없는 말은 한 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전화기 건너편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으리라.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몬드가 든 쬬꼬렛을 주었는데 내 쪼꼬렛에만 마카다미아가 들어 있었다"는 대목에서 말을 끊었다. 입바른 소리를 늘어놓자, 그는 내가 꼰대가 되었을 뿐 아니라 실용적 사랑만 선택하는 속물이라는 취지의 말을 퍼부었다. 네가 그러니까 장가를 못 간다고 그러려다 진짜 꼰대가 된 것 같아서 가만있었다. 남녀문제에 이르면 대개 비슷비슷한 고민들을 한다. 경험이고 연륜이고 짬바고 다 무너진다. 


꼰대 소린 그렇다 쳐도 속물이란 얘기는 좀 억울했다. 한 시간이나 지루한 이야기를 들어주었는데……. 답정남 같으니라고. 연애가 안 풀리는 사람들의 자학 속에는 늘 본인이 세상 순수하고 결벽한 영혼이어서 세속의 사랑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자부심이 숨어있다. 도덕적 우월감 중 제일 귀엽지만, 좀 없어 보인다. 많은 사람이 '지독한 사랑'에 면역력이 없다. 플러팅이나 추파, 적당히 로맨틱한 관계는 익숙하고 편안하다. 그의 사랑에는 실망도 상처도 없다. 아이돌을 향한 삼촌 팬들의 사랑처럼. 모든 유사 연애는 달콤하고 행복하고 무해한 헛것이다.      


이전 04화 인디안 섬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