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이 다 된 총각이 연애 조언을 구해왔다. 듣다 보니 연애라기보단 썸에 가까웠는데 그나마 혼자 타는 썸 같았다. 그러나 그는 이미 ‘확증편향’에 빠져 상대의 모든 몸짓과 눈빛에 분홍 칠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밸런타인데이에 받은 '매너 초콜릿'을 정표로 여기는 것 같았다. 연애 상담을 해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조언을 해줘도 말을 안 듣는다. 두서없는 말은 한 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전화기 건너편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으리라.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몬드가 든 쬬꼬렛을 주었는데 내 쪼꼬렛에만 마카다미아가 들어 있었다"는 대목에서 말을 끊었다. 입바른 소리를 늘어놓자, 그는 내가 꼰대가 되었을 뿐 아니라 실용적 사랑만 선택하는 속물이라는 취지의 말을 퍼부었다. 네가 그러니까 장가를 못 간다고 그러려다 진짜 꼰대가 된 것 같아서 가만있었다. 남녀문제에 이르면 대개 비슷비슷한 고민들을 한다. 경험이고 연륜이고 짬바고 다 무너진다.
꼰대 소린 그렇다 쳐도 속물이란 얘기는 좀 억울했다. 한 시간이나 지루한 이야기를 들어주었는데……. 답정남 같으니라고. 연애가 안 풀리는 사람들의 자학 속에는 늘 본인이 세상 순수하고 결벽한 영혼이어서 세속의 사랑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자부심이 숨어있다. 도덕적 우월감 중 제일 귀엽지만, 좀 없어 보인다. 많은 사람이 '지독한 사랑'에 면역력이 없다. 플러팅이나 추파, 적당히 로맨틱한 관계는 익숙하고 편안하다. 그의 사랑에는 실망도 상처도 없다. 아이돌을 향한 삼촌 팬들의 사랑처럼. 모든 유사 연애는 달콤하고 행복하고 무해한 헛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