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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May 03. 2024

중독된 사람들


그가 술을 끊은 지 백일하고도 이틀이 지났다. 중독에서 빠져나온 모든 사람은 선 위에서 살아간다. 그들의 평온은 위태롭고 인내는 기만적이다. 모든 중독자는 평생 중독자로 살아간다. 그저 버티고 또 버틸 뿐이다. 그는 알고 있다. 한 번 선을 넘는 순간 전생에 꾸었던 악몽처럼 아득하던 과거가 현실이 된다는 사실을. 지독한 고통은 늘 그를 상쇄할 쾌락을 동반한다.


"나는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다. 유혹을 제외하고는."

오스카 와일드가 말한 유혹이란 피처럼 검붉은 와인이고, 유리잔이 부딪히는 청량한 소리이며, 술자리에서 오고 가는 웃음소리다.  늘 깨어있는 일은 늘 취해있기와 마찬가지로 미친 짓이다. 그는 도파민에 취약한 그의 회색 세포를 저주했다. 중독의 근저에는 회피하는 마음이 있다. 진실과 공허함을, 생 자체를 외면하려는 약하고 지친 마음이 있다. 곰과 웅녀의 시간을 견디면 웬만한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술에 취해 안았던 여자들의 얼굴은 흐릿해져 갔지만, 그들이 쓰던 향수 냄새와 웃음소리는 또렷했다. 술꾼들의 허세와 허랑방탕에 지쳤을 때, 그는 혼자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홀로 가진 술자리를 찾은 첫 손님은 슬픔과 고독이었다. 그는 잠시 방문객들과 어울렸다. 슬픔과 고독은 울적하지만 낭만적인 술친구였다. 자기 연민이라는 추한 손님이 찾아왔을 때, 그는 집에 남은 위스키와 와인, 맥주를 하수구에 흘려보냈다.


너무 사랑했다는 이유로 그가 잃었던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렸다.  

적당히 사랑할 수만 있다면.

중용의 도를 갖추지 못한 이들은 늘 가장 사랑하는 대상을 떠나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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