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소설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매체다. 두 장르 다 허구적 서사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같다. 소설이 언어 외의 수단으로는 접근하지 못할 인간의 복잡하고 내밀한 이야기에 관해 다룬다면, 영화는 소설이 제공하지 못하는 내용을 시청각적으로 구현한다. 소설과 영화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 영화 제작에는 소설 출간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이 든다. 영화는 다른 어느 분야보다도 자본 집약적인 장르다. 중견 소설가 찰스 부코스키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영화 작업에 뛰어든다. 이 책은 할리우드 시스템에 대한 부코스키의 경멸과 조소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영화인들에 관한 관찰기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산업으로서의 영화와 예술로서의 영화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영화인들에 대한 애정을 담은 소설이다.
소설은 영화감독 종 팽쇼가 헨리 치나스키(저자 찰스 부코스키의 분신이자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에게 시나리오를 의뢰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언어를 다루는 일이라면 무엇이건 자신 있는 그로서도 첫 시나리오 작업이 만만하지만은 않다. 시나리오가 완성되기도 전에 그는 할부로 검은색 BMW와 집을 구매한다. ‘아시겠지만 여기 미국에서는 돈을 쓰지 않으면 빼앗기지요.’라는 세무사의 조언 때문이다. 첫 발걸음부터 개운치 않다. 치나스키 부부가 보러 간 부동산이 하필 찰스 맨슨이 사람을 죽인 집 중 하나였을 줄이야. 치나스키는 ‘진정으로 원하지도 않는 집’을 찾고 ‘진정으로 쓰고 싶지도 않은 시나리오를 쓸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나 이제 되돌릴 수 없는 일이다.
“너는 늘 자기가 늘 싫어했던 존재가 되어버리는 거야? 그때 대답이 왔다. 망할, 어쨌든 진짜 돈은 갖고 있지도 않잖아” -본문 62쪽
시나리오를 집필하는 치나스키에게 공포가 엄습한다. ‘그들처럼 되어버리는 공포’다. ‘그들’이란 제도권 안에서 ‘팔리는’ 시나리오를 ‘찍어내는’ 작가들이다. ‘그들’이란 세상과 불화하기를 잊어버린 모든 예술가다. 그러나 치나스키는 여전히 낙관적이다. 내심으로는 자신이 그럴 운명에 처하리라 믿지 않는다. 치나스키가 누구인가. 끔찍한 어린 시절을 겪으며 부조리한 현실에 눈떴다. 술집에서 일어난 싸움에 휩쓸리며 맷집을 키웠다. 일용직 노역자 생활과 우체국 시절을 거친 뒤, 하고 싶은 말은 다 하며 문학계의 아웃사이더로 자리 잡은 작가다. 그 과정에서 굳은 심지와 깊은 내공을 얻었다.
소설은 치나스키가 얼떨결에 영화산업의 한 구성원이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영화산업에는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자본을 끌어오는 업무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시나리오가 완성된 이후에도 영화 제작은 엎어졌다 일어서기를 반복한다. 치나스키로서는 낯선 일이다. 지금까지는 모차르트의 음악 한 소절과 술 한잔, 타자기만 있으면 뚝딱 소설을 완성하지 않았던가.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종 팽쇼의 종횡무진은 실소를 불러일으킨다. 스폰서가 되어줄 러시아 노파와 역겨움을 무릅쓰고 키스했지만, 그 노파는 돈이 없는 노인으로 밝혀졌다. 치나스키는 이제껏 들어본 이야기 중에 ‘가장 슬프게 좆같은 이야기’라며 그를 위로한다. 제작이 취소될 위기에 처하자 종 팽쇼는 전기톱을 들고 자신의 손가락을 절단하겠다고 제작진을 위협한다. 종 팽쇼의 영화 제작에 대한 의지는 이처럼 굳건하다. 치나스키는 그런 그에게 깊은 연민을 느낀다. 마침내 영화는 조금씩 완성의 단계로 넘어선다. 영화 제작이 끝나고 시사회, 뒤풀이 파티가 이어진다. 이런 잔치에 끌려다니며 치나스키가 원래 지니고 있던 인간에 대한 혐오는 극에 달한다.
“기쁨이란 없었다. 그들은 생존자, 경쟁자, 사기꾼, 싸구려였다. 이 길 잃은 영혼들은 수다를 떨었고, 공기는 덥디덥고 더웠다.” -본문 321쪽
그러나 치나스키에게도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토대로 만들어진 영화 ‘짐 빔의 춤’에 대한 애정은 있다. 그는 그 영화가 ‘평균적인 영화들’보다 낫고 ‘올해 아카데미상을 받은 영화가 잊히고 한참 후에도’ 자신의 영화가 가끔 예술 영화관에서 상영되고 가끔 텔레비전에 나오리라고 예언한다. 그리고 그의 말은 현실이 되었다. 소설 속 ‘짐 빔의 춤’은 바르베 슈뢰더가 감독하고 미키 루크가 주연을 맡은 ‘술고래(1987)’라는 영화다. ‘술고래’는 여전히 관객의 관심을 잡아 끄는 영화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65세에 인생은 시작된다며 호언장담한 치나스키였다. 정작 영화에 자신의 젊은 시절을 맡은 배우가 등장하는 장면이 나오자 그는 가슴이 아려온다. ‘청춘, 이 개 같은 새끼, 어디로 가버렸나?’ 하지만 술과 경마, 여자들로 점철된 인생을 그는 후회하지 않는다. 글쓰기는 그에게 구원과도 같았다.
“라디오의 클래식 음악 채널에 주파수를 맞추고, 담배나 시가에 불을 붙이고, 술병을 딴다. 나머지는 타자기가 알아서 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는 그 자리에 있는 것 뿐이었다. 이 모든 과정이 있었으므로 삶이 내게 주는 게 없을 때에도, 삶이 그 자체로 괴기 쇼일 때도 나는 이어나갈 수 있었다. 언제나 나를 위로해 주고, 내게 말을 걸어 주고, 즐겁게 해주고, 정신 병원에 처박히거나 길거리에 나앉거나 나 자신 때문에 망하지 않도록 구해준 타자기가 있었다.”
-본문 122쪽
글쓰기가 구원이라면 술은 창작의 불쏘시개다. 찰스 부코스키의 소설에는 언제나 술에 관한 에피소드가 빠지지 않는다. 저자는 ‘사람들 옆에서는 행복하지 않고, 술을 웬만큼 마신 후에는 사람들이 사라지는 것’처럼 느끼기 때문이다. 경마는 글을 쓰지 않는 시간을 메꾸는 좋은 방편이었다. 여성 역시 부코스키의 생에서 빠질 수 없다. 사람들은 그를 마초이스트로 규정했지만, 그는 여성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그들에게 배울 줄 알았던 남성이다. 영화 ‘플라이’에 등장하는 제인은 실존 인물로서 그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다. 부코스키는 몇 가지 ‘스타일’을 제인에게서 배웠다고 밝혔다.
저자는 1989년 뉴욕타임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할리우드를 ‘검고 극악무도한 곳’이라 지칭했다. 이러한 표현은 자본주의의 논리가 가장 극대화된 할리우드 시스템에 대한 저자의 염오를 드러낸다. 그럼에도 저자는 영화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다. 그들은 한정된 예산 속에서 작가 정신을 구현하려고 애쓴다. 때로 타협하지만, 저항할 때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다.
소설은 부코스키 특유의 유머 감각과 뻔뻔한 태도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소설 서문에 저자는 ‘이 작품이 허구이며 등장인물과 생존, 혹은 사망한 실존 인물과의 유사점이 있다고 해도 순전히 우연’이라고 밝힌다. 그러나 영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가 어떤 실존 인물을 모델로 했는지 알 수 있다. 저자는 심지어 그들 이름의 철자를 크게 바꾸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톰 펠과 라모나는 숀 펜과 마돈나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베너 체어고크(베르너 헤어조크), 종뤼크 모다르(장 뤼크 고다르) 역시 마찬가지다.
할리우드의 화려한 불빛 아래 누군가는 꿈을 이루고, 누군가는 절망에 사로잡힌다. 헨리 치나스키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채, 그곳을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다. 걸쭉한 입심과 특유의 냉소가 흐르는 페이지마다 술 냄새가 배어든 것 같다.
“내 앞에 훌륭한 술꾼이 몇 명 있긴 했다. 유진 오닐, 포크너, 헤밍웨이, 잭 런던, 술 때문에 그들의 타자기는 술술 쳐졌고, 그들은 불꽃을 얻고 도박도 할 수 있었다.”-본문 339쪽
찰스 부코스키의 소설을 읽는다는 핑계로 술잔에 와인을 따랐다.
찰스 부코스키는 1920년 독일 안더나흐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미국으로 건너가 로스앤젤레스에서 성장했다. 대학을 중퇴하고 첫 단편을 발표한다. 그 이후 오랜 기간 노동자로서 창고와 공장에서 일했다. 우연히 우체국에 취업해 사무직으로 12년간 일했다. 평생 매달 100달러를 주겠다는 출판사의 조건으로 전업 작가가 된 에피소드는 유명하다. 1971년 ‘우체국’을, 1975년 ‘팩토텀’을 발표했다. 1978년 출간된 ‘여자들’은 전업 작가로 자리매김한 50대의 일상을 다룬다. 1982년 유년기의 추억을 담은 ‘호밀빵 햄 샌드위치’를 발표했다. 소설 ‘할리우드’는 영화 ‘술고래(1987)’의 시나리오 작업 경험을 다룬 소설이다. 1994년 마지막 소설 ‘펄프’를 완성했다. 같은 해 3월 백혈병으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