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어카에 쌓인 삶의 무게

삶이란

by 일기일회

20년을 항상 같은 시간대 같은 거리로 움직이면서도

아침 출근시간대는 늘 대란의 연속이다.

내 몸은 하나인데 두ㆍ세사람 몫을 해내야 하는

집에서 아침 일과가 그렇고 어제 미쳐 마무리하지 못하고 쌓아둔 업무 때문에 출근하자마자 상사한테 듣게 될 호통이 스트레스로 밀려드는 것이 그렇다.

설상가상 간발의 차이로 초록 신호등이 빨간 신호등으로 바뀌어 버렸으니 지각은 불 보듯 뻔한 아침이다.


몇 가지 생각으로 엉켜버린 머릿속을 정리하고자 시선을 조금 먼 곳으로 향하던 중 반대편 신호등 앞에서

허리가 몹시 굽은 백발의 할머니를 보았다

옷감의 색이 허옇게 바래진 오버핏 잠바는 앙상한 할머니의 체구를 뒤덮어 버렸다

굽은 허리, 할머니를 집어삼킬듯한 헤어진 오버핏 잠바 뒤로 파지가 한가득 실린 리어카를 힘겹게 끌고 가시고 있다

마치 리어카에 실린 파지의 양은 날이 채 밝지도 않았을 시간에서 날이 밝아 온 시간까지 모두 주워 담아낸 삶의 부피 같았다


저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난날 나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의 삶을 보면서

나라면 죽고 말지 저렇게는 안 산다고 호언장담하며

쉽게 생각하던 시기가 있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숱한 타인의 삶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답답해 죽겠다고

도대체 넌 왜 변하지 않느냐고

애면글면 속을 태우며 훈수를 두었던 적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빨간색 신호등이 초록색 신호등으로 바뀌고

다시 빨간색 신호등으로 바뀔 때까지

등이 굽은 할머니는 횡단보도를 반도 건너질 못하셨다

차 안에 있는 사람들은 신경질적으로 경적을 울려대고

그것도 모자라 창문을 내려 소리를 질러대는 사람도 있었다

당황한 할머니는 연신 미안하다고 굽어진 허리를

더 굽혀 숙이셨다

그사이 바뀐 초록색 신호등을 보시고선 한발 한발 내딛으시며 결국엔 할머니가 가고자 했던 길로 리어카를 끌고 사라지셨다


내 시야로 사라지는 등이 굽은 헤어진 오버핏 잠바를 입은 할머니를 보면서 예전에 타인의 삶을 함부로 예단하던 나는 사라지고 삶이란 그리 녹녹하진 않지만 또 그렇게 못살아낼 것도 없는 게 아닌가 하는 배짱 가득한 나와 마주하게 되었다

할머니처럼 아무리 무거운 삶의 십자가를 등에 메고 짊어지더라도 한발 한발 내디뎌 걷다 보면 살아지는 게 삶일지도 모른다

고비고비 넘다 보면 미웠던 이가 안쓰러워지고

좋았던 이가 싫어지기도 하고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울부짖던 일들과 용감하게 마주한 나를 만나게 되는 게 삶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을 함부로 정확한 센티를 그어 재단하진 말자

부족하면 부족한 만큼 채워서 살고

넘치면 넘치는 만큼 덜어내서 살고

내 길이 아닌 것 같으면 다시 돌아서 가고

나와 함께 가려는 이와 동행하고

나와 떨어져 가길 원하는 이에겐

그동안 감사했다고 내가 먼저 인사하며 보내주자


삶이란

내가 살아낸 발자국과

타인이 살아낸 발자국을 돌아보면서

앞으로 살아내야 할 삶의 발자국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 발자국들이 모여 왜 자신과 타인을 사랑해야 하는지

왜 자신과 타인을 보듬어야 하는지

서로가 서로에게 응원하며 함께 나아가야 하는지 깨달아 가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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