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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비아 선생 Nov 28. 2022

식비 일 일 일 만 원 여행자

진주살이를 마치고 - 동인지 <작업>에서 

        식비 일 일 일 만 원 여행자


                                                                       이 석 례



 8월 1일부터 20박 21일 진주 살이를 했다. 제목은 ‘여:기 쉼표, 행:복 찾아 진주여행’이다. 경상남도와 진주시 공동으로 하는 여행 프로그램에 선정되어 숙박비 일부를 지원 받았다. 내 집이 있건만 왜 집 나와 이 짓을 하는지 내 스스로도 가끔 의아할 때가 있다. 역마살인생이라 그런지 방랑생활에 맛 들린 것인지 기회만 생기면 배낭을 둘러메고 나선다.

 집 나오면 불편하고 특히 이번에는, 밥을 해 먹을 수 있는 펜션도 아니고 계속 조식 없는, 비지니스 호텔에서만 있었다. 이걸 내가 자발적으로 선택하고 있으니......,아마 나이 듦에 대한 강박이고 발악인 것 같다. 하루하루는 가고 몸은 시간 따라 늙는 일만 남았을 테니 지금이 제일 젊은 것은 불변의 진리다. 

 익히 알고 있는 우리나라지만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집 나와 돌아다니면, 이것저것 새롭게 다가와 아드레날린이 솔솔 솟는다. 특히 이번에는 ‘하루 식비 1만원 생활자’로 나를 결박했다. 하루 세끼를 사 먹어야하는 판에, 또 물가가 장난이 아닌 고물가인 지금, 안 먹으면 기운이 빠지고 먹는 걸 좋아하는 내가, 조금은 어처구니없는, 실행이 안 될 웃기는 약속을 혼자 하고 애들에게 전화로 선포를 했다. 이건 또 무슨 망령인지 실언인지 허세떨이인지. 애들은 예상외였다. 

 “그렇게 하세요.”

 이건 아닌데 하다가도 ‘그래 이 참에 살 빼보자’ 

 처음에는 호기롭게 출발했다. 비상식량으로 지참해 온 꿀과 콩가루를 우유에 타서 먹고 밥이 먹고 싶을 때, 한번은 편의점에 가서 도시락을 샀다. 4,800원에 밥, 전, 불고기, 김치 등이 있지만 차가워서 맛이 없다. 지불한 가격에 비해 너무 큰 기대를 했다가 실망했다. 

 어느 날 호텔 가까이 있는 대형마트에 갔다. 코로나 사태가 잠잠해서 그런지 시식 코너가 두 개있다. 그 곳에서 눈치껏 급한 허기를 조금 누그러뜨렸다. 아 그런데 정말 우리나라 좋은 나라다. 매장 한쪽에 즉석에서 먹을거리를 사서 맛있게 먹도록 전자렌지, 에어프라이기가 있다. 치킨, 튀김, 구이, 요리 등 갖가지 식사가 가능하다. 또 큰 식탁들이 여러 개 있고 일회용 수저도 있다. 집 나와 에어컨이 빵빵하게 돌아가는 시원한 마트에서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나라가 흔치않을 것 같다. 애국심이 불쑥 솟구쳤다. 혼자 속삭였다. ‘이민은 무슨 이민, 미국이 뭐 선진국이라고? 어림없지’

 김밥, 초밥, 회 등은 할인도 했다. 그런데 1만원으로는 살게 별로 없다. 서성거리며 망설이며 갈등하다 그냥 나왔다. 대신 계란 20개 한 포장과 바나나, 청포묵, 토마토 그리고 즉석밥 10개 한 포장을 샀다. 호텔로 오면서 어떻게 해 먹을까 궁리를 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고 방법은 있다. 방안에 있는 단 하나의 요리기구 커피포트를 잘 활용하면 된다. 햇반을 뜯어, 비상용으로 가지고 있는 반찬통에 덜어 넣고 끓는 물을 부었다. 뚜껑을 닫아놓고 몇 분을 기다리면 그런대로 올올이 딱딱한 밥알이 퍼진다. 반찬이야 마트 매장에 가면 입맛대로 있다. 세상 좋아서 이젠 집집에 부엌, 주방 이런 것들이 다 뜯겨나갈지도 모른다. 내가 처량한 것이 아니라 앞선 세태를 살아보는 자부심이 생겼다. 

 계란도 기가 막히게 삶았다. 커피포트를 약간 눕혀서 날계란을 하나하나 밀어 넣은 후 포트를 세우고 물을 부었다. 스위치를 누르면 물이 끓고 딱 꺼지면 다시 한 번 더 눌렀다가 딱 꺼진 후 나중에 쏟아내니 완벽하게 삶은 계란이 됐다. 요리할 수 없는 호텔방에서 주문음식이 아니라도 챙겨먹을 수 있는 것을 찾아보면 많다. 어느 날 밤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오늘 식사 어떻게 했어요? 또 마트 가서 시식코너 눈치 봤어요? 혹시 무료급식소 앞에 줄 서신 건 아니죠? 그러시면 절대 안 됩니다. 그런 엄마 모습 텔레비전 뉴스에 나오면 자식들 개망신입니다. 요즘 경기 나쁘다는 뉴스가 자주 나오거든요”

 “오호, 무료급식소가 있었구나!”

 이튿날 커피와 케익 쿠폰이, 미국에 있는 딸에게서는 치킨쿠폰이 날아왔다. 참 좋은 세상이다. 이러니 어찌 집에만 있을 수 있겠는가. 다리 안 아프고 걸을 수 있을 때까지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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