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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비아 선생 Sep 05. 2023

미술관에서의 반나절  

-풍경에 담긴 인간 내면을 읽다-

미술관에서의 반나절

                 -풍경에 담긴 인간 내면을 읽다-



                                                            이석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해외소장품 걸작전’으로 열리는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를 보러갔다. 꼭 보고 싶은 전시회였는데 미루고 미루다 전시마지막 날 오후에 갔다. ‘경성재판소, 대법원청사 그리고 지금은 미술관’, 이렇게 하나의 건물이 거쳐 온 이력을 생각하며 정원에 있는 조각들을 감상했다. ‘장미빛 인생’ 앞에서는 제목 때문에 코웃음이 지어졌고 세 사람이 몸을 공처럼 말고 앉아서 두 손을 모아 씨앗을 심는 것 같은 검은 조각상 앞에서는 코끝이 찡했다. 그 곁에서 한 아이는 매미채를 들고 곤충을 잡으려 집중하고 있다. 내가 서 있는 몇 분간의 풍경이 보여주는 묘한 대조가 우리 삶의 한 단면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순간 ‘미술관에 왔다고 내가 너무 감상적인 것 아니야?’ 하며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전날 인터넷으로 입장시간을 예약했지만 일찍 왔기 때문에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1시간 넘게 기다렸다. 혼자 하는 생활에 익숙하다. 뭐 좀 심심하고 외롭고 우울해질 때도 있지만 생각을 바꾸면 자유롭고 편하고 홀가분하다. 정해진 시간이 돼서야 입장을 시켜줬다. 신분증을 맡기고 도슨트오디오를 받아 귀에 걸고 직원이 채워주는 종이팔지를 차고 먼저 2층으로 올라갔다. 다음 3층 그리고 1층의 순서로 관람을 했다. 사진 촬영은 1층에서만 가능했다.

 관람객이 많았지만 한 방향으로 천천히 이동하며 감상하기 때문에 불편함은 없었다. 뉴욕 휘트니미술관에서 온 세계적인 그림을, 우리말로 설명을 들으며 감상하니 아주 편하고 감동적이며 세세한 것까지 알게 되어 신이났다. 뒷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해 가며, 안경까지 쓰고 한 작품 한 작품 구석구석까지 살폈다. 누가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미술학자라도 되는 줄로 알 것 같았다. 

 2014년 백악관에서 휘트니미술관으로부터 빌려 간 에드워드 호퍼(1882~1967)의 그림을 오바마 대통령이 집무실에서 즐겨 감상했다는 ‘벌리 콥의 집, 사우스 트루로’ 앞에서 나도 오바마처럼 팔짱을 끼고 그림감상에 빠졌다. 한적한 전원과 초록과 노랑이 섞인 나지막한 산과 언덕 그리고 붉은 집, 헛간. 그러나 이 공간의 주인은 빛과 햇볕이다. 그리고 그 속에 들어있는 화가의 마음. 호퍼 부부는 여행 중 메사추세츠주 케이프코드에 있는 시골 마을 트루로에서 그곳 우체국장 벌리 콥의 집을 빌려 작업실 겸 여름별장으로 사용했다.

 “예술에서 ‘삶’이란 단어를 경시해서는 안 된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목적은 자연으로부터 받은 내밀한 인상을 최대한 정확히 옮기기 위함이다.”

 호퍼의 이 말을 마음에 새기면서 호퍼의 삶의 여정과 ‘풍경 너머 내면의 자화상’이 표현된 그림, 길 위에서를 따라 관람했다. 화가의 허드슨 강 인근의 나이액 고향집 <계단>, 파리의 카페 <푸른 저녁>, <걷고 있는 파리지앵 여인>들과, <맨해튼 다리>, 뉴잉글랜드 지역의 여러 그림들 그리고 호퍼의 기억과 상상력이 연결된 이미지가 표현된 작품들을 보면서 그림 속으로 빠져들었다. 호퍼는 유럽, 남미, 미국 전역을 여행하면서 자연, 도시, 일상의 풍경을 자신만의 관점과 구도로 묘사했다. 1960년 작 <이층에 내리는 햇빛> 앞에서 제일 오래 서 있었다. 가슴이 풍만한 금발의 젊은 여자와 의자에 앉아 책을 들고 있는 노인의 모습이 옷, 자세, 위치, 표정 등 참 대조적이면서 쓸쓸함과 당당함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나와 손녀의 모습을 대비시켜 보기도 했다. 다른 그림들 앞에서도 발을 떼지 못해 사람들이 나를 지나쳐 갔다.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시선을 주고받지 않는다. 자기 자신에 충실하다. 그래서 외로워 보이기도 또 고독감이 묻어나기도 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궁금하기도 하다. 1924년에 결혼한 조세핀 니비슨 호퍼(1883~1968)의 내조가 없었다면 ‘호퍼의 그림과 삶의 여정이 이렇게 잘 정리돼 남겨지지 못했을 수도 있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뉴욕예술학교에서 함께 공부한 부부는 그림뿐만 아니라 문학, 영화, 연극, 여행 등에 대한 애정과 취향을 공유하고 예술적 영감을 교류하면서 평생을 함께 했다.

 마지막 1층에서는 영화관처럼 ‘호퍼: 아메리칸 러브스토리’를 상영해 주었는데 피곤해진 나는 맨 앞으로 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두 다리를 쭉 뻗고 봤다. 이 시간을 통해 조세핀의 내조의 힘, 부부의 일상 모습, 성격 등 여러 가지를 알게 되었다. 또 호퍼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호퍼의 몇 몇 그림들이 신세계의 쓱(SSG) 광고에 미장센 역할로 활용되었다고 해서 일부러 찾아보고 무릎을 쳤다. 시공간을 초월해 다양한 분야에 영감을 주고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화가, 그의 그림들 그리고 조세핀. 이제 나는 그림 앞에서 에너지를 다 쏟았고 뱃가죽이 등에 붙었고 헛것이 보이는 듯했다. 그래도 호퍼의 1961년 작 <햇빛 속의 여인>, 78세의 조세핀이 손가락에 담배를 끼고 전라(全裸)로 서있는 그림 그대로 만든 세트장에 들어가 조세핀이 되어 사진을 찍었다. 아주 고독하고 외롭고 처연한 척.   2023.8.20.



*동인들의 합평 의견 

-제목은 하나만 택하면 어떨까

-앞 부분이 좀 길지 않나

-작가의 내면을 좀 더 표현했으면 어떨까

-마지막 행을 한 번 더 숙고하여, 더 멋지게!

등 의견도 있었네요.

퇴고해서 좋은 글로 다듬어주시길!  2023.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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