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다행

‘66오9117’과 작별

by 실비아 선생

천만다행

‘66오9117’과 헤어졌다. SM5는 찌그러지고 긁히고 부서진 처참한 모습으로 끌려갔다. 그 모습에서, 물성이 아닌 충직한 동반자로 나와 함께 한 시간의 고마움과 즐거움이 슬픔이 되어 놀란 가슴에 뒤엉켰다. 마지막이 너무 처참해 미안하고 아프다. 지금까지 7만km 정도 달렸는데 그 중 절반 가까이를, 묵호에서 진도까지, 또 충청도, 경상도 전국 곳곳을 나와 누볐다. 강제로 당한, 아직은 이른 이별이라 손을 흔들고 싶지 않았다. 그는 곧 분해되어 폐차장에서 사라진다. 한낱 쇠 조각과 플라스틱과 고무 부스러기로, 지난날의 속력과 품위를 잃고 말 것이다. 얼마 전 배터리와 바퀴 네 개를 모두 교체해 튼튼하다. 안전진단도 삼일 전에 통과했는데......,

수원에서 가득 주유하고 출발해 용인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 절대 무리하지 않고 집중해서 운전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나는 운전경력 30년이 넘는 동안 사고가 거의 없었다. 그날 목적지는 청주성모병원이었는데 내비게이션 안내를 따라 처음 가보는 포천세종간고속도로를 달렸다. 120km가 제한 속도였다가 나들목 근처에서는 60km까지 줄어들기도 했다. 큰 폭의 제한 속도와 처음 달려보는 고속도로라 긴장이 돼 평소보다 좀 더 안정적으로 운전을 했다. 동승자로 옆 좌석에는 딸이 앉았다. 날씨도 화창하고 차들도 많지 않아 2차선으로 제한에 맞는 속도로 달리며 기분 좋은 드라이브를 즐겼다.

그러나 11시 22분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그 순간을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꽝” 소리도 듣지 못했고 부딪힌 감각도 없다. 달리는 내 차를 뒤에서 덤프트럭이 추돌해 분명 큰 소리가 났을 것이고 크게 흔들렸을 것이다. 그러나 사고 순간 몇 초 후부터 나는 인지한다. 직진하던 9117이 90도 넘게 돌아 역주행 상태로 운전석 쪽을 트럭이 밀고 갔다. 차 앞창이 트럭에 완전히 다 가려져 온몸이 떨리며 무서웠다. 왼발로 사이드브레이크를 밀고 두 손으로 운전대를 꽉 부여잡으며 온 몸을 다해 저항했지만 불가항력이다.

“어! 어! 어떻게!”

“살려줘! 살려줘! 어떡해! 어떡해!”

공포가 온몸을 감쌌다. 이렇게 죽는 건가? 딸을 어쩌지? ‘아 교통사고로 죽는 게 이런 거구나!’ 기절할 것 같았다. 그 순간 몇 분 몇 초가 너무 길게 느껴졌다. 추돌의 범인인 덤프트럭도, 그 괴물에게 박치기를 당해 꼼짝 없이 끌려가던 내차도 드디어 멈췄다. 고약한 냄새가 퍼졌다. 언제 내렸는지 딸이 소리 질렀다.

“엄마, 빨리 내려, 빨리 빨리”

운전석문에 트럭이 붙어있어 몸을 구부려 조수석문으로 기어 나왔다. 부들부들 떨려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심장이 요동치고 머릿속에 불붙은 폭탄이 들어있는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차도 나도 폭발 할 것 같았다. 딸과 허우적허우적 뛰었다. 중앙분리대 넘어 상행선에는 차들이 달렸고 하행선은 우리가 막아버렸다. 뒤를 바라보니 여러 대의 차들이 줄지어 서있다. 이런 현장의 주인공이 나라니!

딸의 안경이 부러지고 내 옷에는 커피가 솟아져 얼룩이 졌다. 부들부들 사시나무처럼 떨릴 뿐 어디를 다쳤는지 어디가 아픈지 모르겠다. 제일 먼저 견인차가 달려왔다. 어떻게 알고 왔는지 젊은 기사는 우리에게 더 멀리 떨어지라고 소리를 지르며 현장 정리정돈을 척척했다. 처음 당해본 교통사고라 ‘무엇을 어찌해야할지’ 떨기만 했다. 가해자인 트럭기사도 혼이 빠졌는지 우왕좌왕하며 계속 전화질만 했다. 곧 119 구급차가 와 우리를 태워 주려했지만, 안성에 있는 병원까지만 호송이 된다고 해서 거절했다. 또 고속도로경찰순찰대도 왔지만 ‘내가 백 프로 잘못했습니다.’란 트럭기사의 말을 듣고 사건 접수도 안하고 가버렸다. 분통이 터졌지만 어쨌든 우리는 살았고 9117은 무죄다.

그 날 딸과 나는 병원에 입원을 했다. 나는 4주, 딸은 2주 진단을 받았다. 사고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기적이다. 천만다행이다. 신이 살렸다. 조상이 돌봤다.’, ‘앞으로 좋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겠다. 항상 감사한 마음을 지녀야 한다.’ 등등. 정말 살았음은 축복이다. 그러나 병원생활은 감옥과 같았다. 몸이 감옥이고 환자복이 감옥이고 상처가 감옥이고 시간이 감옥이고 나중에는 감옥이 옛 친구 이름 같아졌다. 감옥아, 감옥아. 주사약이 걸리지 않고 주렁주렁 걸렸던 줄이 걷혔어도 나는 빈 폴대를 끌고 병원 복도를 걸었다. 그래도 살았음에 감사한다. 2025.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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