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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비아 선생 Jun 15. 2020

국내 여행 - 통영 살이 둘 째 날

욕지도에서 이중섭을 만나다

                    

 ‘섬이 혼자라서 외롭다’라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섬들이 있다. 이웃 섬들과 보도교로 연결되어 있어서 바다 위를 걸어 쉽게 오고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욕지도를 탐방하는 날이다. 우리 팀은 우도에서 보도교를 통해 반화도를 지나 다시 연화도까지 갔다. 30분 정도, 새소리에 맞춰 헐렁헐렁 산책하듯 걸었다. 숲 터널을 지나고 이슬 맺힌 꽃들의 아침 인사를 받으며 발 아래 짙은 코발트빛 바다를 내려다보는 묘미를 즐겼다.


                               외롭지 않은 섬


 연화도에서 여객선을 타고 욕지도에 도착해 우리를 위해 수고해 주러나온 김**님을 만났다. 김샘은 섬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는데 욕지도에 대한 설명을 잘 해주셨다. 우리는 김샘을 따라 천천히, 선착장에서 우측 해안길을 걸으면서 욕지도의 지난날의 모습을 더듬어갔다. 메밀잣밤나무 100여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는 산기슭 바로 옆에서 이중섭(1916~1956)을 만난 것은 이번 여행 중 하이라이트다.  

 1953년 봄, 이중섭이 통영나전칠기전문학교 강사로 있을 때 당시 학생이었던 욕지도 출신 이성운을 따라 욕지도에 와서 2박 3일을 머물렀다. 그 때 이중섭이 바다를 바라보면서 그린 그림이 지금 남아 있는 ‘욕지도 풍경’이다.

 인쇄된 ‘욕지도 풍경’을 보면서 김샘 설명으로 당시의 모습을 마음에 그려봤다. 일본인 도미우라의 집이었던 기와집 지붕과 그 옆에 연기를 피워올리는 노란 초가지붕의 대장간, 그 앞에 펼쳐진 파란 바다 그리고 억척스런 팔뚝으로 뭔가를 이고 가는 여인이, 앞에 있는 큰 나무 가지 사이로 펼쳐져 있다. 이 풍경이 바로 이중섭의 손끝에서 그림으로 태어났다.  

                                 이중섭과 욕지도 


 우리는 이중섭이 그림을 그렸던 곳으로 칡넝쿨을 헤치고 올라갔다. 도로에서 몇 걸음 안 되는 산기슭이다. 이중섭의 생애와 그의 그림들을 생각하며 그가 앉아서 그림을 그렸던 자리에 앉아봤다. 현장에 와서 체험하는 예술 감상은 작가와 간접적으로나마 만나는 것 같아 특별한  느낌이 들었다. 욕지도에도 오고했던 통영에서의 2년여(1952년 봄부터 1954년 봄까지) 동안이 이중섭 미술활동의 르네상스였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지금 풍경은 당시와는 많이 달라졌지만 바다는 무심하게도 그 때처럼 푸르고 하늘은 더없이 맑았다. 

 조금 더 걸어가면 ‘근대 어촌 발상지 좌부랑개’가 있는데 그곳에 ‘고등어 간독’이 있다. 처음 보는 것이라 신기했다. 일제강점기 욕지바다는 고등어 주산지였다. 고등어를 잡아 냉장 보관해 일본으로 가져가고 일부는 염장을 했다. 쌓여있는 소금가마니 옆에서 섬 아낙들이 고등어를 염장하고 고등어가 켜켜이 쌓여 있는 모습을 커다란 간독에 재연해 놓았다. 

 일찍부터, 고등어와 다양한 수산물이 욕지도의 경제를 이끌었고 한편 일제 수탈을 강화시키기도 했다. 일제가 어업 전진기지로 삼았던 욕지도에 파시로 전성기를 누렸을 때는 밤낮으로 앞바다에 배가 가득해 맞은편 부두까지 배를 밟고 오고갔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 때는 욕지도에 많은 일본인들이 살았는데 1921년에는 일인의 수가 2,000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그리고 경주시와 같은 해에 상수도시설이 갖춰졌다고하니 마냥 좋은 것이 아니라 씁쓸했다.

 1900년대에는 여관, 목욕탕, 이발소, 다방, 식당, 명월관을 비롯해 40여 개의 술집 등이 있었다는 안방술집거리. 지금은 근대역사문화거리로 조성된 좁은 골목에, 흥청망청 돈 쓰는 노랫소리와 작부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한 듯했다. 그런데 이 마을 이름이 순 우리말로는 좌부랑개인데 자부마을로 불렸다. 그 이유는 '도미우라'가 우리말로 '부포'이고 '좌부랑개'와 비슷하니 '자부포'로 마을 이름을 고쳐 불렀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제의 만행이 마을 이름까지도 훼손시킨 것이다. 이렇게 시간여행으로 지난날의 일제강점 현장도 보고 욕지도가 품고 있는 역사도 알게 되었다. 

                             표지판 - 자부마을을 좌부랑개마을로 고쳐주세요


 욕지도에 왔으니 그 유명한 고등어를 안 먹을 수 없었다. 고등어를 완벽하게 맛 볼 수 있는 회. 한 접시의 고등어회는 한 봉오리 꽃이었다. 바다의 빛을 닮은 푸른 등에 붉은 속살, 은빛 속살이 그대로 꽃잎이었다. 비린내가 나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탱글탱글한 맛이 씹을수록 고소했다. 쌈을 싸기도 아까워 간장 소스만 살짝 찍어 입안에 넣고 맛을 음미했다. 회를 뜨고 난 나머지 부위는 찜을 해서 줬다. 현지에서 그곳의 음식을 먹는 것이 여행의 낙 중 하나인데 고등어회로 오늘 여행은 맛까지 챙겼다. 

 오후에는 섬 일주관광버스를 타고 섬을 한 바퀴 돌았다. 버스에서 내려 모노레일을 타고 산 높이 올라가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바다는 장관이었다. 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크고 작은 섬들, 고기잡이 하는 배들 그리고 바다에 설치해 놓은 양식장까지, 바다는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그림책 같았다. 

 또 출렁다리를 출렁출렁 건너 펠리컨바위에 올라,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열중해보고 세 자매의 전설이 서려있는 삼여도를 바라보고 기도를 해보기도 했다. 슬로건이 ‘아하, 욕지도’는 말 그대로 볼 것도, 먹을 것도, 생각할 것도 많아 ‘아하’라는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왔다. ‘하고자할 욕, 알 지’라는 의미의 욕지도! 통영 살이가 아니었으면 몰랐을 이중섭과 욕지도, 좌부랑개 마을 등등 정말 유익하고 재미있고 맛있는 욕지도의 하루였다.  


                         고등어 염장하는 여인들



                       출렁다리 무섭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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