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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비아 선생 Oct 15. 2021

남몰래합천살아보기 – 5일차,

그래도 괜찮아

  말 그대로 오곡백과가 한창 무르익어가는 산과 들이 그리고 합천살이 중인 나도 반갑지 않은 가을비가 내린다. 갈아 앉는 마음을 추스르며 짐을 정리해 차에 실었다. 오늘은 어디로 갈까? 남몰래합천살아보기 5일차이고 세 번째로 숙소를 옮기는 날이다. 

 살다보면 가끔 길을 잃은 듯해 어리둥절해질 때가 있다. 오늘이 그렇다. 잠시 멍청하게, 회색 하늘을 올려다봤다. 내리는 빗소리에 몸과 마음을 던져놓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래 가보자. 다시 오지 않을 오늘이니깐. 귀한 오늘을 살아봐야지.’ 마음을 다잡고 인터넷에서 보고 어젯밤에 전화를 걸어봤던 봉산면에 있는 한 펜션을 향해 차 시동을 걸었다. 유전리, 역평리, 술곡리, 수원리 등 시골마을 이름들이 정겹다.  

 왜, 합천을 천년의 문화와 깨끗한 자연, ‘水려한 합천’ 이라고 말하는지를 알 것 같다. 계속해서 산자락을 따라 도는 구불구불한 길이지만 한쪽으로는 합천호의 물이 연이어 보였다. 참말로 물이 많은 고을이다. 40여 분쯤 갔을 때, 내가 찾는 펜션 안내판이 나타났다. 그런데 길이 겨우 차 한 대 지나갈 정도로 좁고 굴곡도 무척 심했다. 비는 내리고 나도 날씨도 우울한데 왜 이렇게 가는지, 뭘 하려고, 아무 할 일도 계획도 없는데, 참 알 수 없다. 그렇다고 포기 할 수는 없다. ‘살다보면 살아진다.’는 노랫말처럼 ‘그냥 가다보면 가진다.’ 

 미끄러지지 않고 겨우 목적지에 도착했다. 자그마한 몇 채의 펜션이 산자락에 옹기종기 앉아 있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주인에게 전화를 하니, 가운데 왼쪽에 있는 방 문 앞에 가보면 열쇠가 꽂혀있으니 들어가면 된단다. 그냥 기다렸다. 주인에게 두 번 쯤 전화를 했다. 또 좀 무서워서 여기 다른 사람들은 없느냐고 물어보려고 전화를 했더니 이제 전화 하지 말란다. 자존심이 확 상했지만 그곳에서 나갈 수가 없었다. 비 때문에 또 도로가 좁아서 겁이 났다. 더군다나 갈 곳도 없다. 하루 종일 비는 내리고. 

 주인이 왔다. 경상도 말투는 화난 사람 같다. 나는 주눅이 잔뜩 들었다. 인터넷으로만 보고 상상했던 전원적 낭만을 즐기려든 꿈은 와장창 깨졌다. 합천군관광협의회에서 준 안내책자에도 없는 이 산속에 들어와서 2박 3일을 뭘 하면서 보낼까? 주인은 그냥 멍 때리기 좋다면서 자기 집 닭이 낳았다는 계란 두 알과 버섯을 줬다. 

 아이구나, 밤이 되니 옆방에 손님들이 왔고 그들이 펜션 끝에 있는 바베큐장에서 노래방을 열었다. 쿵짝쿵짝 신나는 밤이다. 캄캄한 산속에서 짐승 우는 소리보다는 인간의 노랫소리가 낫긴 낫지만 잠을 자야할 나무들도 나도 괴롭다. 절이 싫으면 중이 나가야 하는데 나갈 수도 없다. 비는 언제 그칠지 모르고 처음 와본 합천인지라 어디가 어딘지 알 수도 없다. 진짜 남몰래 합천살이의 또 다른 맛, 즉 타향살이 맛을 보는 밤이다. 


산 속 길


내가 2박을 머문 곳 


창으로 보이는 숲


나무 이름은 몰라요

무슨 열매일까요?


#남몰래합천살아보기 #합천여행 #국내여행 #합천펜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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