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에 대한 겸손함>
23년도 벌써 11일 지났다. 이제 시간이 흘러감에 무감각해지도 삶에 반추하는 것이 미래에 대한 희망보다 익숙하다.
아무 생각 없이 봤었던 페북이 문득 자신에 존재를 알리는 창구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존재하지 않을 때에도 어떤 형식이든 비슷하게 존재에 대해 계속해서 흘러나올 것이다.
존재.
생물학적으로 호흡하고 심장이 뛰며 생명이라는 단어를 품고 살아감.
인문학적으로 지식을 습득하고 과거 현재 미래를 고민하며 더 나은 삶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며 살아감.
사회적으로 지휘와 직책, 직업을 가지고 관계를 맺으며 더불어 살아감.
가족구성원으로 아이들 양육을 책임지며 가족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 노력하며 살아감.
존재에는 책임감이 자연스레 주어지게 되고 책임감은 다시 존재에 대한 의미를 부여한다. 하지만 책임감 때문에 더 큰 존재감이 생기기도 하지만 이것도 하나의 허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단순하게 책임감을 뺀 나에 대한 존재만으로도 삶에 대해 겸손해질 수 있을까.
현실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생물학적 존재만으로 가치를 부여하고 소중함을 다룬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본다. 하지만 존재에 대한 무수한 이야기보다 더 오더 중요한 것은 호흡하는 '나'라는 존재가 있기에 어떠한 의미부여, 책임감도 가능하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래서, 존재에 대한 겸손함은 지극히 당연하지만 지극히 어려운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잡곡가이승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