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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색고양이상점 Feb 12. 2017

200일, 지워진 여행의 기억

행복을 묻는 자는 행복하지 않아.

행복이 무엇이냐 물어 행복을 찾을 수 없듯이.


몇 년전 학교 스탠드에 앉아 친구랑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언어는 감옥 같아. 마음을 오롯이 옮겨놓으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말에는 담기지 않는 뭔가가 있는 것 같아."

세계를 언어라는 틀로 자르고 나누다보니, 언어 밖에 남겨진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해야할까? 남겨진 부분이 예민하게 굴 때면, 삶이 너무 답답한 느낌이 들어. 그래서 언어가 지독하게 싫을 때가 있어"


"그래도,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언어의 강력한 성질, 아니 본질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틀을 드러낼 수는 없지는 않을까?"


"그러게 말이야." 


그러다가 친구가 갑자기 말했다. 인생이 한없이 침잠할 때면 푸념처럼 내놓는 친구의 습관이다. 


"인생이 뭘까?" 


"인생이 뭘까라는 질문은 인생을 겨누지 못하는 것 같아. 인생을 살면서 인생이라는 단어로 우리의 생을 대상화 시키면 우리네 생은 단어를 통해 대상화된 인생과 결코 같지 않게 되니까."


유독 딱딱한 대답만 하는 나였고, 친구는 왜 이렇게 불안할까라는 질문으로 바꿨다.  20대 중반이 넘어가면서 부터 어렴풋이 알게 된 것 같다.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하지만, 질문에 돌아오는 답은 늘 실체를 빗겨선 대답뿐이라는 야속한 사실. 그러니까, 언어에 잘려나가서 말로 닿을 수 없는 부분에 닿아야만 비로소 말로 하는 질문에 대한 침묵의 대답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방콕을 벗어나 치앙마이로, 히치하이킹?


방콕을 벗어난다는 사실에 기뻤고, 치앙마이에 호스트가 둘이나 있다는 사실에 또 신이났다. 방콕에서 우리를 환대해준 호스트 숀에게 고맙다는 말을 연신했다. 숀은 다시 방콕에 돌아오게 되면, 꼭 다시 오라고 했다. 우리는 알겠다고 했지만 내심 그럴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치앙마이를 건너 미얀마를 통과해 인도로 갈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호스트 숀과 한 컷


 우리는 히치하이킹을 시도해 방콕에서 치앙마이로 갈 생각을 했다. 그냥, 해보고 싶었고, 돈도 아낄 수 있으니 한번 해보자고 했다. 숀과 아들 엘랜은 절대 방콕에서 히치하이킹을 하지 말라고 했고, 이 도시에서 히키하이킹을 하는 건 위험하다고 했다. 자신들이 방콕에 10년이상 살면서 한번도 히치하이킹을 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도 없다고 했으며, 도시는 위험하다고 누차 당부했다. 하지만, 하고싶었고 실패하면 그만두면 될 일이었기 때문에 하기로 했다. 숀이 걱정하니 몰래.  

 

히치하이킹 문구 쓸 박스


고속도로 앞 히치하이킹 하는 중 

히키하이킹을 하려고 마트에 가서 박스를 구했고, 구글번역기를 돌려 영어와 태국어로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는 짐을 챙겨 고속도로 앞에 섰다. 치앙마이로 가는 길에 아무데나 내려달라는 문구와 함께 1시간 정도를 그러고 서 있었는데, 지나가는 차들이 흘끔흘끔 쳐다보기만 할 뿐 타라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그러는 와중에 경찰이 와서 여기서 이러면 위험하다고 가라고 해서, 경찰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갔다. 물론, 경찰은 우리가 떠나지 않을 걸 알았다. 나중에는 경찰이 어디에 신고를 하는 듯했다. 5분 뒤 경찰이 우리에게 와서 너희를 누군가 태우러 올 거니 그걸 타고 가라고 했다. 순간, 태국 경찰서로 연행되는 줄 알았기 때문에 당황하고 어찌할 바를 몰랐으나, 5분후에 온 차는 응급차였다. 경찰이 전화한 곳은 주변에 있던 응급차였고, 그 차에 타라고 했다. 데려다 준다고. 


 

구급차에 얻어탔다.

우리는 구급차를 얻어타고 치앙마이까지 가는 줄 알았으나, 구급차는 우리를 치앙마이를 갈 수 있는 방콕 기차역에 데려다 주었다. 여기서 기차를 타고 가면 안전하다고 하면서.. 경찰은 구급차에 전화해서 우리를 가까운 기차역으로 데려다 주라고 한 거 같았다. 태국어를 못 하는 우리는 기차역 주변에 버려졌다. 우리는 기차역 주변 땡볕에 서서 다시 히치하이킹을 시도 했지만, 실패했다. 기차역을 지키는 경찰이 우리에게 와 자초지종을 물었고, 우리는 히치하이킹 해서 치앙마이 갈 거다라고 설명했지만, 그럼 위험하다고 안 된다고 우리에게 공짜표를 줄테니 기차를 타고 가라고 했다. 당장 히치하이킹 박스를 집어 던지고 우리는 기차역으로 달렸다. 공짜표니까 기차를 히치하이킹 한 셈이니까. 기차역에서 앉아 있는데, 경찰이 여권을 보여 달라고 하고, 역무원에게 표를 달라고 한 후 이렇게 이야기 했다.  


"3등석 공짜표는 태국인 한테만 줄 수 있어, 너희는 안 돼" 


경찰과 우리가 이야기 하면서, 기차표를 살지 말지 고민하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가자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우리가 여행자라 돈이 많이 없어, 히치하이킹을 하려고 한다. 그런데, 돈을 내야 한다면 기차를 탈 수 없다고 했다. 그랬더니 영어를 잘 하시는 아주머니께서 역무원에게 그말을 통역해 주셨는지 한 명 가격에 표 두 개를 준다고 했다. 콜. 우리는 기차를 탔다. 사실, 히치하이킹을 계속하기엔 너무 더웠고, 치앙마이에 있는 호스트와 약속 시간도 있기 때문에 우리는 제값을 내고서라도 기차를 탔을 거다. 그런데, 행운이 굴러들어왔다. 1+1 티켓.


치앙마이로 가는 3등석 기차.


기차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3등석이었다. 무려, 18시간동안 달리는 기차였고, 창문도 없었다. 의자는 돌보다 딱딱해서 30분에 한번씩 일어났다 앉지 않으면 종기가 날 것 같았다. 기차 안에 외국인은 우리 둘 뿐이었고, 다른 분들은 모두 태국인이었다. 우리를 신기하게 여기셨다. 태국분들은 우리를 환대해야 하는데 못해서 미안해하는 사람들 같았다. 먹을 것을 하도 많이 주셔서, 기차를 내릴 때 즈음엔 배가 많이 불렀다.(기차에 계신 분들은 어르신들이 많이 계셨는데, 방콕에 나왔다가 장을 보셔서 다시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았다.)


태국음식 (feat. 태국할머니)

쉬지 않고 18시간을 달려, 치앙마이에 도착했고. 우리는 싼 호텔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호스트와 연락했다. 호스트는 차를 타고 우리를 데리러 왔고, 우리는 함께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호스트는 치앙마이 대학교수인데 정부에서 치앙마이로 발령이나서 치앙마이에 온지 얼마 안 됐다고했다. 그녀는 방이 남고 심심해서 카우치서핑에 등록했다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행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냐고



 우리는 짐을 풀고, 호스트와 함께 저녁을 먹으러 향했다. 호스트는 우리에게 밥을 사주었다. 여행떠나고 먹어 본 밥 중에 제일 비싼 밥이었다. 밥을 먹고 어색함이 누그러지자,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방콕에서 얼마를 썼고, 장기여행이 될 것 같다고 이야기 했고, 어디로 갈지, 언제 돌아갈지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다. 그녀는 우리가 방콕에서 일주일 이상을 그 적은 돈으로 살아남은 것과 장기여행자라는 사실을 흥미로워 했다. 그러다가 나는 대뜸 그녀에게 물었다. 행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나는 여행 중 만나는 모든 이에게 행복이 무엇인지 물어 사람들은 행복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리하려고 했다.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오늘 갔던 곳을 또 가면 지루하고, 너희같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 하면 즐겁고, 잘 집이 있고, 좋은 직장이 있고 그런 게 행복이 아닐까 싶은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는 행복이 다녀간 자리를 소중하게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행복은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기대하고 돌아다니며 행복을 포획하려고 의기양양하던 그때를 생각하면 참 바보같았다는 생각이 든다. 행복을 느끼는 사람은 행복을 묻지 않는다는 담백한 깨달음을 잊고 떠들어 대고 다녔으니. 행복에 대한 그녀의 대답은 여행내내 잊혀졌지만, 기나긴 시간과 공간을 뚫고 지나와 다시 귓가에 맴돌았다. 한 마디를 더 덧붙이며.


"이제 묻지 않기로 했잖아"

 

 치앙마이에 도착하고 이틀이 지났다. 밤은 아주 낮게 내려 앉았고, 나는 행복이 무엇일까라는 물음을 잊고 호스트와 여자친구와 어울어졌다. 우리는 이제 치앙마이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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