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묻는 자는 행복하지 않아.
행복이 무엇이냐 물어 행복을 찾을 수 없듯이.
몇 년전 학교 스탠드에 앉아 친구랑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언어는 감옥 같아. 마음을 오롯이 옮겨놓으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말에는 담기지 않는 뭔가가 있는 것 같아."
세계를 언어라는 틀로 자르고 나누다보니, 언어 밖에 남겨진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해야할까? 남겨진 부분이 예민하게 굴 때면, 삶이 너무 답답한 느낌이 들어. 그래서 언어가 지독하게 싫을 때가 있어"
"그래도,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언어의 강력한 성질, 아니 본질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틀을 드러낼 수는 없지는 않을까?"
"그러게 말이야."
그러다가 친구가 갑자기 말했다. 인생이 한없이 침잠할 때면 푸념처럼 내놓는 친구의 습관이다.
"인생이 뭘까?"
"인생이 뭘까라는 질문은 인생을 겨누지 못하는 것 같아. 인생을 살면서 인생이라는 단어로 우리의 생을 대상화 시키면 우리네 생은 단어를 통해 대상화된 인생과 결코 같지 않게 되니까."
유독 딱딱한 대답만 하는 나였고, 친구는 왜 이렇게 불안할까라는 질문으로 바꿨다. 20대 중반이 넘어가면서 부터 어렴풋이 알게 된 것 같다.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하지만, 질문에 돌아오는 답은 늘 실체를 빗겨선 대답뿐이라는 야속한 사실. 그러니까, 언어에 잘려나가서 말로 닿을 수 없는 부분에 닿아야만 비로소 말로 하는 질문에 대한 침묵의 대답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방콕을 벗어나 치앙마이로, 히치하이킹?
방콕을 벗어난다는 사실에 기뻤고, 치앙마이에 호스트가 둘이나 있다는 사실에 또 신이났다. 방콕에서 우리를 환대해준 호스트 숀에게 고맙다는 말을 연신했다. 숀은 다시 방콕에 돌아오게 되면, 꼭 다시 오라고 했다. 우리는 알겠다고 했지만 내심 그럴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치앙마이를 건너 미얀마를 통과해 인도로 갈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우리는 히치하이킹을 시도해 방콕에서 치앙마이로 갈 생각을 했다. 그냥, 해보고 싶었고, 돈도 아낄 수 있으니 한번 해보자고 했다. 숀과 아들 엘랜은 절대 방콕에서 히치하이킹을 하지 말라고 했고, 이 도시에서 히키하이킹을 하는 건 위험하다고 했다. 자신들이 방콕에 10년이상 살면서 한번도 히치하이킹을 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도 없다고 했으며, 도시는 위험하다고 누차 당부했다. 하지만, 하고싶었고 실패하면 그만두면 될 일이었기 때문에 하기로 했다. 숀이 걱정하니 몰래.
히키하이킹을 하려고 마트에 가서 박스를 구했고, 구글번역기를 돌려 영어와 태국어로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는 짐을 챙겨 고속도로 앞에 섰다. 치앙마이로 가는 길에 아무데나 내려달라는 문구와 함께 1시간 정도를 그러고 서 있었는데, 지나가는 차들이 흘끔흘끔 쳐다보기만 할 뿐 타라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그러는 와중에 경찰이 와서 여기서 이러면 위험하다고 가라고 해서, 경찰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갔다. 물론, 경찰은 우리가 떠나지 않을 걸 알았다. 나중에는 경찰이 어디에 신고를 하는 듯했다. 5분 뒤 경찰이 우리에게 와서 너희를 누군가 태우러 올 거니 그걸 타고 가라고 했다. 순간, 태국 경찰서로 연행되는 줄 알았기 때문에 당황하고 어찌할 바를 몰랐으나, 5분후에 온 차는 응급차였다. 경찰이 전화한 곳은 주변에 있던 응급차였고, 그 차에 타라고 했다. 데려다 준다고.
우리는 구급차를 얻어타고 치앙마이까지 가는 줄 알았으나, 구급차는 우리를 치앙마이를 갈 수 있는 방콕 기차역에 데려다 주었다. 여기서 기차를 타고 가면 안전하다고 하면서.. 경찰은 구급차에 전화해서 우리를 가까운 기차역으로 데려다 주라고 한 거 같았다. 태국어를 못 하는 우리는 기차역 주변에 버려졌다. 우리는 기차역 주변 땡볕에 서서 다시 히치하이킹을 시도 했지만, 실패했다. 기차역을 지키는 경찰이 우리에게 와 자초지종을 물었고, 우리는 히치하이킹 해서 치앙마이 갈 거다라고 설명했지만, 그럼 위험하다고 안 된다고 우리에게 공짜표를 줄테니 기차를 타고 가라고 했다. 당장 히치하이킹 박스를 집어 던지고 우리는 기차역으로 달렸다. 공짜표니까 기차를 히치하이킹 한 셈이니까. 기차역에서 앉아 있는데, 경찰이 여권을 보여 달라고 하고, 역무원에게 표를 달라고 한 후 이렇게 이야기 했다.
"3등석 공짜표는 태국인 한테만 줄 수 있어, 너희는 안 돼"
경찰과 우리가 이야기 하면서, 기차표를 살지 말지 고민하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가자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우리가 여행자라 돈이 많이 없어, 히치하이킹을 하려고 한다. 그런데, 돈을 내야 한다면 기차를 탈 수 없다고 했다. 그랬더니 영어를 잘 하시는 아주머니께서 역무원에게 그말을 통역해 주셨는지 한 명 가격에 표 두 개를 준다고 했다. 콜. 우리는 기차를 탔다. 사실, 히치하이킹을 계속하기엔 너무 더웠고, 치앙마이에 있는 호스트와 약속 시간도 있기 때문에 우리는 제값을 내고서라도 기차를 탔을 거다. 그런데, 행운이 굴러들어왔다. 1+1 티켓.
치앙마이로 가는 3등석 기차.
기차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3등석이었다. 무려, 18시간동안 달리는 기차였고, 창문도 없었다. 의자는 돌보다 딱딱해서 30분에 한번씩 일어났다 앉지 않으면 종기가 날 것 같았다. 기차 안에 외국인은 우리 둘 뿐이었고, 다른 분들은 모두 태국인이었다. 우리를 신기하게 여기셨다. 태국분들은 우리를 환대해야 하는데 못해서 미안해하는 사람들 같았다. 먹을 것을 하도 많이 주셔서, 기차를 내릴 때 즈음엔 배가 많이 불렀다.(기차에 계신 분들은 어르신들이 많이 계셨는데, 방콕에 나왔다가 장을 보셔서 다시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았다.)
쉬지 않고 18시간을 달려, 치앙마이에 도착했고. 우리는 싼 호텔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호스트와 연락했다. 호스트는 차를 타고 우리를 데리러 왔고, 우리는 함께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호스트는 치앙마이 대학교수인데 정부에서 치앙마이로 발령이나서 치앙마이에 온지 얼마 안 됐다고했다. 그녀는 방이 남고 심심해서 카우치서핑에 등록했다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행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냐고
우리는 짐을 풀고, 호스트와 함께 저녁을 먹으러 향했다. 호스트는 우리에게 밥을 사주었다. 여행떠나고 먹어 본 밥 중에 제일 비싼 밥이었다. 밥을 먹고 어색함이 누그러지자,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방콕에서 얼마를 썼고, 장기여행이 될 것 같다고 이야기 했고, 어디로 갈지, 언제 돌아갈지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다. 그녀는 우리가 방콕에서 일주일 이상을 그 적은 돈으로 살아남은 것과 장기여행자라는 사실을 흥미로워 했다. 그러다가 나는 대뜸 그녀에게 물었다. 행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나는 여행 중 만나는 모든 이에게 행복이 무엇인지 물어 사람들은 행복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리하려고 했다.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오늘 갔던 곳을 또 가면 지루하고, 너희같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 하면 즐겁고, 잘 집이 있고, 좋은 직장이 있고 그런 게 행복이 아닐까 싶은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는 행복이 다녀간 자리를 소중하게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행복은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기대하고 돌아다니며 행복을 포획하려고 의기양양하던 그때를 생각하면 참 바보같았다는 생각이 든다. 행복을 느끼는 사람은 행복을 묻지 않는다는 담백한 깨달음을 잊고 떠들어 대고 다녔으니. 행복에 대한 그녀의 대답은 여행내내 잊혀졌지만, 기나긴 시간과 공간을 뚫고 지나와 다시 귓가에 맴돌았다. 한 마디를 더 덧붙이며.
"이제 묻지 않기로 했잖아"
치앙마이에 도착하고 이틀이 지났다. 밤은 아주 낮게 내려 앉았고, 나는 행복이 무엇일까라는 물음을 잊고 호스트와 여자친구와 어울어졌다. 우리는 이제 치앙마이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