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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색고양이상점 Feb 04. 2024

마음이 그만이라고 말할 때

2023년 05월 30일, 임상심리사의 심리결과지를 받아 들고서.

 2023년 05월 30일에 심리결과지를 받았으니까 검사한 지는 그로부터 한 달께 된 듯하다. 주기적으로 물속에 잠긴듯한 기분이 며칠씩 이어질 때면 집을 치우고, 집 밖을 나가거나, 설거지하는 게 아뜩하게만 느껴져서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듯한 상태로 지냈다. 스스로는 '단지 컨디션이 좀 안 좋을 뿐인 정도'라고 치부해 버리곤 해서, '창살 없는 감옥주기'가 점점 잦아지고, 침잠하는 정도도 깊어졌다. 언제가 시작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적어도 10년은 된 것 같다.


 정신과를 찾아야겠다고 마침내 옷을 주섬주섬 입고서 동네에 있는 한 정신병원에 들렀다. 계기가 있었다. 하루는 일 하는 도중에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흐르고, 분노가 치밀었다. 그 상태로는 일을 더 이상할 수 없어서, 일터를 나와버렸다. 집까지 멀지 않았지만, 당시 생각으로는 집이 아뜩해서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있다고 느꼈다. 집까지 갈 수 있는 심리적 에너지가 얼마 없어서 그러지 않았을까. 마음이 감정을 담는 양동이라면, 이따금 물이 다 차면 비워야 하는 양동이라면, 그때 마음은 조금만 툭 건드려도 양동이의 물이 와르르 쏟아질 것 같은 상태였다.


 의사는 40분 정도 이것저것 물었다. 일하다가 왜 갑자기 분노가 치밀었는지. 부모님은 어떤 분인지. 부모님과 사이는 어떤지. 결혼은 했는지. 어떤 직업에 종사하는지를 포함해서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묻는 듯했다. 의사 한 번 더 만나고 심리검사도 했으며, 2023년 05월 30일에 결과지를 받았다.


검사의 결과는 대략 이러했다.


 일을 지속하거나 끝마칠 수 없을 것 같다는 부정적인 인지가 증가되어 있는 등 우울감과 관련된 부정적인 정서 상태에 있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가족관계에서의 갈등, 가족 내에서 소외감, 유대감 부족, 지지체계의 부족에 대해 호소하고 있으므로 현재 가정 및 원가족과의 문제에 대한 고려가 필요할 수도 있어 보인다.


비난하거나 평가하는 양육환경에서 성장하였을 수 있으며, 그로 인해 부모의 엄격한 가치를 내면화하여왔을 가능성도 있을 수 있겠다.


 이 외에도 임상심리사의 이런저런 결과 분석이 있지만 그저 끄덕끄덕 할 뿐 마음에 와서 닿는 말들은 없었다. 임상심리사의 분석이 마음에 닿기에는 마음을 둘러싼 너무 많은 막들이 켜켜이 쌓여있던 건지 아니면 분석이 빗나간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아무튼, 두 장의 심리결과지로 내가 왜 그토록 '창살 없는 감옥'에 주기적으로 투옥되어서 물속에 갇힌 기분을 몇 날씩 느껴야 했는지, 아무 이유 없이 분노가 치밀고, 눈물이 났는지, 아프리카의 초원을 보거나 석양을 보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이 일렁이는지를 밝히기는 요원해 보였다. 의사는 약을 지어줄 테니 이유 없이 분노가 일거나 감정을 통제할 수 없을 것 같을 때 먹으라고 했다.

 

 병원을 갔다 와서 다시 일상을 살았다. 의사가 처방해 준 약은 두세 번 정도 먹었다. 약을 먹고 나면 나아졌다는 마음보다는 한 고비 넘겼다는 마음이 들었고, 약은 계속 원인을 회피하게 하는 임시방편 같았다.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고장 난 마음의 뿌리를 찾아서 들여다보고 나아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마음이 문제라고 생각해서, 마음수련이나 집착이라는 낱말을 중심에 두고 명상이나 불교 관련 서적이나 영상을 찾아보곤 했다. 그러던 중 명상센터를 찾아서 가보기로 했다. 집 근처에 가까운 명상센터에 연락해서 약속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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