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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색고양이상점 Mar 26. 2024

삶과 죽음에 대하여

2023.11.29 명상일지

삶과 죽음에 대하여


1. 명상에 집중하고 있다가 문득 맥박수가 올라가고 있음을 감지했다.

2. 기억된 생각을 버리는 것은 기억과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과 거리 두게 만드는 일인 듯하다.

3. 명상의 마지막에 '몸 크기만큼의 나', 혹은 기억된 생각의 어떤 순간에서 끌어온'나'를 버리는 순간 내가 몸에 집중하던 감각으로부터 일순간 멀어졌고, 매우 귀한 경험이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실마리


'몸', '생각된 기억', '자아'를 버리는 일을 하다 보면, '나'라는 것은 텅 빈 공간과 같다는 마음에 이른다. 아무것도 없지만, 공간만 있다는 느낌이 든다. 감각된 것들을 버리면, 그것이 무엇인지 의문이 든다. 그 공간이 명상에서 말하는 '순수의식'이라면 육체와 감각, 정신활동이 멍추는 게 죽음이라면, 죽음은 단순히 순수의식의 상태로 있음이다.


2. 삶이 경험들을 의식에 기록하는 활동이라면, 기록하는 순간 희로애락은 그 순간에 느낌으로 끝나야 한다. 미래에 어떤 판단을 할 때 이미 일어난 희로애락의 기록된 기억을 통해 재생시키려는 순간, 미래는 단순히 과거의 복제에 불과한 것 같다. 이미 일어난 기억된 생각과 경험과 지금 '나'라는 것과 거리를 두고 이미 일어난 것은 곧 죽은 것이라는 뿌리 깊은 자각이 새로운 앞날을 그리게 한다. 기록된 과거가 현재의 '나로 있음'과 거리를 두는 행위 자체가 곧 죽음 그 자체다.


3. 삶은 기록이고, 죽음이 기록된 것들을 비우는 것이라면, 기록하고 지우는 활동을 생명활동을 지속하는 한 공생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순간을 살며, 관념적 죽음에서 벗어난다. 죽는다는 것은 기록된 것들을 비우면서 현재를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인 듯하다.


4. 죽음 '만' 있는, 그러니까 생명활동이 정지하여 기록하는 의식이 멈춘다는 것은 원래 텅 빈 의식의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 같다. 


5. 죽음이 두려운 것은 죽음이 낯설어서 그렇거나, 삶에 대한 온갖 판타지 때문에 그런 듯하다. 명상을 통해 '자아'를 죽이는 경험의 연속이 '죽음'을 친숙하게 하는 듯하다. 



되돌아보며 


 당시에 삶과 죽음에 대해 느낀 바가 컸던 듯하다. 명상을 하면서 두 가지를 알았다.


홀로 남겨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나와 죽음을 두려워하는 나.


 인생은 원래 홀로 왔다가 홀로 간다는 문장을 되뇌면서 외로움을 밀고 나가던 때가 있었다. 명상을 하면서 알았다. 홀로 남겨지는 것이 두려워서, 미리 방어벽 속에 들어앉아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그 아이는 몰랐다. '홀로 왔다가 홀로 간다'는 문장의 무게를. 단지 홀로 남겨지는 것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삼았을 뿐이다. 


 '홀로 남겨진다는 것에 대한 불안'은 곧 '죽음에 대한'공포와 맞닿아있었다. 


죽음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죽음은 두렵고 피해야 하는 것이다'라는 명제에 길들여져 있었다.( 유전자 결정론이나 진화론을 들이대면서 죽음이 두려운 이유를 설명한다면 그 말이 맞겠지만 )


 2023년 11월 29일 날의 명상 이후에 '몸이 죽는다', '모든 것은 소멸한다'는 문장의 무게를 조금씩은 받아들여 가는 것 같다. 죽음을 막연한 공포로 느끼기보다는 와닿는 실체로 이해하기 시작해서 그런 듯하다. '죽음'을 매순 간 지금 내게 벌어지는 삶의 일부로 이해하기 시작하니, 두려움이 조금씩 밀려나는 듯하다. 그러자 '홀로 남겨진다는 것에 대한 불안'이 보였다. 내게 '홀로 남겨진다는 것'은 곧 '죽음'의 이미지였던 듯하다. '죽음'의 이미지가 소멸하고, 친근하게 다가오자, '홀로 남겨진다는 것' = '죽음'의 공식이 흩어지자, '홀로 남겨지는 것'이 아니라 '원래 혼자인 것'이 자연스럽게 마음에 흘러들었다. 자유의 느낌이 들었다.  


 죽음을 마녀사냥하여 얻은 빛나는 삶 속에 숨어든 것이 현대인들의 불안이고, 그것을 가지고 온갖 일들이 벌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가고,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살게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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