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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엘 Nov 28. 2016

17_걷기 중독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트래킹 5일차 2부

푼힐에서 일출을 보고 숙소로 내려와 빠르게 짐을 싸고 아침 식사를 한다. 새벽부터 힘을 썼더니 밥이 꿀이다. 숙소를 출발해 다울라기리가 훤히 보이는 능선을 오른다. 이제부터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로 향한다. 촘롱-도반-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를 지나는 루트로 3일 정도 걸린다.

하늘에 가까워진 탓일까 강한 햇살이 피부를 찌른다. 땀으로 샤워를 한다. 능선에 오르자 간이휴게소가 있다. 주유소에 들린 차가 주유를 하듯 레드불(에너지 음료) 하나를 사 벌컥대며 마신다. 진품인지 가품인지 알길 없지만 어쨌든 이 녀석이 큰 힘이 되고 있다. 개활지 능선이 끝나고 구비구비 오르막 내리막 숲 길을 걸어간다. 

걸음을 옮기다 문득 깨닫는다. 힘들지 않다. 정확히 말하면 힘들지 않은 것이 아니라 힘듦 속에 뭔가 모를 즐거움과 쾌감이 있다. 마라톤 선수들이 어느 선을 넘어 뛰다보면 이런 걸 경험한다는데... 계속 걷고 싶어진다. 어느 순간 호흡은 안정되고 머리 속이 맑아지고 다리는 알아서 경쾌하게 땅을 내딛는 상태. 걷기 중독에 걸린 걸까? 살면서 몇날 몇일 밥 먹고 걷기만 하는 삶을 언제 살아본 적이 있던가? 태어나 처음 느끼는 경험이다.계속 걷고 싶다.


걷기라는 지극히 단순한 행위를 통해서 인간은 참으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콜린 플래처, <완전하게 걷기>중-
숲의 일부가 되어 버린 돌계단 길


마운틴 디스커버리 롯지

타다빠니(물이 멀다 라는 뜻)를 지나 촘롱 방향으로 내려가는 산 중턱에 멋진 롯지 하나를 만난다. 마운틴 디스커버리 롯지. 숙소 앞으로 잘 가꾼 잔디 밭이 햇살을 가득 받아 평화와 한가로움의 끝을 느끼게 해준다. 마음 같아선 여기서 하룻밤 머물고 싶다. 잔디 밭에 앉으면 마차푸차레가 눈 앞에 보인다. 목도 축이자. 잠깐 쉴 요량이었는데 이 나른한 평화로움에 젖어 게으름을 한껏 피운다.

살면서 이런 곳에서 물 한번 마셔봐야 한다

이 곳에서부터 촘롱까지는 해질녘 전에 닿겠지 생각한다. 다시 출발. 계곡을 건너기 위해 가파른 내리막길을 실컷 내려가서는 다시 산등성이 길까지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 짐이 많다. 정말 길 위의 인생을 사는 사람처럼 모두 지고 다니는 것 같다.(훗날 이 때의 경험이 BPL-Backpacking Light, ULH - Ultra Light Hiking 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만들었다)

산등성이를 돌며 행복하다. 뜨거운 햇볕, 풀풀 피어오르는 먼지, 흐르는 땀, 너무 무거워 살 닿는 곳마다 피부를 짓무르게 만드는 배낭의 무게. 그럼에도 이 길을 걸으며 행복하다는 생각으로 충만해진다. 길 위에 나와 아내를 제외하곤 아무도 없다. 지칠만 하면 나타나는 작은 구멍가게에 들러 콜라 한잔으로 힘을 낸다.


해가 저물어갈 무렵 촘롱에 닿았다. 

해질 무렵 도착한 촘롱
해는 졌지만 달빛에 빛나는 히운출리
촘롱은 ABC 트래킹 여정에 있는 꽤나 큰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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