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Made in Nepal

17_걷기 중독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트래킹 5일차 2부

by 삶엘
IMG_4788.jpg

푼힐에서 일출을 보고 숙소로 내려와 빠르게 짐을 싸고 아침 식사를 한다. 새벽부터 힘을 썼더니 밥이 꿀이다. 숙소를 출발해 다울라기리가 훤히 보이는 능선을 오른다. 이제부터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로 향한다. 촘롱-도반-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를 지나는 루트로 3일 정도 걸린다.

하늘에 가까워진 탓일까 강한 햇살이 피부를 찌른다. 땀으로 샤워를 한다. 능선에 오르자 간이휴게소가 있다. 주유소에 들린 차가 주유를 하듯 레드불(에너지 음료) 하나를 사 벌컥대며 마신다. 진품인지 가품인지 알길 없지만 어쨌든 이 녀석이 큰 힘이 되고 있다. 개활지 능선이 끝나고 구비구비 오르막 내리막 숲 길을 걸어간다.

걸음을 옮기다 문득 깨닫는다. 힘들지 않다. 정확히 말하면 힘들지 않은 것이 아니라 힘듦 속에 뭔가 모를 즐거움과 쾌감이 있다. 마라톤 선수들이 어느 선을 넘어 뛰다보면 이런 걸 경험한다는데... 계속 걷고 싶어진다. 어느 순간 호흡은 안정되고 머리 속이 맑아지고 다리는 알아서 경쾌하게 땅을 내딛는 상태. 걷기 중독에 걸린 걸까? 살면서 몇날 몇일 밥 먹고 걷기만 하는 삶을 언제 살아본 적이 있던가? 태어나 처음 느끼는 경험이다.계속 걷고 싶다.


걷기라는 지극히 단순한 행위를 통해서 인간은 참으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콜린 플래처, <완전하게 걷기>중-
숲의 일부가 되어 버린 돌계단 길


마운틴 디스커버리 롯지

타다빠니(물이 멀다 라는 뜻)를 지나 촘롱 방향으로 내려가는 산 중턱에 멋진 롯지 하나를 만난다. 마운틴 디스커버리 롯지. 숙소 앞으로 잘 가꾼 잔디 밭이 햇살을 가득 받아 평화와 한가로움의 끝을 느끼게 해준다. 마음 같아선 여기서 하룻밤 머물고 싶다. 잔디 밭에 앉으면 마차푸차레가 눈 앞에 보인다. 목도 축이자. 잠깐 쉴 요량이었는데 이 나른한 평화로움에 젖어 게으름을 한껏 피운다.

살면서 이런 곳에서 물 한번 마셔봐야 한다

이 곳에서부터 촘롱까지는 해질녘 전에 닿겠지 생각한다. 다시 출발. 계곡을 건너기 위해 가파른 내리막길을 실컷 내려가서는 다시 산등성이 길까지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 짐이 많다. 정말 길 위의 인생을 사는 사람처럼 모두 지고 다니는 것 같다.(훗날 이 때의 경험이 BPL-Backpacking Light, ULH - Ultra Light Hiking 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만들었다)

SDIM2406.jpg
SDIM2411.jpg

산등성이를 돌며 행복하다. 뜨거운 햇볕, 풀풀 피어오르는 먼지, 흐르는 땀, 너무 무거워 살 닿는 곳마다 피부를 짓무르게 만드는 배낭의 무게. 그럼에도 이 길을 걸으며 행복하다는 생각으로 충만해진다. 길 위에 나와 아내를 제외하곤 아무도 없다. 지칠만 하면 나타나는 작은 구멍가게에 들러 콜라 한잔으로 힘을 낸다.


해가 저물어갈 무렵 촘롱에 닿았다.

IMG_4827.jpg
IMG_4843.jpg
IMG_4832.jpg
IMG_4849.jpg
IMG_4848.jpg
IMG_4847.jpg
IMG_4859.jpg 해질 무렵 도착한 촘롱
SDIM2424.jpg 해는 졌지만 달빛에 빛나는 히운출리
SDIM2439.jpg 촘롱은 ABC 트래킹 여정에 있는 꽤나 큰 마을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6_푼힐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