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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엘 Mar 19. 2016

16_푼힐 만세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트래킹 5일 차 1부

삐비비빅, 삐비비빅


휴대폰 알람이 울린다. 의식은 파도처럼 알람 소리에 가깝게 다가갔다가 다시 멀어져가기를 반복한다. 간밤은 꽤나 추웠다. 일찍 자리에 누웠지만 추위 때문에 쉬이 잠들지 못 했고, 늦은 밤이 되어서야 겨우 눈을 붙였다. 침낭 속에 깊이 파묻힌 팔을 겨우 끄집어내어 알람을 끈다.


새벽 4시


세상은 아직 완전한 어둠이다. 푼힐 전망대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서는 지금 일어나 나가야 한다. 옷을 따뜻하게 챙겨 입고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해 숙소 뒤로 나 있는 전망대 가는 길로 들어선다. 어디서 나왔는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을 이루어 빛나는 한 마리 뱀처럼 산을 오른다. 우리도 그 무리의 꼬리 어디쯤에 동행한다. 1시간 좀 넘게 오르자 하늘은 푸르스름하게 동이 터 오고 멀리 전망대가 보인다.

전망대가 있는 언덕에 오르자 대기는 좀 더 환하게 바뀐다. 멀리 다울라기리 산군이 보인다. 해발 8167m의 세계 7위 봉이 하늘 높이 우뚝 솟아 있다. 그 옆으로 안나푸르나 쪽 봉우리들과 마차푸차레까지 훤히 보인다. 어제까지 비 구름 속에 감춰졌던 히말의 신비로운 모습이 '짠'하고 나타난다. 어제까지만 해도 못 볼 줄 알았는데 구름 한 점 없는 멋진 날씨 속에 마주하게 되다니... 감격스럽다.

저 멀리 태양에서 달려온 햇살은 지구에서 가장 높은 곳부터 닿기 시작한다. 다울라기리 정상 언저리부터 처음엔 핑크빛, 그다음엔 붉은빛, 마지막으로 황금빛을 내며 아침을 연다. 이 광경에서 영광스러움이 느껴진다. 이 곳에서는 저 영광이 매일 아침마다 반복된다니... 사뭇 경건해지기까지 한다.


이 멋진 일출을 함께 한 우리 트래커들은 순식간에 너나없이 한 배를 탄 동지가 되어 기뻐한다. 말 한마디 나눠보지 못한 사람들이지만 서로 엄지를 척 들며 감격을 표한다. 옆에 있던 일본, 미국, 스웨덴 출신 다국적 트래커들과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는 기념사진까지 찍는다. 그다음은 3210m를 자랑하고 있는 푼힐 표지판 앞에서의 인증샷. 저 표지판 녀석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사진 속에 당당히 자리하고 있을까?


낡은 벤치에 앉아 천천히 이 풍경을 좀 더 음미한다. 내려가기 싫다. 정말로.


그렇게 한참을 앉았다가 드디어 엉덩이를 털고 일어섰다. 오늘 갈 길이 멀다. 더 지체하다가는 밤새 걸어야 할 지도 모른다. 아쉽지만 가자. 내려가는 길은 들꽃들이 반겨준다. 들꽃들 너머로 하얀 설산이 있다니... 생각할수록 말도 안 되는 이 풍경에 자꾸만 가던 길을 멈추게 된다.

어제는 몰랐지만 오늘 이 아침에 우리의 숙소가 왜 슈퍼뷰 인지 깨닫는다. 이런 어마어마한 풍경을 보며 먹는 아침이 고작 우리 돈 4000원 정도다. 그냥 여기 살고 싶은 심정이다. 한 두어 달 살아도 좋을 것 같은데...

(이 다음에 나이 들면 반드시 그러고 말테다)


그림 같은 풍경 아래 아침을 먹는다. 밥도 더 맛나다.

(2부에 계속)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트래킹 처음부터 읽기

https://brunch.co.kr/@lsme007/12


*네팔이야기 처음부터 읽기

https://brunch.co.kr/@lsme0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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