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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엘 Dec 01. 2016

18_히말라야 호텔, 보내지 못한 사진 한장

ABC 트래킹 6일차

촘롱에서 잘 먹고 잘 쉬었다. 어제는 푼힐에서 일출을 보느라 너무 일찍 일어나는 바람에 많이 피곤했다. 그래서 오늘은 아침을 먹고 좀 쉬다가 넉넉하게 출발 하기로 한다. 메뉴는 간단하게 계란 볶음밥. 식후 티타임으로 깔로찌야(블랙티) 한 잔이다. 설탕을 뜸뿍 넣고는 여유 있게 마시고 있는데 계곡 아래에서 헬기 한대가 요란하게 다가온다.

촘롱의 아침을 깨운 구급헬기. 약 30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

무슨 일인지 싶어 롯지 주인 아주머니에게 묻자


"응, 고산병 환자일거야"


별것 아니라는 듯 대답하는 아주머니. 고산병 치료는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것이 최고다. 악화되면 폐에 물이 차고 죽을 수도 있으니 사실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서양에서 온 외국인들은 대부분 트래킹용 보험을 들기에 문제가 생겨도 쉽게 헬기를 부를 수 있다. 30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은 히말라야 트래킹 간다고 하면 여행자 보험도 거부 당하는 실정이다.  컨디션을 봐가며 고도를 천천히 올려야 한다.

밤새 달 빛 아래 환하던 히운출리가 아침 햇살을 받아 눈부시다. 트래킹을 시작한 지 며칠이 흘렀음에도 '와, 이게 히말라야 구나' 하고 날마다 놀라고 있다.


오늘도 쉽지 않은 하루가 예상된다. 출발하자 마자 촘롱 아래로 한참을 내려가 계곡을 건넌 후에 계속해서 오르막 또 오르막이다. 끝 모를 돌계단과 씨름해야 한다. 며칠 전 울레리를 오르며 맛 보았던 그 고통을 다시 맛봐야겠지?


중간쯤 올랐을까 아내에게 고비가 온 게 느껴진다. 얼른 배낭을 빼앗아 맸다. 앞뒤로 맨 배낭 때문에 계단도 잘 보이지 않았지만 어쩌랴. ABC에 오르려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정말 입에서 단내가 나고 뒤로 고꾸라져 버릴 것 같은 그 순간. 반가운 입간판이 보인다. '백숙, 라면'. 응? 내가 헛것이 보이는 걸까? 네팔 히말라야 산 길에 왠 백숙? 뭔가 정신이 이상하게 된 건 아닐까 생각하고 있는데 아내도 발견했나보다.


"여보 라면이래!"


그래, 얼른 들어가자. 뭐든 먹어야 겠다. 메뉴에 당당히 신라면이 적혀 있다. 와우~ 우리나라 사람들 대단하다. 이 산속에서 얼마나 신라면과 백숙을 찾았기에... 공급은 수요를 따르는 법. 어쨌거나 반갑다. 정말 무지 반갑다. 라면 반개에 우리 돈 6000원. 비싸다. 흑. 그래도 먹어야지. 두개를 주문하고 공기 밥도 주문해서 한 입에 털어 넣는다. 역시 이 맛이지.


라면 덕분일까? 드디어 가파르던 오르막을 무사히 올라왔다. 이제부터는 안나푸르나 내원으로 깊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길은 점점 좁아진다. 오늘의 숙소는 히말라야 호텔이다. 촘롱을 지나 ABC로 가는 동안 이제부터 만나는 숙소는 마을이 아니라 롯지만이 있는 곳들이다. 히말라야 호텔도 마을이 아니라 그 곳에 있는 숙소 이름이 지명이 된 곳이다.


비성수기에는 일부 숙소들은 문을 닫기도 하지만 우리가 간 시점은 극성수기에 해당돼 문을 닫을 염려는 없다. 하지만 빈방이 없을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오후 늦게 도착한 히말라야 호텔엔 방이 없다. 야단났다. 방이 없다니.


주인 아저씨에게 사정을 한다. 우리 이러다 밤에 호랑이한테 물려가면 어떡해요?(농담이 아니라 네팔엔 아직 호랑이가 있다). 제발 도와 주세요.


우리가 짠했는지 아저씨가 기다려 보란다. 숙소 건물 뒤로 한참 가 있더니 다시 돌아온다. 빈방은 없고 다른 사람이 투숙한 방을 같이 써야 된다고  한다. 실내에서 잘 수 있다는데 그것이 문제일까? 오케이를 외치고 아저씨를 따라 갔다.


작고 어두운 방으로 들어갔다. 먼저 온 손님은 네팔사람들이다. 어둠에 익숙해지고 보니 아버지와 어린 아들이다. 방엔 침대 2개. 원래 아버지 하나, 아들 하나. 이렇게 잘 모양이었을 텐데. 우리 사정을 듣고 침대 하나를 내어주었다. 감격했다. 이 아저씨는 네팔 남부 지방에서 왔다고 한다. 약국에서 일하고 있다며. 네팔 말을 할 줄 아는 한국 사람을 만나 너무 반갑다고 했다. 나는 너무 고맙다며 인사했다.


그 날 밤, 우리는 작은 침대 2개에 각각 2사람씩 잠을 청했다. 비좁고 불편했지만 '네팔의 정'을 느낄 수 있어 마음만은 따스한 밤이었다.




뒷 날 아침, 같이 기념사진을 찍고 이메일 주소를 물었다. 돌아가면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주기 위해서였다. 종이가 없어 식당에 있던 냅킨에 받아적었다.


트래킹을 끝내고 카트만두 집으로 돌아와 냅킨을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벌써 5년이 더 지났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 이제 두 아이(아들만 둘이다)의 아빠가 되었다. 자라나는 아들 녀석들을 볼 때마다 문득, 왜 그 냅킨을 잘 간직하지 못했을 까 하는 아쉬움과 미안함에 자책하게 된다.


아버지와 아들의 추억을 지켜주지 못한 것 같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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