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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엘 Dec 08. 2016

20_드디어 베이스캠프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트래킹 8일 차

온몸을 파고드는 찬 기운에 잠에서 깼다. 겨우 뜬 눈으로 시계를 본다. 새벽 2시. 텐트를 부셔버릴 기세로 바람이 불고 있다.


어제 도착한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엔 빈 방이 없었다. 사정사정해서 얻은 창고 옆 텐트. 히말라야에서의 캠핑. 그 낭만 넘치는 단어에 빠져 밤새 일어날 비극은 생각지도 못했다. 낡은 텐트는 3 계절용이라 애당초 안나푸르나의 밤을 지탱해주지 못할 것 같았다. 이 곳만 해도 벌써 해발 3800미터. 한 낮 태양이 내려쬘땐 영상 20도 이상으로 기온이 오르지만 한 밤엔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간다. 이번 트래킹을 오기 전에 타멜의 등산장비점에서 두툼한 침낭을 구입했다. 내한온도 영하 20도. 그 정도 온도에서도 보온을 보장한다는 말인데 알게 뭐람. 짝퉁인 녀석인데.

오늘 우리의 스위트룸인 창고 옆 텐트
해가 지자 엄청난 냉기와 함께 운무가 몰려온다

해 질 녘이 되자 산 아래에서부터 물기를 가득 품은 안개와 바람이 밀려올라 온다. 한 숨 자고 새벽에 일어나 ABC에 올라야 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계속 거세게 불어대는 바람과 습기, 바닥의 냉기를 막아줄 좋은 매트가 없어 뼈 속으로 파고드는 추위에 잠에서 깨고 말았다.


출발 예정이던 새벽 4시까지 뜬눈으로 추위와 싸우며 버텼다. 알람이 띠릭띠릭 울린다. 피곤하지만 차라리 출발해서 이 추위에서 벗어나고 싶다. 짐을 챙겨 식당으로 가니 주인아저씨가 나와 막 물을 끓이며 하루 장사를 준비 중이다. 무거운 배낭을 맡긴다.


"ABC 좀 다녀올게요. 짐 좀 맡아 주세요"


도저히 이 컨디션으로 다 지고 못 가겠다. 물이랑 행동식 등 간단한 짐만 따로 챙기고 나머지 큰 것들은 식당에 맡겼다.


추위에 언 몸은 쉬이 풀리지 않았다. 여전히 공기는 뺨을 찢을 듯 차다. 눈을 들어 안나푸르나 1봉을 보니 그 위로 보름달이 휘영청 밝다. 어젯밤 몰려왔던 운무는 다 어디로 갔을까? 달 빛이 너무 밝아 봉우리가 은은히 빛난다. 추위와 고도에 지친 몸을 힘겹게 움직여 한걸음 한걸음 위로 올라간다. 내가 위로 오르는만큼 태양도 솟아오른다. 해발 8091미터. 세계에서 10번째 높은 산. 안나푸르나. 


고도가 8000미터가 넘으며 세상에서 10번째로 높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건 바로 동이 틀 때 세상에서 10번째로 빛나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저곳은 얼마나 높은 곳이기에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 곳이 칠흑 같은 어둠 안에 갇혀있는데도 저렇게 홀로 빛나는 것일까? 보지 않고서는 믿을 수 없다. 어둠 속에 홀로 황금색으로 빛나는 만년설산. 


아, 나는 이 광경을 보고자 이 곳에 왔구나. 감동이다. 보고만 있어도 홀려서는 마구 빠져드는 기분이다. 바로 이거구나. 수많은 산 사나이들이 이 산에 수없이 가져다 바친 목숨의 이유가... 

 

순식간에 주위가 환해지고 날이 밝았다. 등 뒤로 마차푸차레가 있고 태양빛은 마치 오로라처럼 하늘에서 펼쳐진다. 하늘은 푸르다 못해 검푸르다. 해발 4000미터. 그만큼 우리는 우주와 가까워졌다. 

저 멀리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가 보인다. 고산에서 속지 말아야 할 것은 가깝게 보인다고 가깝게 있지 않다는 것이다. 고도 때문에 공기가 희박한 데다 맑다 보니 멀리 있는 것들이 아주 선명하게 보여서 거리감을 쉽게 잃는다. 고산은 몸에 익숙하게 배인 일상의 상식들이 파괴되는 곳이기도 하다.


ABC
새벽에 걸어 올라온 길. 뒤로 마차푸차레가 있다.
ABC의 롯지에서

3시간 정도 걸어 ABC에 도착했다. 이 곳이 바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다. 안나푸르나 내원이라고 부르는데 히운출리-안나푸르나 남봉 - 안나푸르나 1 - 안나푸르나 2 - 마차푸차레가 이 베이스캠프를 빙둘러 싸고 있기 때문이다. 안나푸르나보다 높이는 세계에서 9번째이지만 등반 하기 매우 위험하고 어려운 산으로 꼽힌다. (우리가 베이스캠프에 도착했을 때 故 박영석 대장과 그 팀이 등정 중이었다.)

안나푸르나 내원

사진으로 보면 아주 따뜻해 보이지만 아침인 데다 기온이 꽤나 낮았다. 차를 주문해 마시며 몸을 녹인다. 그래, 이런 곳에서 차 한잔 해야지.

힘들어 보이는구려. 차를 기다리며

베이스캠프 옆으로 엄청난 크기의 빙하가 오랜 세월 흘러내려 만들어진 협곡이 있다. 이제 그 빙하는 어디로 가버렸는지 사라지고 그 흔적만이 굳은살처럼 박혀있다. 


잿빛으로 움푹 패인 부분이 빙하가 흘렀던 곳이다.

거리감이 없어져서인지 안나푸르나의 꼭대기가 동네 뒷산처럼 낮고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걸어 올라온 4200미터만큼 그대로 다시 올라야 있는 곳이다. 신이 나서 여기저기 둘러보며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는다. 정말 힘들게 올라왔으니 제대로 기념사진을 남겨야지. 


"여보 우리 안나푸르나를 배경으로 뽀뽀하는 사진 한 장 남기자"


당황한 아내는 손사래를 쳤지만 싫지는 않은 것 같다. 주변에 다른 트래커들이 있으면 부탁을 하려고 했는데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없다. 어쩔 수 없이 타이머를 맞추어 테이블 위에 놓고는 열심히 아내 옆으로 달려가 뽀뽀를 한다.


여보 나 지금 잡아 먹는 거 아니야

와락 달려들며 입을 갖다 대니 이거 원... 결국 사진은 로맨틱하기보단 배고픈 맹수가 토끼 잡아먹는 동물의 세계의 한 장면으로 남는다.


이제 하산해야할 시간이다. 아쉽다. 좀 더 머물고 싶지만 오늘 밤 계획한 숙소까지 가려면 출발해야 한다. 


'안녕 베이스캠프. 다음에 올 땐 둘이 아닌 아들, 딸이랑 함께 올게. 그때까지 좀 더 건강해지길 바래. 다시 빙하도 더 많이 생기고 더 하얘지길 바래. 물론 우리 사람들에게 달린 일이지만... 어쨌든 다시 만나자'
우리가 묵었던 MBC로 다시 내려온다
자, 인생샷 하나 남기고 집으로 가자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트래킹 처음부터 읽기

https://brunch.co.kr/@lsme007/12


*네팔이야기 처음부터 읽기

https://brunch.co.kr/@lsme0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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