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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엘 May 16. 2017

21_하산 시작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트래킹 9&10일차

어쩌다 보니 매일 어디서 어떻게 잤는지 이야기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하게 된다. 무식하고도 용감하게 떠났기에 어떻게 먹고 자는지 성수기란게 있는지도 몰랐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올라 경치에 취해 시간을 많이 지체했다. MBC로 내려와 짐을 찾고 밥 먹고 퍼져있느라 또 시간을 보냈다. 이제 하산 시작이니 금방 가겠지란 바보 같은 생각을 했다.

하산은 ABC-Doban-Ghinudanda-Phedi 를 거친다
이미지출처: http://himalayantrekkers.com/images/trekking/annapurna/dovan.jpg

도반 Doban까지 가야 하는데 열심히 걸었지만 해가 넘어가 버린다. 거기다 비까지 주룩주룩. 길 위엔 아무도 없다.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해 미끄러운 길을 내려간다. 마음이 점점 조급해진다. 아내를 앞에 세우고 걷는다. 내가 조급해하거나 무서워하면 아내가 흔드릴까봐 괜히 센 척을 하며 괜찮다고 허세를 부려본다.

뱀부와 도반 사이의 트레일

그렇지만 괜찮을 리가 없다. 산에서 찾아오는 어둠은 얼마나 무서운 일이던가. 심지어 길도 모르는 히말라야에서라니. 아직 야생 호랑이도 있다는데.


해가 진지 30분은 지났다. 빗발이 점점 강해진다. 롯지가 나올 때가 됐는데... 그렇게 마음을 졸이기 거의 1시간이 지났을 무렵 저 앞에 불빛이 나타난다.


아.... 감사합니다.

롯지에 도착했을 땐 칠흑같은 밤이었다.

어둠 속에서 비를 맞으며 나타난 우리 둘을 발견한 롯지 주인아저씨가 깜짝 놀랐다. 무슨 짐승인 줄 알았단다.


네, 저도 놀랐어요. 호랑이 체험하는 줄 알고...


객실은 이미 꽉 찼다. 시간이 늦어 식사도 힘들단다. 잠은 식당에서 자라고 했다. 이미 식당은 트래커들의 짐을 나르는 포터들의 침실로 변했다. 20명이 넘는 남자들만 가득한 식당. 식탁에 대충 이불을 깔고 다들 침대 삼아 누었다. 여기저기서 코 고는 소리가 천둥처럼 울리고 발 냄새는 멀미가 날 지경이다.


나야 군대도 다녀오고 단체 생활도 해봐 그리 낯설지 않았지만 아내는 홍일점에 객지에서...


걱정도 잠시. 피로가 그 모든 것을 이겼다. 눕자마자 우리는 기절.



여기까지가 어젯밤 일이다. 아침 일찍 일어났다. 손님들 아침밥 줘야 하니 우리의 침실은 다시 식당으로 변신. 강제 기상했다. 아직 해도 뜨지 않았는데. 아슴푸레한 마차푸차레를 바라보며 이를 닦는다. 치카치카. ㅋㅋㅋ 웃음이 나온다. 어젯밤 비 내리는 어둠 속을 걸어온 걸 생각하니 왠지 웃긴다.


우리 정말 미친 것 같아.


우리가 잠을 잔 식당 방
어제밤의 폭우는 거짓말처럼 지나갔다.

자~! 오늘도 열심히 내려가자. 앞으로 3일은 더 내려가야 한다. 신라면 먹던 시누와를 지나 촘롱의 계단 길을 넘어 란드룩 방향으로 내려간다. 우리는 오스트레일리안 캠프 방향으로 최종 하산할 예정이다.  

아, 하산이라고 쉬울리가 없다
대단하다. 한국 사람들.
우리 나라 서낭당 같은 사당.
정말 산만한 산사태. 저 옆 마을 사람들은 어찌 살까?

어찌나 가파른지 아래 마을이 정말 발아래 있다. 어제의 기억 때문인지 오늘은 해지기 전에 얼른 숙소를 잡았다. 생뚱맞은 곳에 자리를 잡아서인지 숙소가 한산하다. 덕분에 며칠 만에 태양열 가득 품은 핫 샤워도 했다.

저 아래 마을이 있다.

개운한 마음과 몸으로 저녁을 먹으러 식당으로 가니 며칠 전 베이스캠프를 오르다 만났던 독일인 부부가 있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이웃처럼 서로 반기며 저녁 식사를 했다.

그날 그 숙소엔 이 두 커플만이.

역시 같은 고생을 공유한 사람들은 금방 친해지는구나. 밤이 깊어져 안나푸르나 훈련소 동기 모임을 마치고 각자의 방으로 흩어진다.


이렇게 안나푸르나의 봉우리들과 다시 멀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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