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된 업무 분야가 의료계의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 보니, 회의도 잦고회의 주관 부서 직원들과의 교류 또한 빈번하게 이루어진다. J팀장은 평사원 시절부터,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나의 주된 관심분야인 근거기반 의사결정(evidence-baseddecision-making)에 대한 강의 때에 눈을 반짝이며 강의를 듣고 질문도 적극적으로 하던 친구였다.일을 잘해 팀장으로 승진했는데 진급할수록 업무의 강도와 책임감은 커져만 갔고 끊임없이 밀려오는 일에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어느 날 중요 회의의 사전 브리핑을 하러 와서 이야기하던 중에, 근자에는 뚜렷한 생각 없이 살고 있는 자신의 모습과 무언가 탁월함이 보이지 않는 자신의 삶에 대해 실망하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J 팀장뿐 아니라 많은 직원들과 이야기해보면 대부분 사람들이 자신이 하는 일의 80-90%가 삽질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근자에 여러 기관을 돌아가며 일할 기회가 있었던 내게는 이러한 직원들의 반응이 어느 기관에 특정한 것이 아닌 일반적인 것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의 생각에는 열심히 삽질하듯 일을 하였으나 그 결과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보인다는 것인데, 그래도 나는 10-20%는 인류를 위해 좋은 일을 했으니 잘한 것이라 격려하곤 하였다.
그날 J팀장의 활기를 잃은, 그리고 일에 지친 말을 듣다가 '당신이 자신의 생명을 귀중히 여기고 진지하게 사는 것만큼 온 우주에 의미 있는 일은 없다'라고말해 주었는데 이 말을 하고 있는 중에 내가 그녀에게 말한 이 느낌은 참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이순신 장군과 같고 세종대왕이나 방탄소년단과 같아야만 우주가 그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인가? 이름 모를 산에 제자리를 지키며 자라나 온 나무 한 그루, 그 나무에 깃들인 한 쌍의 새, 농부에게 오늘도 달걀을 제공해준 암탉 한 마리 그리고 작은 일을 소중하고 귀중하게 여기며 삶을 살아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우주를 이루는 것이 아닌가?
언젠가 유튜브에서 본 미국 오스틴에 있는 텍사스 대학의 학위 수여식에서 미 해군 장성 McRaven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 있는데, 미 해군의 특수부대인 네이비씰의 훈련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사용하여 자신을 바꾸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대하여 한 말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특수부대에 임용되길 바라며 도전하지만 그 과정을 끝까지 마치는 사람이 많지 않으나 그 장군은 이 과정을 견디고 이겨내고 성취하는 비결을 뜻밖에도 아주 평범해 보이고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지적해주었다. 바로 취침을 끝내고 나서 자신이 잔 잠자리를 정돈하는 것 말이다. 그 작은 일을 소홀히 여기지 않고 정성을 다하고 성취하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다. 마음만 먹으면 말이다. 좀 더 큰 일을 실패하고 좌절했어도 자신이 정리한 작은 성취, 작은 진지한 삶의 결과를 볼 때 그는 다시 일어나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장군의 말이었다.
첫 번째 노예가 나아와서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벌었습니다.’라고 하니,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습니다. ‘잘하였다. 착한 노예야, 네가 가장 작은 것에 신실하였으니, 열 도시를 다스리는 권위를 가져라.’ 누가복음 19:16-17
한 므나는 백일의 품삯이다. 오늘날로 치면 대략 석 달치 월급인 셈인데 이러한 일을 적게 여기지 않고, 진실되고 진지하며 성실히 하루하루를 살 때 그는 열 도시를 다스리는 사람, 즉, 경기도를 제외하고는 대개 하나의 도에 시는 8~10개 정도가 되니, 오늘날로 말하면 도지사가 될 위임을 받게 된 셈이다.
오늘의 이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은 우리 세대가 겪지 못한 시대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어느 것도 보장되지 않는 미래, 여러 번의 도전에도 열리지 않는 취업의 문.마음에 원하는 큰 일들의 성취가 쉽사리 얻어지지 않을 때 인내하고 있는 꾸준히 힘쓰고 소망을 갖고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일생, 오늘이라는 시간, 내가 해야 할 작은 일들을 귀히 여기고 진지하고 성실히 행할 때 언젠가 매우 값진 기회가 오게 될 것이다. 그대의 삶 자체가 우주의 의미인 만큼, 인생의 의미를 알고 소중한 일생을 하루하루 진하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