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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무 Apr 25. 2023

의료백년대계

 한 나라의 미래가 있으려면 그 나라의 다음 세대들이 잘 자라 나와 사회의 다양하고 건강한 일원들로, 개인적으로는 자신과 가족의 행복을 추구하고 사회에는 각자의 기능을 다함으로 국가 전체적으로는 풍요롭고 발전적인 사회를 이루어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해 교육이 중추적 역할을 담당해 주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흔히 교육 정책수립에 백년대계를 말하며 멀리 바라보고 후대를 양성할 교육 정책을 세워야 함을 피력한다.


 건강의 문제는 어떨까? 전문의료인력 역시 하루아침에 양성되는 것이 아니고 의료시설 또한 수년 내 수요에 따라 그때그때 세워지고 사라지고 재구성하여 역동적으로 대처하기에는 힘든 것이고, 인구 구조와 사회변화 그리고 질병의 패턴의 변화 역시 서서히 진행되나 수십 년이 지나면 분명 달라져 있게 되므로 이를 예측하고 대처할 필요가 있어 의료정책수립에도 백년대계가 필요하다.


 얼마 전 원주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아이를 둔 한 엄마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원주에 아니 강원도에 소아 응급환자를 보는 병원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밤중 아이에게 응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차로 경기도까지 밟아야 하는데 한 시간 넘게 소요될 것을 예상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소아들에게 저녁 시간대는 강원도 권역이 무의촌인 셈이다. 우리나라의 화려한, 세계 최고의 의료 운운하는 시대에 무의촌이라니!


 응급실에서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소아도 진료하면 되는 것 아니냐’라고 하겠지만 병원을 경영하는 분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웬만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은 소아 환자는 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아환아를 보려면 소아만이 아닌 그 부모 심지어 조부모까지 대해야 하고, 의료 인력 또한 소아 환자를 보기 위해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외에도 숙련된 간호 인력 5명이 있어야 최소 단위로 응급실을 돌릴 수 있다는 것인데 운영에 드는 비용에 비해 수익은 형편없이 적으므로 현실적으로 소아환아를 보도록 대비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이 다만 강원도 권역만이 아니라 서울에 특히 과거 소아청소년과에 유수한 인력들을 산출해 내었던 E 대학병원조차도 응급실에서 소아환아를 보지 않아 그 지역에 사는 어린이를 둔 부모들은 아이를 데리고 타 지역으로 한밤중에 내달려야 한다고 하니 세계적으로 환자를 유치하고 관광과 연계하겠다는 지난 십여 년 간의 정책들은 부끄럽기 한이 없다. 외국 환자를 유치할 힘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우리나라의 구멍 난 의료시스템을 확충하는데 노력을 해도 모자랄 텐데 매번 땜질 식 처방을 할 것이 아니라 백 년을 바라보고 예측 가능한 사안들에 대한 체계적인 대비가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은 의료 시스템에 대해 얼마나 만족할까? 인터넷 Statista 사이트에1) 2019년 온라인 조사를 통해 시행된 서베이의 결과를 보면 32개 국가 중 의료시스템에 만족한다는 비율이 38%로 15위에 머물렀다. 1위는 사우디 아라비아 그리고 다음으로는 싱가포르, 벨지움, 영국 순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만족하지 않는 것을 제외하고 ‘만족함’과 ‘만족 또는 불만족도 아님’을 합하면 우리나라가 1위에 위치하는데 만족 또는 불만족도 아니다는 사람이 무려 49%나 되었기 때문이었다. 불만은 아니지만 감동 또한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유튜브엔 우리나라 의료를 체험하고 감동한 이야기가 수 없이 올라오는데.


 이번에는 좀 더 과학적으로 연구된 자료를 보자. Yuan은 그의 논문에서2) 의료 시스템에 대한 대중의 만족도에 대해 30개국을 비교 발표하였는데 우리나라는 만족한다는 비율이 55% 정도 차지 하면서 24위에 위치하였다. 1위는 네덜란드 이어서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체코, 영국, 일본 순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진료받기 위해서 마냥 기다리는 것으로  좋지 않게 알려지곤 하지만, 영국의 의료시스템은 국제적 비교 순위에서는 4-6위를 차지한다는 것을 한번 눈여겨보기 바란다.


 2012년 영국 런던 올림픽 개막식에서 영국 국기가 게양될 때 국가를 부르는 장면에서 나온 것은 영국의 환아들로 분장한 아이들이었고 이어서 병실 침대에 어린 환아들을 데리고 간호사들과 의료진들이 입장하며 영국의 의료보장 시스템인 NHS(국가의료서비스)에 관한 퍼포먼스를 펼쳤다. 중심에 소아 환아들과 함께 그들을 돌보는 의료진의 모습이 올림픽에서 영국을 대표하는 장면 중의 하나로 제시된 것이다. 오늘날 소아청소년에 대한 의료가 흔들리고 있는 우리나라와 대비되는 장면이었는데, 여론 조사에서 영국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 1위가 바로 이 NHS이고 각 전문 직종에 대한 신뢰도 측정에서 십 수년 넘게 의료인들이 1위를 차지하는 나라도 영국이다. 추후 왜 영국민들이 그들의 의료보장제도를 그렇게 신뢰하고 자부심을 갖는지 살펴보는 글을 써보도록 하겠다. 우리나라의 의료 100년 대계를 세우기 위한 참고를 위해서 말이다.


 문제가 발생할 때 임시처방식의 땜질식 처방에서 나와 의료백년대계를 우도록 하자. 우리의 후손들이 자부심을 가질 그런 의료시스템을 물려줄 책임이 지금 우리 세대에게 있지 않은가?


참고자료

1) https://www.statista.com/statistics/1109036/satisfaction-health-system-worldwide-by-country/

2) Yuan Y.  Public satisfaction with health care system in 30 countries: The effects of individual characteristics and social contexts. Health policy 2021;125:135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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